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시집살이
어느덧 만삭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시댁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가니,
먼저 도착해 있던 시이모와 그녀의 철없고 톡톡 거리는 스무 살 갓 된 딸, 맥주를 달고 사는 시누이와 조용한 형부 그리고 조카들이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얘네 정신이 없네.”
시어머니가 나를 보며 한 소리를 하셨다.
불판 위에서는 삼겹살이 ‘자이익-’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에 고소한 기름이 톡톡 튀었다. 김치와 마늘도 불판 위에 함께 익어가며 진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형부는 고기를 자르며 “자, 이제 먹어도 되겠다.” 하고 외쳤고, 조카들은 젓가락을 들고 먼저 삼겹살을 한 점씩 집어 들었다.
소금장에 찍은 고기 한 점이 입안에서 쫄깃거리며 씹힐 때마다 누군가는
“역시 삼겹살은 이렇게 먹어야 해.” 하며 웃었다.
그 사이 나는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익어가는 삼겹살 냄새와 함께 웃음소리가 퍼지고,
바닥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얼굴마다 오랜 정이 묻어 있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내편인 시누이 남편이 반가운 마음에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어쩜, 만삭인데도 얼굴이 아직도 예뻐요? 우리 여보 때는 안 그랬는데. 하하”
그러자 시누이는 날카롭게 형부를 째려보고, 형부는 기죽은 강아지처럼 눈길을 돌리며 조용히 고기를 구웠다. 웃음소리가 가득한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는 남편이 회사가 늦게 끝나 도착 시간이 조금 늦었을 뿐인데, 괜히 눈치가 보여 억지로 웃으며 삼겹살 몇 점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먹는 도중, 기름때가 잔뜩 낀 수많은 설거지가 눈에 들어오자 초조해지고, 금세 입맛이 사라졌다.
식사가 끝나자 나는 자연스레 싱크대로 향했다.
무겁게 불러온 배가 불편했지만,
다들 불판과 그릇을 나에게 옮기기 바쁠 뿐,
만삭인 내게 대신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며 그릇을 헹구는데,
남편이 지나가며 수도꼭지를 뜨거운 물 쪽으로 '확' 돌렸다.
“뜨거운 물로 해야지. 답답하다, 진짜.”
버럭 짜증을 내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순간, 울컥 서러움이 올라왔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설거지를 이어갔다.
뒤에서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잣말처럼 들렸지만, 은근히 나를 향한 말 같았다.
''잡은 물고기에 밥 안 준다.''
그러곤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과일을 챙겨 거실로 걸어갔다.
시이모는 딸을 보며 깔깔 웃었다.
“우리 딸은 시집 늦게 보내야겠다. 아까워.”
보물 만지듯 딸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 손길을 보니,
나는 속으로 ‘나도 안 해, 집에 갈 거야!’하고
싱크대에 고무장갑이라도 던지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시누이는 내 옆에 의자를 빼주며
“앉아서 좀 쉬어.”라며 편을 드는 척했다.
남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밤 12시가 되자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나는 술기운에 휘청이는 시누이의 한탄을
억지로 들어야만 했다.
그때, 시어머니가 어딘가에서 선물로 준비해 둔
택이 그대로 달린 하늘색 니트 원피스를 꺼내 들었다.
“ 딸, 이거 한번 입어봐라.”
언니는 술에 취한 듯 웃으며 원피스를 걸쳤다.
모두가 잘 어울린다며 손뼉을 쳤고,
그 웃음소리 사이로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언제나 그들만의 파티가 끝나고 남은 흔적들을 치우는 하녀였다.
이상하게도, 그때 유난히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마음속엔 오직 그리움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