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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통과 고통 사이

고통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된다.

by 김하루


침대에 걸쳐 앉아 지우를 안고 우유를 먹이시며, 엄마는 혼잣말처럼 얘기하셨다.


“인생은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거야. 진짜 죽을 만큼 아파본 사람만이 남의 고통을 이해하지. 안 겪어본 사람은 그냥 상상만 할 뿐이야. 고통은 결국, 남을 이해하라고 주어진 형벌일지도 몰라.”


지금 우리에게 닥친 고통을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 기분이 좋지 않은 나는 말없이 등을 돌려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세상 막막한 어둠에서, 기가 막힌 현실에 당장이라도 나는 숨이 멈출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체념도 아닌 그저 담담히 얘기를 하는 엄마가 이상하게 답답했다.


항상 따뜻하고 넓은 마음으로 나를 품어준 엄마.

그런 엄마를 세상 누구보다 존경했다.

하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차라리 함께 무책임한 지우 아빠를 욕이라도 해주고

내 분노를 같이 토해줬으면 싶었다.

그렇지 않으니 혼란스럽고, 짜증이 확 올라왔다.


“엄마, 예전에 읽었던 책 제목에 그런 거 있었잖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우린 어디까지 떨어질까?

정말 날개가 펼쳐지기는 하는 거야?''


엄마는 대답 대신 지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슬픔과, 동시에 예뻐 죽겠다는 미묘한 감정이 겹쳐 있었다.




답답함을 안고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찬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자,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몇 달 연체했다고 단수를 해버리는 세상이,

그 단호한 잔인함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갑자기 심장이 쓰라렸다.

이 수돗물조차 돈으로 만들어진 너무나 귀한 것이었구나 하고 또 한 번 느껴지니, 현실이 너무 커다란 두려움으로 밀려왔다. 세상에는 공짜라는 게 없다는 게 피부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부단히 애쓰며 살아오셨기에

내가 그 소중한 물을 당연하게 펑펑 쓰며 자라 올 수 있었을까. 순간, 엄마 품에 숨어있던 철부지 없는 어린아이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비겁하게 들어버렸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된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엄마는 지우를 등에 업고 내 첫 끼를 차려주고 계셨다.


빨갛게 익은 김치, 은은하게 구운 김, 바삭 달콤한 멸치볶음, 간이 잘 밴 메추리알 장조림, 구수한 잡곡밥까지 소박했지만, 그 안에는 온 마음을 다한 엄마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허기는 졌지만, 혹여나 엄마가 내 배고픔을 눈치채실까 천천히 밥을 먹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성을 붙들며

서러운 눈물이 터질까 입을 오물거리며

오로지 미각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지우 기저귀 가방 안에 있던 내 핸드폰이 익숙한 멜로디를 울리기 시작했다.


순간, 목 안이 답답해지고 밥알이 걸린 듯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하려 침을 꼴닥삼키며, 밥숟가락을 내려놓자, 몸 전체에 차갑게 퍼지는 불안과 기대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급한 마음에 가방을 바닥에 뒤엎어 버리자 기저귀와 여분의 젖병들이 쏟아졌다.

떨리는 손으로 가방 안에 핸드폰을 찾아드니,

긴장으로 손바닥에 땀이 흘러 손금 사이사이에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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