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 동전을 던져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다.
-Episode 6 동전을 던져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다-
나영은 조반을 마치고 관노를 앞세워 옥순과 토지 문서를 가지고 집을 나선다.
찾아가는 농지는 나영궁에서 10리(약 4km) 정도 되는 개경 외곽에 있는 답(畓)으로 약 만 5천 평 정도의 벼가 자라고 있는 논이라 했다.
그곳 관아를 찾아가 토지대장인 양안(量案)을 보이고 위치를 물으니 현감이 이정(里正)을 불러 동행하도록 명하여 쉽게 토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정(오늘날 이장)이 말하기를,
이정 : 이 토지는 국유지인데 현재는 인근에 사는 농투성이(소작농)가 병작반수(幷作半收) (50:50)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나영 : 네에 그러시군요. 이 토지는 제가 왕의 종친으로서 봉토로 하사 받은 토지이니 이 시간 이후부터는 여기 관노가 관리할 것이니 그리 알고 잘 부탁드립니다.
이장 : 네에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영은 넓은 논에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벼를 바라보며 매우 흡족했고 그 광활함에 더 놀랐다.
위 논에서는 당시 농사 수준으로 1년에 40 가마 정도의 쌀이 수확된다.
이를 소작농하고 나누면 1년에 80kg 쌀 20 가마 정도이니 나영과 식솔들이 먹기에는 넉넉한 양이었다.
나영 일행은 인근 장터에서 큰 대접에 담긴 국수를 사 먹고 되돌아 나영궁으로 돌아왔다.
집을 지키던 관비가 말하기를 좀 전에 궁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일 임금님이 오신다는 전갈이었다.
반가운 태종을 만날 것을 생각하며 나영은 집 안과 밖을 깨끗하게 하라 하고 옥순에게는 저자에 나가서 아주 좋은 녹차를 구해 오라고 했다.
당시 조선 왕실에서 즐겨 마시던 녹차는 보성 녹차와 장흥 녹차가 있었다.
얼마 후 돌아온 옥순은 우전차(雨前茶) 한 근을 구해 왔는데 이는 봄비(곡우)가 내리기 전에 딴 차 잎으로 가장 귀한 녹차로 분류되어 조선에서는 대부분 왕실 진상용으로 이용되던 차였다.
다음날 조반을 마치자 임금님 도착을 알린다.
모두 문 앞으로 나가 도열하며 왕을 맞이
한다.
태종 : 그래 여기가 네가 사는 곳이로구나 꽤 아늑해 보인다.
나영 : 전하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부르시면 단걸음에 달려갈 터인데 이리 직접 와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태종 : 그렇긴 하다만 나는 내 종친을 다른 대신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하하하
나영 : 네에 알겠습니다. 자주 오셔요.
태종 : 그래 집도 평안해 보이고 차도 맛이 좋으니 내 자주 와야겠다.
태종 : 내가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왔으니 네 생각을 편히 말해 보거라
나영 : 네 전하 하문하시옵소서
태종 : 태상왕 때부터 수도를 정하는 문제로 말들이 많았고 태조왕께서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셨으나 정종께서 다시 개경으로 환도하시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제 다시 3곳 중 하나를 도읍지로 정해야 하는데 거론되는 곳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인 송도(松都)와 한양인 신도(新都) 그리고 한양 서쪽인 무악(毋岳)이 예정지로 거론 중이다. 네 생각은 어디가 좋겠느냐?
나영 : 그러한 막중 대사를 소인과 논하시는 것은 소인은 이미 어디로 낙점될 것을 아시고 하문하시는 것인가요?
나영은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어간다.
나영 : 3곳 중 수도로 정하는 방법은 동전을 던져 척전(擲錢)으로 길흉(吉凶)을 보고 정하실 것이고, 3곳 중 한 곳은 길(吉)이 둘, 흉(凶)이 하나이고, 나머지 두 곳은 흉(凶)이 둘, 길(吉)이 하나로 나올 것입니다. 척전을 문제 삼는 신하가 있으시면 고려 태조(太祖)가 도읍을 정할 때 무슨 물건으로 하였는고?라고 하문하시면 됩니다.
태종 :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만사가 형통하는 기분이라 걱정거리가 없어진다.
참으로 귀한 너의 조언을 듣는다.
너의 상냥한 말투는 봄날의 햇살 같아 내 마음속 어둠마저 밝히는구나 그대는 참으로 조선의 빛이로다.
내 새 도읍지로 이전하면 궁 안에 너의 별궁을 하나 만들어 주마
오늘따라 임금님이 기분이 무척 좋으신가 보다. 내내 싱글벙글하신다.
나영 : 아니옵니다. 전하 이곳도 저에게는 과분합니다.
태종 : 도읍지가 어디든 개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나는 가는데 너는 이곳에 있겠다는 말이더냐?
나영 : 그것이 아니오라 궁 안에 별궁이라 하시니 제게는 과분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태종 : 무슨 말인지 알겠다. 녹차는 아주 잘 마시고 간다 다시 보자꾸나
하며 처음으로 나영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태종의 극찬을 받고 태종에게 손까지 잡혀본 나영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몸 둘 바를 모르며 고개를 들지 못하며 말한다.
나영 : 전하의 하해와 같은 배려에 저는 식솔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진정 감사합니다.
태종은 나영의 인사를 받으며 연(輦)에 올라 궁으로 돌아갔다.
당시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기록인 태종 4년 10월 6일 자 실록을 그대로 옮겨 본다.
태종실록 8권, 태종 4년 10월 6일 갑술 1번째 기사 1404년 명 영락(永樂) 2년
돈 점을 쳐서 도읍을 한양으로 결정하고, 이궁을 짓도록 명하다
임금이 제학(提學) 김첨(金瞻)에게 묻기를, "무슨 물건으로 점(占) 칠까?" 하니, 대답하기를,
"종묘 안에서 척전(擲錢) 할 수 없으니, 시초(蓍草)로 점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시초(蓍草)가 없고, 또 요사이 세상에는 하지 않는 것이므로 알기가 쉽지 않으니, 길흉(吉凶)을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하니, 김과(金科)가 나와서 말하기를, "점괘(占卦)의 글은 의심 나는 것이 많으므로, 가히 정하기가 어렵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이 함께 알 수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낫다.
또 척전(擲錢)도 또한 속된 일이 아니고, 중국에서도 또한 있었다. 고려 태조(太祖)가 도읍을 정할 때 무슨 물건으로 하였는가?" 하니, 조준이 말하기를, "역시 척전(擲錢)을 썼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와 같다면, 지금도 또한 척전(擲錢)이 좋겠다."
하고,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예배(禮拜)한 뒤에 묘당(廟堂)에 들어가, 상향(上香)하고 꿇어앉아, 이천우
에게 명하여 반중(盤中)에 척전(擲錢)하게 하니, 신도(新都)는 2길(吉) 1흉(凶)이었고,
송경(松京)과 무악(毋岳)은 모두 2흉(凶) 1길(吉)이었다.
그런데 한양으로의 천도는 이미 태조 3년(1394년 11월 4일)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 후 조선의 새 수도로 한다는 공식 선포까지 있었다.
그러나 1398년 왕자의 난 이후 조선 2대 왕 정종이 즉위하자 도읍지를 다시 개경으로 환도해 버렸다.
그렇게 6년을 더 개경에서 버티다가 1404년 10월 6일 마침내 태종에 의해 도읍지가 척전을 통해 한양으로 재지정된 것이고 이는 태조 이성계에게 커다란 선물이었다.
-Episode 7 - "조선최초 궁녀들에게 직명부여하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