2. 갓 나온 붕어빵처럼 따뜻했던 우리

가끔은 보고싶어.

by 박하준

출근 후 영주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간다. 연말이라 더욱 바쁘다.

정신없이 오전 업무시간이 흘러가고, 숨 좀 돌릴 수 있는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영주는 점심 메뉴 선정에 있어 누구보다 신중하다. 오전에 한 마케팅 브랜드 회의보다 해외 바이어들 앞에서 한 발표보다 점심 메뉴 회의는 그녀에게 있어 중요했다.


“흠 점심이니깐 중식은 어때 영주씨?”

“에이, 중식보다는 쌀국수지! 겨울이니깐 쌀국수 어때?”

동료들 모두 영주의 결정을 기다렸다.


중식보다는 쌀국수가 영주의 귀에 더 솔깃했다.


“쌀국수 좋은데요? 쌀국수로 갑시다 여러분!”

“휴…. 영주 넌 가끔 보면 점심 메뉴 고를때는 우리 부장님보다 더 무섭다니깐.”

동료 선아의 말에 다들 웃었다.


주문한 쌀국수가 나오자 선아는 서둘러 인증용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한테 보냈다.

영주 역시 습관인 듯,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앞에는 먹음직스럽게 콩나물과 양파와 소고기 양지가 듬뿍 올라간 누가봐도 담백해 보이는 쌀국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진은 서하와 헤어진 4년 전부터 어디로 전송되지 못한 채, 그녀의 앨범 속에 남아있다.


“우와 자기 오늘은 쌀국수 먹은거야? 와 다음에 나도 데려가! 면보다 소고기 양지가 더 많은데”


지금 생각하면 먹을거엔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4년 전 영주와 서하였다.

영주는 4년이 흘러간 지금도 먹을거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진심이다. 서하 역시 같을까?

4년이란 시간은 그의 입맛이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기에는 너무 길어버린 시간이다.

하지만 서하라면 여전히 똑같을거라 영주는 생각한다.


쌀국수 사진은 오늘부터 계속 그녀의 앨범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 외 음식 사진들 역시 그녀의 앨범 속에 남아있다.

분명 어디론가 전송되어야 하지만, 전송되어야 할 목적지를 잃어버린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들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서하에 대한 영주의 미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


“영주야 다 식겠어 얼릉 먹어!! 후우후우… 와 진짜 담백해!”

추억에 잠기기엔 앞에 있는 선아가 쌀국수를 너무 맛있게 먹는다고 영주는 생각했다.


양지와 양파 쌀국수를 한 번에 집어, 쯔양만큼 쌀국수를 맛있게 먹는 선아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선아 너는 진짜 먹방 해야돼!”

“훗. 내가 한 먹방 하기는 하지!”

영주 역시 머리를 묶곤 본격적으로 전투에 임할 준비를 했다.


오후 업무를 끝내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6시까지 20분을 남기고, 영주의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 선아였다.


“영주 오늘 퇴근하고 치맥 콜?”

“아니면 곱창에 쏘주는 어때?”


치맥과 곱쏘 둘다 영주가 좋아하는 아니 애절하게 사랑하는 메뉴들이다.

퇴근 후 불금에 영주를 꼬시기 위한 선아의 전략이 시작된 것이다.


“요거요거 일부로 내가 사랑하는 메뉴들만 선정했네? 속 다 보이거든요 오선아ㅋㅋ”

“네 맞습니다! 이 불금에 귀중한 시간을 저에게 투자한번 해주시죠! 섭섭하지 않게 치맥과 곱쏘 둘다 넣었으니 골라봐”

“마음은 고맙지만 피곤해서 다음에 가요! 나를 너무 잘 아는 오선아씨~~”

“치... 역시 서영주 어려운 여자야...”


선아 덕분에 피식 웃은 영주는 6시를 알리는 시간과 함께 퇴근했다. 간만에 칼퇴근이었다.

연말이라 업무가 많아 1시간씩 야근은 기본이었기에 영주는 이 여유를 온전히 방해받지 않고 혼자서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사실은 어제 그 신비로운 붕어빵 집에 가고 싶었다.


붕어빵이 땡기기도 했지만, 어제의 그 붕어빵 가게라는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 공간은 이상하게 몹시 따뜻했다.

몸과 마음 둘 다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겉과 속이 잘 익은 군고구마 같았다.

그리고 그 따뜻한 공간에서 추억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영주가 오늘 찍은 쌀국수 사진을 전송하고 싶은, 아니 4년 전부터 지금까지 찍은 음식 사진들이 전송되어야 할 목적지. 그 목적지인 그 사람을 떠올리고 싶었다.


서하와 헤어지고 한동안은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행복했던 추억들이 많았지만, 그 추억들을 기억하려 하면 항상 연애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추억들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붕어빵 가게를 간 이후 영주에게는 한가지 변화가 생겼다.

서하와 함께 만든 영주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추억들을 마주할 용기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웠다.

그 당시의 우리가. 그때의 우리가.


“영주야 우리 평생 함께 하는거다? 나중에 나보다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 나타나도 한눈팔면 안돼.”

“뭐야!! 이서하 너나 한눈팔면 나한테 진짜 죽어!!!”

서하와 사귄지 횟수로 5년째 되던 크리스마스 이브날, 우리는 평생 함께하자던 약속을 했다.


그때 우리는 순진했고 그 약속은 평생 지켜질 줄 알았다.


“이서하 이제 싫어! 지긋지긋해! 헤어져!”

서하에게 흐느끼며 말했다. 서하와 사귄지 횟수로 약 8년 정도 되던 날이었다.


그날은 그동안의 어떤 여름들보다 습하고 뜨겁고 덥던 여름날이었다. 나는 그날 서하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날은 서하와 평생 함께하자던 약속을 깬 날이기도 했다.


그때의 내가 한 말은 진심이었을까? 지금 이렇게 후회하고 있다는 걸 서하는 알까?

영주는 생각하며 그 따뜻함과 아늑함이 공존하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익숙한 냄새가 영주를 찾아왔다.

분명 붕어빵 냄새였지만 영주에게는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 향기는 서하와의 연애 초반, 달콤함만 가득했던 그때의 그 향기다. 그 향기를 따라가니 불금인 오늘 선아와의 약속을 미룰 만큼 오고 싶었던 붕어빵 가게가 있었다.


오늘도 그 공간은 따뜻해 보였다. 추운 겨울에 지친 것인지 영주는 붕어빵이 먹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팥이 아닌 슈크림 붕어빵이 먹고 싶었다.

그 붕어빵을 꼭 먹어야지만, 한때 그녀의 전부였던 서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게 문을 열자 영주가 느끼고 싶었던 따뜻함이 느껴졌다.


눈이 많이 오던 겨울 무언가에 이끌리듯 영주를 여기로 데려다 준, 누군가는 보고 허름하다고 할 수 있지만 영주에게만큼은 아늑한 이 공간이 영주는 좋았다.


그녀 앞에는 눈이 많이 오던 그날의 점원이 따뜻한 웃음을 품고 서 있었다.


“어서오세요.”

“슈크림 2개 주세요. 팥 2개 주세요.”

“네~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밖에 춥죠? 이 쪽 난로에서 기달려 주세요~”


옛날 할머니 집에 가면 있었던 난로.

그 허름한 난로는 이 공간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었고, 젊은 여자 점원이 밤 늦게까지 추위에 떨지 않게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다.


밀가루 반죽에 노란 빛깔을 띤.

서하가 봤다면 빨리 먹고싶다고 호들갑을 떨었을 그 슈크림이 가득 밀가루 반죽에 올라갔다.


“주문하신 붕어빵 4개 나왔습니다.”

영주는 2천원 대신 천원짜리 세 장을 꺼냈다. 그리고 점원에게 건넸다.

점원이 어리둥절 하자 영주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저번에 천원 안 받으셨잖아요! 마음이 너무 찜찜해서 받아주세요!”

점원은 영주의 마음을 느꼈는지 천원짜리 세 장을 모두 받았다.

“맛있게 드세요.”

오늘도 점원의 말에선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 따뜻함이 좋아 영주는 이 공간을 떠나기 싫었다.


“저…. 괜찮으면 여기서 먹고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점원은 따뜻한 미소와 함께 이 공간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었다.

영주에게 아늑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영주는 처음으로 슈크림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슈크림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영주가 한입 베어 물자 슈크림이 반죽 밖으로 줄줄이 나왔다.

“앗뜨거…. 하아. 하. 호. 호.”


영주는 슈크림 붕어빵의 달콤함은 팥 붕어빵의 달콤함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7년 동안 서하의 슈크림 붕어빵 유혹을 가볍게 뿌리쳐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팥 붕어빵의 가득한 팥앙금의 맛이 생각나지 않는 달콤함이었다.


“어때? 슈크림 붕어빵도 맛있지? 이 오빠 믿으니깐 어때? 히히.”

“그래 너 말대로 맛있다!”

뜨거운 슈크림 붕어빵을 호호 불며 영주는 혼잣말을 하였다.

그리고 슈크림처럼 달콤함만 가득했던 서하와의 연애 초반을 떠올렸다.


“저기…… 영주야…. 있잖아……. 그… 그게 말이지…….”

“아 답답해! 빨리 말 안하면 나 그냥 집간다!”

“나! 너……. 있잖아 너를 좋아하는거 같아!”

그 말에 갓 20살이던 영주는 피식 웃었다.


서하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3년 내내 친구였다.

그런 서하 입에서 내가 좋다고 나왔다.


“좋아하는거는 또 뭐야. 좋으면 좋은거지! 그래서 나랑 사귀고 싶다고?”

“응........ 나랑 사귀자....”


그 말을 하고 새빨간 토마토 아니 새빨간 닭볶음탕이라고 해야 하나 서하의 얼굴은 새빨갛게 되어 있었다.

그런 서하의 모습이 귀여웠고 그런 서툰 서하가 좋았다.


“자 손줘봐!”


나는 서하의 손을 잡았다. 서하의 손은 갓 나온 붕어빵처럼 따뜻했다.

나는 그 따뜻함을 8년 동안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의 8년 연애는 20살이 막 된 대학 개강을 앞둔 2월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쭉 우리는 붙어 다녔다.

사람들은 우리를 껌딱지 커플이라 불렀다.


어느덧 슈크림 붕어빵 한 개를 다 먹고 다음 붕어빵을 베어 물었다.

아까만큼 진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달콤했다.

그 달콤함은 서하와의 첫 기념일이었던 1주년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횟수로 365일 차 우리는 강릉으로 2박3일 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설렘으로 가득 찬 우리는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하지만 평소 길치였던 나는 그날 지하철을 반대로 탔다.

그래서 뒤늦게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을 땐 이미 기차 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는 미안함에 서하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 … 있잖아... 흑... 나... 지하철을 거꾸로 타서... 흑.... 첫 여행인데 내가 다 망쳐버렸어.... 흑…. 미안.”

아직 봄이 오지 않아 건조하고 추웠던 날씨와 다르게 내 눈물은 호우주의보였다.

그런 나를 서하는 꼬옥 안아줬다.


“괜찮아 바보야. 우리 1주년 이잖아 뚝!”

계속 미안해하던 나를 데리고 서하는 동해바다보다 사실 서해바다가 보고 싶었다며 버스를 타고 을왕리로 데려갔다.


아직 2월이었기 때문에 을왕리는 바람이 많이 불었고 추웠다. 우리 둘은 말하면서 입김이 계속 나왔다.

그리고 서하는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면서 서프라이즈로 폭죽을 사 왔다.


그날 본 불꽃놀이는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마치 우리 둘이 라라랜드의 주인공인 미아와 세바스찬이 된거 같았다.

나는 서하를 꼬옥 안았다.


“히히 고마워 서하야. 그리고 사랑해. 내년에는 꼬옥 강릉가자.”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서하는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췄다.


우리는 돌아오는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붕어빵 가게를 발견했다.

그때 나는 팥 붕어빵을 먹자고 했고 서하는 슈크림을 먹자고 했다.

우리는 가위바위보 삼세판을 하며 팥 붕어빵을 먹을지 슈크림 붕어빵을 먹을지를 고민했다.

가위바위보는 서하의 승리로 끝났다. 내가 침울해하자 서하는 웃으며 붕어빵 점원에게 말했다.


“팥2개 슈크림2개 주세요.”

그 말에 나는 내 옆에 있는 이 남자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어???? 이서하 뭐야!! 내 남친 최고!”

1주년을 함께 맞이했던 횟수로 365일 차 되던 날은 나에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서하가 보고 싶어졌다. 나의 20대를 함께 보낸 그 남자가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핸드폰을 꺼냈고 카카오톡에 이서하를 검색했다.

서하의 프로필을 열자 사진 속 서하는 웃고 있었다.


서하는 우리의 1주년을 기억할까? 4년이나 흘렀으니 서하는 나를 다 잊었겠지?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며 나는 마지막 슈크림 붕어빵도 다 먹어 버렸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팥 붕어빵 2개가 남아있었다.

남은 붕어빵 2개는 집에 있는 맥주와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점원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그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을 떠났다. 그 공간은 정말이지 이상하다.

그 공간에만 있으면 영주는 영주 마음 깊이 있는 소중했던 서하와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 공간에 또 오고 싶다.


“치.. 슈크림도 맛있지만 난 역시 팥이야! 하지만 슈크림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네!”

집에 와 맥주와 함께 붕어빵을 먹으며 영주는 취기가 올라 말했다.


한때 누군가의 오마카세 였던 붕어빵의 맥주 조합은 지금 나에게 오마카세가 되었다.

그리고 영주는 여전히 이 오마카세 코스를 함께하고 싶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4년 전 그녀에게 모진 말을 들었던 그 남자를.


“이서하 너도 팥 붕어빵의 매력을 느껴봐! 자 짠!”

영주는 혼자 허공에 짠을 하며 왠지 오늘따라 더 생각나는 그 남자의 이름을 불러봤다.


영주는 앞으로 종종 슈크림 붕어빵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슈크림의 달콤함을 느끼며, 누구보다 행복하고 달달했던 서하와의 연애 초반을 추억할 것이다.

추운 겨울 영주에게 따뜻함과 아늑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 공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