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9 1408년 5월 24일 태조 이성계 승하
-Episode 9 1408년 5월 24일 태조 이성계 승하-
사간원에서 왕께서는 궁을 자주 비우지 말라는 간언이 있은 후로 전보다 왕래가 줄어든 태종은 태상왕의 병문안을 이유로 덕수궁에 자주 왕림 하시고 주숙도 하시면서 틈틈이 나영궁에 들려 가시었다.
태종 : 그대와 마주 앉아 마시는 이 한 잔의 차향이 밤새 내 마음을 흔드는구나.
그대를 궁 안에 두고 늘 곁에서 보고자 하나, 종친이라 하니 내 어찌 경계를 넘을 수 있겠는가.
마음이 앞서나 발걸음은 머물 뿐이로다.
나영 : 전하의 마음을 소녀가 어찌 모르오리까.
다만 지금처럼 지척에서 전하를 뵐 수 있다면, 그것이 소녀의 다함없는 원이옵니다.
태종 : 오호 어찌 이리 애닮 단 말이냐
그래 밖에 나들이는 자주 하느냐?
나영 : 가끔 시정에 나가 필요한 것들을 사 오는 정도입니다.
태종 : 그렇구나 그럼 해온정에 나와서 활쏘기라도 구경 한 번 해보거라
나영 : 해온정이 어디인지요?
태종 : 해온정은 궁 밖이라 염려할 것 없느니라. 궁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바람도 쐬고 마음도 풀거라.
네가 원한다면 그곳에서 내 활 솜씨를 한 번 뽐내 보이리라. 하하, 너와 함께 즐기면 더없이 좋겠구나.
나영 : 전하의 배려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태종이 나영을 위해 궁 밖 해온정에서 종친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활쏘기도 보여주고 진귀한 음식도 먹인 기록은 태종실록 13권 등에 기록되어 있다.
태종실록 13권, 태종 7년 2월 26일 신해 1번째 기사 1407년 명 영락(永樂) 5년
종친(宗親)을 해온정(解慍亭)에 불러 활쏘기를 구경하였다.
태종실록 13권, 태종 7년 3월 5일 기미 2번째 기사 1407년 명 영락(永樂) 5년
종친(宗親)을 해온정(解慍亭)에 불러 활쏘기를 구경하였다.
태종과 나영의 애틋함은 종친이라는 굳건한 예법 때문에 겉은 평온하나 속은 불길처럼 타들어가고 있었다.
조선초기의 기록 어디에서도 종친과의 합방(合房)이나 명백한 근친상간 (近親 相姦)을 공식 기록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유교적 율령 체계에 따라 동성불혼 (同姓不婚) 제도가 점차 강화되었기에 나영과 왕의 안타까운 사랑은 속절없이 더해만 갔다.
한 날 태종이 오랜만에 예고 없이 오시었다.
태종 : 그동안 잘 지냈느냐?
나영 : 네 전하 기별도 없이 어인일 이셔요?
태종 : 태상왕께서 병색이 짙어 나는 광연루(廣延樓) 아래에서 자면서 친히 진선(進膳)의 다소(多少)와 복약(服藥)에 있어서 선후(先後)의 마땅함을 보살피고 있다.
나영 : 네 전하 잘 알고 있사옵니다. 소인은 전하의 옥체가 염려되옵니다.
(태종은 신중한 표정으로)
태종 : 내 처음으로 네게 묻고자 한다. 어려우면 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영 : 네 전하 하문하시지요
태종 : 태상왕께서는 얼마나 더 버티실 수 있겠느냐?
(나영은 예감했다는 듯이 망설임 없이)
나영 : 네에 전하의 극진한 간병으로 오히려 전하의 옥체가 상할까 그것이 염려되어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상왕께서는 이달 5월 24일 승하하십니다.
태종 : 무어라 이달 5월 24일 이달 24이면 이제 7일도 남지 않았구나 에고 에고 ~
나영 : 국상이옵니다. 심기를 굳건히 하셔서 조선을 창건하신 위대한 태상왕의 붕어를 만백성에게 고하도록 하세요.
태종 :오냐 오냐 에고 에고 흐이 ~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거라
나영 :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당시 태상왕 이성계의 마지막 모습 지켜본 임금을 태종실록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 5월 24일 임신 2번째 기사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태상왕이 별전에서 승하하시다.
태상왕(太上王)이 별전(別殿)에서 승하(昇遐)하였다. 임금이 항상 광연루(廣延樓) 아래에서 자면서 친히 진선(進膳)의 다소(多少)와 복약(服藥)에 있어서 선후(先後)의 마땅함을 보살폈는데, 이날 새벽에 이르러 파루(罷漏)가 되자, 태상왕께서 담(痰)이 성(盛)하여 부축해 일어나 앉아서 소합향원(蘇合香元)을 자시었다. 병(病)이 급하매 임금이 도보(徒步)로 빨리 달려와 청심원(淸心元)을 드렸으나, 태상이 삼키지 못하고 눈을 들어 두 번 쳐다보고 승하하였다. 상왕(上王)이 단기(單騎)로 빨리 달려오니, 임금이 가슴을 두드리고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으니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었다.
정종인 상왕(태종의 형)이 달려와보니 태종이 가슴을 두드리고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는 내용이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 혼란을 평정한 명장(名將)이자, 무력과 통찰로 새 왕조 조선을 세운 창업 군주이다.
태조 이성계는 향년 74세로 승하하셨다. 나영이 알려준 바로 그날이었다.
태종은 부친의 간병과 승하로 인해 극도로 심신이 쇠약해졌다.
나영은 왕의 건강이 심히 걱정되었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옥순이 말한다.
옥순 : 마님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도 결핵이 있어 몸이 무척 수척하셨는데 지인이 논에서 잡아온 드렁허리라는 뱀장어를 자주 달여드시고 건강을 회복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사옵니다.
나영 : 드렁허리 그것이 무엇이나?
옥순 : 논에 사는 뱀장어라 하옵는데 머리를 자라를 닮았고 몸통은 뱀장어 같이 생겼사옵니다.
배를 가르면 사람 피와 같은 진한 피가 많아 배를 가르지 않고 통째로 고아서 달인 후 식히면 묵같이 굳어
그것을 덜어 데워 드시면 됩니다.
나영 : 지금도 그것을 구할 수 있느냐?
옥순 : 시정에 나가 부탁해 놓으면 구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나영 : 그래 속히 나가서 여기저기에 주문을 넣어 보아라
며칠 후 한 농부가 드렁허리라는 장어 여나무 마리를 가지고 찾아왔다.
옥순은 값을 후이 쳐주면서 효과가 있으면 다시 주문을 넣을 테니 많이 잡아 두라 말했다.
농부가 일러준 대로 대추, 인삼, 마늘, 감초, 등 한약재를 넉넉히 넣고 드렁허리 십여 마리를 가마솥에 넣고 불을 지폈다.
드렁허리가 궁중에서 약재나 식재료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을 나영은 보지 못했다.
따라서 왕께 권하는 것이 조심스러웠지만 뱀장어가 왕의 기력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이 없었다.
다음날 태종이 오셨다. 나영은 녹차를 내기 전에 밤새 달인 드렁허리 한 사발을 내어 드시라 했다.
태종 : 이것이 무엇이냐?
나영 : 전하의 용안이 몹시 수척하시옵기에,
소녀가 밤새 달인 드렁허리탕을 한 사발 올리나이다.
먼저 드시고 나서 녹차를 드시면 좋겠사옵니다.
태종 : 몸에 좋다는 탕약은 여럿 맛보았으나,
드렁허리탕은 처음이로구나.
나영 : 제가 먼저 맛을 보겠사오니, 전하께서는 안심하시고 한숨에 들이키시옵소서.
태종 : 허허, 네가 내 기미(氣味)를 본다 하니 우습구나.
그러나 네 손으로 달인 것이라 하니 믿고 마시마.
(태종이 약사발을 들어 단숨에 마시며 미소 짓는다.)
태종 : 인삼 향이 짙으나, 먹기에 거북하지는 않구나.
나영 : 네, 전하. 부디 이 탕을 드시고 더욱 강건해지시옵소서.
이제 전하의 한마디 결단이 이 나라 조선의 백성들의 풍요와 안녕을 좌우하옵니다.
소녀는 다만 그 길이 밝고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태종 : 네 말이 맞다.
이제 너의 조언이 더욱 절실해질 것이니 나를 도와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루어 보자꾸나
나영 : 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
-Episode 10 "중전마마 납시어"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