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은 슈크림 붕어빵도 괜찮네

그 남자가 떠오르는 밤

by 박하준

새 하얀 팝콘같은 눈이 포근포근 내리는 12월의 어느 날. 영주는 외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포근포근 내리는 눈은 영주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해주었고, 그 마음은 영주에게 한 가지 음식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바로 붕어빵이다.


이런 날 팥 앙금이 듬뿍 들어간 붕어빵을 영주는 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붕세권이라는 말이 있듯이 요새 붕어빵 가게를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팥붕어빵이 먹고 싶어졌다.


그때였다. 취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영주의 코에 맴돌던 붕어빵 냄새가 어디선가 나기 시작했다.

그 냄새를 따라 영주는 눈이 쌓인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던 모험가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영주는 익숙한 냄새가 주는 설레임을 가지고 그 냄새를 따라갔다.

냄새를 따라가자 낡은 천막에 그 위로 눈이 소북소북 쌓이고 있는 가게가 보였다.

그 가게 굴뚝에서는 따뜻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낡은 가게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가게였다.


그 신비로운 가게의 간판에는 ‘붕어빵 2개에 천원. 맛은 슈크림과 팥 두가지가 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영주는 어렸을 때 보고 싶었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그 가게를 보자 마음속 한구석이 뭉클거렸다.

영주는 오래되었지만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 간 것처럼 싫지 않은 아늑함을 간직한 가게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젊은 여자 점원이 방긋 웃으며 손님을 응대했다.


“어서오세요. 밖에 많이 춥죠? 무엇으로 드릴까요?”

“팥 2개 주세요,”

영주는 붕어빵을 주문할 때면 익숙한 듯 팥 2개를 말했다.


점원이 붕어빵 반죽을 잉어틀에 넣고 팥 앙금을 올리기 시작했다. 영주는 그걸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영주의 귀에 낯익은 절대 싫지 않고 오히려 그리운 목소리가 났다.


“난 슈크림이 좋은데.”

“ 자기는 맨날 팥이야! 슈크림도 한번 먹어봐.”


바쁜 일에 치여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영주를 금새 추억 속으로 데려갔다.


“자기야 팥이 그렇게 맛있어? 난 슈크림이 좋던데.”

“슈크림이 뭐가 맛있냐? 붕어빵은 팥이 진리라고!”


모든 것이 잘 통했지만, 딱 하나가 달랐다면 바로 붕어빵 취향이었다.

영주의 추억속 남자는 슈크림 붕어빵을 좋아했고, 그 슈크림 붕어빵을 좋아하던 남자를 영주는 좋아했다.


“손님 주문하신 팥 두 개 나왔습니다!”

젊은 여자 점원의 말에 영주는 추억에서 서둘러 현실로 돌아왔다.


“아! 감사합니다.. 가격은 천원이죠? 천원이 어딨지? 잠시만요!”

“아 손님 오늘 눈도 오고 새해도 얼마 안남았는데 오늘 붕어빵은 그냥 서비스로 드릴께요! 다음에 또 찾아주세요”

“안그래도 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꼭 찾아올게요”


밖의 겨울 날씨는 추웠지만, 점원의 마음씨는 따뜻했다.

내가 들고 있는 붕어빵 봉지의 온기처럼 뜨끈뜨근했다.

가게를 찾아오는 길에 보았던 굴뚝의 따뜻한 연기는 저 사람의 마음씨 인가 영주는 생각했다.


점원의 따뜻한 호의를 간직한 채 영주는 감사 인사를 하고 영주가 먹고 싶었던 붕어빵 봉지와 함께 왔던 길로 다시 향했다.


포근포근 내리던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다.

영주는 새하얀 세상 속에서 봉지 안에 있는 붕어빵을 하나 집었다.

그리고 베어 물었다.


팥은 영주의 입안에 들어가자 야근을 끝내고 침대에 누운 직장인처럼 사르륵 녹기 시작했다.

그 팥에는 포근함과 따뜻함이 있었다.

그 두 가지의 맛을 조심스럽게 천천히 느끼며 앞으로 이 가게에 단골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붕어빵 가게를 발견해 기쁜 영주에게 아까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주야 들어봐, 슈크림에는 팥이 줄 수 없는 달콤함이 있다니깐? 이 달콤함으로 비유하자면…….”

“됐어! 자기가 뭐라고 해도 나는 붕어빵은 무조건 팥이야! 팥의 달콤함은 슈크림의 달콤함하고 비교도 안된다고!”

“으이구 오늘도 설득은 서영주 슈크림 먹게하기 작전은 실패다!”

“하여튼간 내가 슈크림 먹는것보다 자기가 팥을 먹는게 더 빠르다니깐! 자. 아~~ 팥 좀 한번 먹어봐!”


그때 영주와 그 남자는 비싼 오마카세를 먹지 않아도 단 돈 이천원으로 팥 두 개, 슈크림 두 개를 사 먹을 수 있으면 그 해 겨울은 행복했다. 그리고 그 행복한 겨울을 매년 겨울철이 되면 오는 붕어빵처럼 자연스럽게 함께 맞이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당연할줄 알았다. 그 남자의 슈크림 설교 역시 매년 들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헤어지자! 너란 남자 아주 지긋지긋해! 꼴도 보고 싫다고!”


영주가 가장 싫어하는 그래서 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주와 그 남자와 연애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영주가 추억에 잠겨 있는 동안 어느새 눈은 그쳤다. 그리고 영주의 집이 보였다.

눈이 쌓여 괜히 포근해 보이는 영주의 집이었다.


영주는 집에 들어가기 전 나머지 붕어빵도 먹으려고 손을 데자 어느덧 붕어빵은 다 먹고 봉지 안에는 끈적한 기름과 붕어빵 부스러기만 남아있었다.


“에이… 2천원어치 살걸 그랬나! 괜찮아 이제 단골이 될거니깐!”


아까 점원의 미소와 친절이 마음에 든 그 가게, 낡았지만 그 낡음이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그 가게. 그리고 4년 동안 잊고 지낸 그래서 다 잊은 줄 알았던 그 날의 추억을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하게 한 번에 떠올리게 만든 그 가게.


하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은 그 가게. 영주는 그 가게에 또 가리라 생각하며 욕조에 몸을 담궜다.

그리고 미리 꺼내 둔 맥주캔을 따서 마셨다.

따뜻한 욕조에 있어선지, 차가운 맥주가 벌컥벌컥 시원하게 넘어갔다.


“크으!! 역시 목욕하면서 맥주를 마셔야 스트레스가 한 번에 풀린다니깐!”

맥주가 시원함만 주진 않았다. 오늘의 일들과 잊고 지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붕어빵과 맥주를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있냐?”

“응! 겨울에는 다른안주 필요없이 이렇게만 먹으면 이게 나한테 오마카세야!”

“으이구 그 오마카세 같이 좀 즐겨보자!”


둘에게 좁은 방이었지만 오히려 좁아서 더 아늑했던 그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항상 따뜻하게 만들어준 그 남자. 오늘따라 그 남자가 더욱 생각났다.


영주는 다음에 붕어빵 가게를 가면 한번 슈크림도 먹어볼까 고민했다.


“슈크림 붕어빵이 대체 얼마나 맛있다길래…….”


영주의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나왔다.

그 무언가는 영주의 볼을 따라 욕조의 물로 떨어졌다. 뚝.

그 무언가는 분명 맥주캔의 무언가는 아니었다.


“어…? 내가 왜이러지? 서영주 너 설마 이제 와서 그자식이 보고싶어 진거야?”


한번 시작되면 그치지 않는 여름철 장마처럼 눈물은 계속 쏟아졌다.

영주는 욕조에서 숨죽여 울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 잊기에는 아직 그와의 추억이 이렇게 많았나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끄억..... 끄윽..... 맨날 붙어있었으니깐... 다 이서하 그자식 잘못이야!...끄윽.. 아니야 서하는 잘못없지.. 다 내 잘못이야..”


그녀는 그 남자를 탓하기도,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따라 그 남자가 보고 싶었다.

그 남자가 늘 말했던 그래서 한번을 들어주지 못해 미안한, 그 남자와 헤어지기 전, 한 번쯤은 먹어볼 걸 생각한 슈크림 붕어빵이 떠오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