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을 씹어 먹은 여인 (10)

Epsode 10 중전마마 납시어

by 뜨레스

-Episode 10 중전마마 납시어-


태상왕 국상을 치른 후 태종은 건강 상태가 호전되지 못하고 기력이 전 같지 않았다.

아버지 이성계를 향한 극진한 간병과 장례 그리고 고기 음식을 먹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으리라

나영은 그런 태종을 위해 드렁허리를 열심히 달여 오실 때마다 드시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옥순이 내실로 냅다 뛰어들며 소리친다.

옥순 : 아씨 아씨 궁에서 중전마마가 납시었어요.

나영 : 중전마마 중전마마께서

(중전마마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영은 마음을 진정하고 밖으로 나가 인사드리며 안으로 모신다)

문 앞에 화려한 대여(大輿)가 도착해 있었다.

중전마마의 대여(가마)


나영 : 중전마마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이 누추한 곳까지 몸소 행차하시니 소인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겠사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원경왕후 이분이 바로 세종의 친모이시고 왕자의 난 당시 숨겨둔 병장기를 이방원에게 내어줌으로써 왕자의 난을 성공시킨 고려말 명문가 민제의 여식이다. 실록에서 너무나 자주 보았던 원경왕후를 내 방에 모시다니 나영은 두려움 속에서도 Seventeen을 마주한 것처럼 설레었다.


중전 : 네 일지기 너의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다.

네가 전하와 종친이라는 것도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전하께서 요즘 건강이 안 좋아 걱정이다.

그런데도 시간만 나면 무시로 이곳을 찾아오신다니 내 그것이 걱정되고 또 네가 누구인지도 궁금하여

연통도 없이 찾아온 것이니 너무 탓하지는 말거라.

기품이 있고 젊잖은 중전의 말에 나영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흐른다.

중전과 나영의 만남

나영 : 네 마마의 말씀 잘 이해했습니다. 저는 먼 미래에서 왔으나 서책에서 중전마마님의 기록을 보면서 꼭 뵙고 싶었던 분을 이렇게 직접 뵙게 되니 저도 모르게 너무나 반가워 눈물이 납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중전 : 그렇다고 눈물까지 보이느냐.. 재미있는 아이로구나..

네가 보았다는 서책에서는 나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더냐?

나영 : 네 마마 기록에는 "원경왕후 민 씨는 고려 말 명문가 출신으로 이방원의 정비가 되어 조선 개국과 ‘왕자의 난’을 거친 정권 장악기에서 내치의 축이 되었고, 훗날 세종의 생모로 조선 왕통의 핵심 모태가 된 인물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사옵니다.

중전 : (크게 놀라며) 네가 본 서책에 그리 기록되었더란 말이냐?

중전이 크게 놀란 것은 세종이 조선의 왕통을 이어간다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영 : 마마 저는 기록에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렸사옵니다

중전 : 지금 세자는 이제(李禔) 양녕대군이다. 양녕이 훗날에는 세종왕으로 불린다는 말이냐?

(세종이라는 호칭은 왕 사후에 부여되므로 중전은 세종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왕자의 난이라 호호호 누가 지었는지 그럴듯하는구나

나영 : 마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중전 : 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참으로 흥미로운 아이로구나 그러니 전하께서 너를 자주 찾아오신 게야

나영 : 마마 송구하오나 마마께 한 가지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여쭈어도 될는지요?

중전 : 그래 나도 물었으니 너도 말해보거라

나영 : 네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무인년에 정도전이 왕권 강화를 이유로 사병 혁파를 주장하면서 권문세족 등의 사병 해체와 병장기를 전부 회수해 간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마마께옵서는 병장기 일부를 사가에 숨겨두었던 기록을 보았습니다. 당시 상황과 심정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중전 : (더 크게 놀라며) 그런 기록이 후대에 그대로 남아 있더란 말이냐?

나영 : 네 그렇사옵니다.

중전 : 기록에서 보았다니 당시 상황을 너도 잘 알고 있듯이 정도전은 태상왕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마음대로 조정이 가능한 왕을 세우고 싶어 했다. 모두들 세자는 중전인 내 아들 중 이방과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1등 공신들인 정실 자식들을 배제하고 후궁인 한 씨 소생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임금을 회유하여 결국 14세의 이방석을 세자로 올렸으니 이는 있을 수 없는 만행이었다.

내가 흥분했나 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식은 녹차를 다시 후훅 불어 마시면서 흥분을 가라앉히는 중전)

나영 : 정말 기록과 다르지 않아 놀랐습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감히 하나 더 여쭈어 보겠습니다.

태조 7년 8월 26일 정도전 일행이 왕자들에게 연통하기를 왕이 위독하니 궁으로 모이라 하여 다들 궁으로 입실하는데 당시 마마님께서는 종 소근(小斤)을 시켜 정안군에게 연통을 넣었는데 "네가 내 가슴과 배가 창졸히 아픔으로써 달려와 아뢴다"고 하면 공(公)께서 마땅히 빨리 오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기록이 있사옵니다. 그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는지요?

중전 : 이러니 전하가 네게 푹 빠졌구나 사실 왕을 자주 불러내는 너를 혼내러 왔다만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하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래 기왕 물었으니 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마

그때 정안군이 궁에 입실하였다면 반드시 정도전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발길을 돌려 돌아온 정안군에게 나는 친정집 광에 묻어 두었던 병장기를 내어 주면서 정도전 일당의 왕실 능멸에 대한 처벌을 구하였고 정안군도 이를 받아들여 난을 일으킨 것이다.

나영 : 네 마마님의 생생한 말씀을 듣고 있사오니 소인 등줄기에서 땀이 다 납니다.

저 역시 마마님과 같은 생각이었사옵니다.

정도전의 호출이 있었을 때 정안군께서 궁에 입실하셨다면 조선의 역사는 전혀 다른 기록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중전 : 후대의 기록이라지만 나를 이해해 주는 면이 있다 하니 싫진 않구나 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을 전하께는 고하지 않을 터이니 너도 그리하거라

나영 : 네 그리 하겠사옵니다

중전 : 네가 전하와 종친이라니 나도 너를 마마로 호칭해야 할 정도로 내가 가벼이 할 상대는 아니니 서로 예를 갖추고 전하의 건강을 위해서 노력하자꾸나.

나영 : 네에 명심하겠사옵니다. 오늘 존귀한 분을 모시고 궁금했던 점을 직접 듣게 되어 제게는 너무나 큰 광영이었사옵니다.

그렇게 중전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대여(大輿)에 올라 가시었다.

-Episode 11 "태종과 원경왕후의 부부싸움"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