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행복은 늘 예측할 수 없다.
허니문 베이비로 임신 6개월이 되었다.
불어난 살과 무거워진 몸, 거울 속에는 예전의 날렵하고 고운 모습 대신 퉁퉁 부은 얼굴의 여인이 비쳤다. 하지만 다행히도 남편의 눈빛에는 아이를 기다리는 설렘이 담겨 있었다.
예민하던 그도, 사업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자 마음이 한결 유순해진 듯했다.
“우리 아기가 복덩이야.”라며 웃는 얼굴엔 여유가 깃들었다.
연애 시절처럼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묻곤 했고, 가끔은 외출도 먼저 제안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놓였다.
‘그래, 민준이는 부성애가 있는 사람이었어. 일이 힘들어 예민했을 뿐이야.
삼 년 동안 나에게 쏟았던 정성을 잊지 말자.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상처받았던 마음을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서서히 다시 활기를 되찾아갔다.
나는 분명, 아이가 태어나면 남편이 더욱더 애틋한 마음을 품을 거라 믿었다.
셋이 함께 웃는 평범한 미래를 그려볼 때마다, 내 마음은 따뜻하게 부풀어 올랐다.
평일 오후, 친정엄마가 양손 가득 먹을 것을 들고 찾아오셨다. 식탁 위에는 빵 사이로 신선한 채소와 햄, 치즈가 층층이 들어있는 맛깔스러운 샌드위치와 햇살을 머금은 듯 윤기가 도는 사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우유가 놓였다. 우리는 오랜만에 소녀들처럼 해맑게 수다를 떨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민준이가 아기를 기다린다니... 엄마는 솔직히 조금 걱정했었어. 예전엔 괜히 쌀쌀맞아지는 것 같더라고.”
엄마의 목소리에는 불안과 안도가 함께 묻어 있었다.
나는 엄마가 불안하지 않도록 일부러 태연한 척
딸기우유를 쪽쪽 빨며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에이, 별거 아니었지 뭐, 내가 괜히 예민했던 거야.”
조금은 자랑하듯 말을 이어갔다.
“요즘은 아빠가 된다고 책임감이 생긴 건지, 전처럼 짜증도 내지 않고 오히려 너그러워졌어. 부모 마음이라는 게 참 묘한가 봐.”
한참 동안 이야기가 이어졌다. 창밖에는 뜨거운 여름 햇살이 번지고, 매미 소리가 스며들어왔다. 집 안은 오랜만에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뱃속의 아이도 좋았는지 작은 발길질로 기척을 남겼다.
한창 수다를 떨던 중, 문득 친정일이 스치며 걱정이 되어,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집안일은 어떻게 됐어? 아빠 사업은 잘 해결되고 있는 거지?”
엄마는 시계를 보며 “응, 신경 쓰지 마. 잘 되고 있어. 김서방 올 시간이네. 나는 이만 갈게.”
엄마는 다급하게 부엌으로 달려가 씻어놓은 반찬통들을 종이백에 담아 현관문을 나섰다.
“잘 때 덥다고 이불 차지 말고, 배 잘 덮고 자,”
배를 살짝 쓰다듬으며, “에고, 내 새끼 사랑해.” 하고 속삭였다.
엄마가 나간 뒤, 집 안은 잠시 고요해지고, 설렘과 따스함이 섞인 마음으로 빨래를 정리하며 남편을 기다렸다.
TV에서는 ‘여수 밤바다’ 노래가 잔잔히 흘러나오고, 태어날 아기와 손을 잡고 밤바다를 걷는 상상을 했다.
은은한 달빛이 파도 위로 흘러 반짝이고, 아기의 작은 손을 꼭 잡은 느낌에 마음이 포근하게 물들었다.
설레는 마음에 배를 살짝 만지며 속삭였다.
“아가, 사랑해. 엄마랑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