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을 씹어 먹은 여인(8)

Episode 8 사간원에서 명목 없는 행차를 하지 말 것을 청하다

by 뜨레스

-Episode 8 사간원에서 명목 없는 행차를 하지 말 것을 청하다-


태종은 나라일이 안정되자 시간 나면 수시로 나영궁을 찾아오시었다.

녹차 맛이 좋아서 녹차를 마시며 나영과 나누는 대화가 너무나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한 날 태종은 나영에게 묻는다.


태종 : 미래에서 네가 타고 왔다는 날개는 다시 타고 날 수도 있느냐?

나영 : 수선이 다 되고, 날이 좋으면 가능하옵니다.

태종 : 그럼 그걸 타면 다시 미래국으로도 갈 수 있는 것이냐?

나영 : 그것은 알지 못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은 미래국에서도 아직 잘 설명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제가 여기온 것도 비행 중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태종 : 그렇구나..., 날다가 사고가 났다는 말이더냐?

나영 : 네 그렇사옵니다. 비행 중 하늘에서 돌풍이 불어 제가 그 속으로 딸려 올라가면서 정신을 잃게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소나무 가지에 걸려있던 이곳은 조선 송악목 인근이었습니다.

태종 : 참으로 다행이로구나 하늘이 너를 내게 보낸 것이 확실하구나 ~

나영 : 그리 생각해 주시니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전하


태영 :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궁금한 것은 지금 너의 조선에서의 활동들이 후대 사람들이 알기도 하겠느냐?

나영 : 비범한 질문이십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므로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태종왕조실록 등 곳곳에서 그 징표는 찾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후대 사람들이 선조들의 과거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사초를 바탕에 둔 조선왕조실록과 정도전의 "조선경국대전", "경제문감" 그리고 조준이 편찬한 "경제육전" 등이고 이후에도 수많은 훌륭한 서책들이 편찬됩니다.

태종 : (크게 놀라며) 무어라 네가 조선경국대전과 경제육전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냐?

나영 : 네 미래국에서는 이 서책만 따로 연구하는 학자분들도 여럿 있사옵니다.

평상복 차림의 왕과 나영

태종 : 네 말을 듣고 있으면 나도 미래국에 있는 듯하여 내가 이곳을 자주 올 수밖에 없다.

그래 조선경국대전을 보고 네가 궁금한 것이 있었더냐?

나영 : 네에 전하, 조선경국대전에는 과거시험 준비 절차 등을 기록하고 있는데 전하는 고려 우왕 8년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셨고, 이듬해인 1383년에는 문과(文科) 병과(丙科)에서 7등으로 급제했다는 기록도 보았습니다.

태종 : 어허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데 600년 후대의 종친이 나에 대한 기록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나영 : 호호호 저는 전하의 과거시험에 출제되었던 문제도 알고 있사옵니다.

태종 : (놀라 벌떡 일어서며) 그게 정말이냐?

말해보거라 내 믿을 수 없다.


나영이 말하는 문제는 실제 태종이 17세 당시 과거시험 응시했을 당시의 출제 문제였다.

까닭을 논하고, 방책을 아뢰라, 간신 간별법을 논하라 등 주관식 문제로 결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나영 : 전하께옵서는 3가지의 시험에 답을 내셨는데


첫 번째 제술(製述) 문제

천하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덕(德)에 있고, 덕을 세우는 것은 교화(敎化)에 있다.
교화가 쇠한 까닭을 논하고, 그것을 다시 일으킬 방책을 아뢰라.


두 번째 책문(策問) 문제

임금이 현자를 가까이하고 간신을 멀리함이 치국의 요체라 한다.

그러나 간신이 어진 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 이를 분별할 방법은 무엇인가?


세 번째 시(詩) 문제

제시어: 春雨(춘우, 봄비)
과제 : “춘우”를 주제로 5언율시를 짓되, 민생의 풍요를 은유할 것.


전하께옵서 과거 시험에 급제하셨을 때의 시험문제입니다. 기억나시는지요?


태종 : 내 할 말이 없다. 네가 이 정도로 영특한 줄 내 미처 알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내가 20년 전에 본 과거시험 문제지까지 한자도 다르지 않게 암기하고 있다니 보고도 믿을 수 없다.

내 이러니 너를 자주 찾아 하나라도 더 듣고 배우고자 함이니라

나영 : 전하께옵서는 어린 시절부터 정도전· 권근 등 유학자들에게 수학하였기 때문에 경서 해석 능력과 문장력 모두 탁월하셨고 그로 인해 당당히 과거에 급제하셨던 것으로 후대사람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태종 :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네가 두렵지만 편하다.

나영 : 과찬이십니다. 저는 조선실록을 번역하는 일을 하는 직장인으로서 매일 실록과 관련 서책들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암기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여자 사관(史官)인 셈이지요?

태종 : 그렇구나 그럼 너도 문과(文科)나 대과(大科)에 급제한 것이로구나 참으로 영특하다 했느니라

(조선시대 사관들은 대과에 급제한 자들로 선발되었음)

나영 : 미래국에서는 조선처럼 문과나 대과는 없지만 대학에서 전공을 공부해서 그 부분에 전문가가 되는 구조입니다.


태종 : 너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마시는 이 한 잔의 차가 천하의 금은보화보다 귀하다.

너의 온기가 내 손끝에 남으니, 이 또한 하늘이 내게 내린 복이로다.

나영 :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으며)

전하의 말씀, 소녀 가슴 깊이 새기겠나이다.

또한 오늘의 전하와 나눈 이 녹차향을 평생코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태종 : 내가 너와 담소를 나누며 너의 온기를 느끼는 이 시간들이 조선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시간일진대 사간원에서는 자주 궁을 비운다고 봉장을 올리며 명목 없는 행차를 하지 말라하니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 2월 12일 계유 1번째 기사 1406년 명 영락(永樂) 4년

사간원에서 명목 없는 행차를 하지 말 것을 청하다.

원하건대, 이제부터 전하는 몰래 행차하는 실수를 고치시고 말 달리기를 즐기시는 일을 경계하소서.

임금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대간(臺諫)에게 명하기를, ‘무릇 죽이는 형벌과 국정(國政)의 큰일은 소(疏)를 갖추어 아뢰고, 그 밖에 일은 예궐 하여 말하라.’고 하였는데 이제 간관(諫官)이 긴요하지 아니한 일을 가지고 여러 번 봉장(封章)을 올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Episode 9 "1408년 5월 24일 태조 이성계 승하"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