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을 씹어 먹은 여인(5)

Episode 5 전주 이씨

by 뜨레스

Episode 5 전주 이씨 (全州 李氏)


1403년 조선의 수도는 개경(개성)이 행정적 중심이었으나 1404년 10월 6일 태종이 척전(擲錢 동전던지기)으로 한양 천도를 결정했고, 실제 환도는 1405년에 이루어졌다.


나영은 패자를 받은 다음날 노비 2인과 관노 1명과 함께 궁 밖으로 나들이 나왔다.


장터 구경 나온 나영

나영이가 구경 나온 1403년 당시 개경 시장의 물가를 모든 기록 등을 참고해서 현재 시세로 환산해 보면,

쌀 1kg 2,800원 / 소금 1kg 4,300원 / 배추 한 포기 4,000원 /조기 1마리 4,000원/ 소고기 600g 25,000원 돼지고기 600g 12,000원 / 닭 한 마리 17,000원 / 달걀 10개 4,000원 / 국밥 한 그릇 3,000원 정도였다.

당시 잡부들의 일당은 쌀 약 0.5~1.5kg 가량의 가치로 약 5,000원 미만이었다.

장 구경 나온 나영 일행은 국밥 한 그릇씩 만나게 말아먹고 노리개와 면 1 필(30cm x 12m)을 사가지고 입궁했다.

나영이 구입한 면 1 필


조선 태종 시대에 점점 익숙해지는 나영은 왕으로부터 나름 신임을 받고 있었고, 조선에서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을 모두 알고 있는 나영은 태종과 좀 더 친숙해지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확실한 희망도 생겼다.


나영은 기회가 되면, 조선 개국 직전 이방원이 정몽주와 나눈 시에 관하여 묻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이를 물어봐도 될지 관비에게 물어보니 관비는 펄쩍 뛰며 그러지 마시라고 말린다.

관비도 사실은 태종이 정몽주를 살해한 것을 알고 있는 눈치다.

그렇게 나영의 개경에서의 생활은 점차 안정되어 갔으나 밤이 깊어지면 부모님 생각에 매일 울다가 잠들곤 했다.

다시 왕이 찾아왔다. 거의 한 달 만이다.


태종 : 오랜만이구나 별고는 없었느냐?

나영 : 네 전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종 : 네가 미래국에서 조선에 온 이후부터는 사건 사고가 줄어 내 마음이 좋다.

나영 : 네 전하 제가 운이 좋은가 봅니다. 이 모든 것이 전하의 음덕이라 생각됩니다.

태종 : 허허허 고맙구나 그래 늦은 감은 있지만 묻는다. 너의 선친은 누구시며 너의 성씨는 어찌 되느냐?

나영 : 네 전하 저의 이름은 이나영(李那瑛) 이리 하옵고 저의 부친은 이수만(李壽滿)이시고, 조부의 성함은 이(李)자, 영(英)자, 환(換)자를 쓰시옵니다.

태종 : 오호 너의 성씨가 이씨라면 어디 이 씨고 종파도 알고 있느냐?

나영 : 네 전하 저는 전주 이씨이고 효령대군(孝寧大君)이보파 45대손입니다.

거침없는 나영의 말에 태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태종 : 무어라 효령대군 이보라 했느냐?

당시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군 이보(1396年生)는 8살이고, 그의 동생 이도(1397年生)는 7살로 훗날 세종대왕이시다.


태종은 나영이 진정 미래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이 사건 이후 완전히 믿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나영이 결국 자신의 종친이라는 사실에 크게 놀라고 반가운 마음을 다 피력하지 못하고 한동안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서성이며 "어허 이보의 45대손이라"를 중얼거리며 실성한 사람처럼 왔다 갔다 했다.


태종 : 정년 네가 나의 종친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하늘이 너를 내게 보내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구나 이는 필시 너로 하여금 백성을 근본으로 여기는 민본사상(民本思想)과 예로써 질서를 세우고 법을 보완하라는 예치(禮治)를 명하는 조선 건국이념을 나로 하여금 깨우치려는 하늘의 보살핌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나영 : 전하의 황송한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나의 조상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그중 가장 만나보고 싶은 임금이 지금의 전하이었사옵니다.

태종 : 그렇더란 말이냐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로다 그런데 왜 나를 만나보고 싶었느냐 태상왕(이성계)도 계시고 상왕(정종)도 계시지 않았느냐?

나영 : 전하께서는 한동안 태상왕의 사초를 보고 싶어 하셨지만 결국 못 보셨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 사초를 실록 등을 통해서 다 읽어 알고는 있지만 저는 전하께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당시 사초를 작성한 사관들의 심정과 같은 마음이라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전하를 도와 조선의 백성들의 평안과 조선의 발전을 위해 제가 아는 모든 역량을 다할 것입니다. 저의 직계 조상님들을 위해서요...,

태종 : 하하하 이렇게 종친을 만나니 내 얼마나 반갑고 흐뭇한지 모르겠다. 내 이제라도 너를 만난 기념으로 종친부를 새로이 작성하여 규범으로 삼아야겠다.

실제로 태종 3년(1403년) 종친부(宗親府)를 설치하여 왕족 족보 관리, 봉작·상벌, 제사·혼인등을 주관하는 정식 부서가 조선에 설치되었다.


나영 :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태종 : 이제 너는 종친으로서의 모든 혜택과 상벌을 동시에 받게 될 것이니 늘 왕의 종친임을 잊지 말지어다.

나는 네게 사가에 나가 머물 수 있도록 거처할 곳을 마련해 주고 매달 품계에 맞는 녹봉과 봉토 그리고 3명의 노비 추가로 하사할 것이니 그곳에서 열심히 정진하여 조선에 봉사하거라

나영 : 전하 감사한 마음을 어찌 표현할지 모르겠사옵니다.

열심히 정진해서 조선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나이다.


이렇게 나영은 태종의 종친이 되었다.

조선 초기 종친은 “왕권의 뿌리이자 동시에 잠재적 위협”이었기 때문에, 풍족한 혜택으로 예우하되 권력 접근은 철저히 차단되었다.

태종의 종친부 설치 덕분에 조선은 고려와 달리 500년 동안 왕족 내 분열 없이 안정된 왕위 계승 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발단은 나영의 출현부터였다고 우겨 본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전교관(傳敎官)을 통해 "궁 밖에 별궁이 마련되었으니 출궁해도 좋다"는 왕의 전교를 받은 나영은 너무 기뻐 노비들과 가져갈 물건들을 챙기며 태종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깊어져 갔다.


재동에 마련된 나영궁


재동에 도착해 처음 마주한 태종이 하사한 기와집, 나영은 멋스럽고 아담한 이 기와집을 나영궁이라 부르기로 하고 수일 전 의금부장에게 말해 양주목에 있을 때 나영을 도와주었던 옥순을 이곳으로 오게 해 달라고 청하여 이날 옥순이가 같이 따라온 노비들의 숙소를 정해주었다.

나영은 옥순과 함께 나영궁에서의 첫날밤을 지내면서 양주목에서의 이야기를 밤 새 나누며 행복해했다.

내일은 종친으로서 하사 받은 봉토를 옥순이와 관노(官奴 남자노비) 1명과 함께 가 보기로 했다.

-Episode 6 "동전으로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다"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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