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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Mar 15. 2018

제 꿈은 한국판 분노의 질주를 만드는 겁니다.

노마드 인터뷰 #3 - 이종원

얼핏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영상 제작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 작업과 밤샘 작업을 감내해야 합니다. 하지만 컴퓨터와 카메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일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많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주업 혹은 부업으로 삼고 있는 일이 바로 영상 제작입니다.


오늘은 삶, 아니 일 그 자체가 여정의 연속인 영상 제작자 이종원 감독을 인터뷰했습니다. 잡노마드였던 그는 어떻게 애스턴 마틴이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클라이언트와 함께 일하는 자동차 영상 제작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영상 프로덕션 LJWF의 이종원 감독입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와 영국의 맥라렌, 애스턴 마틴 같은 브랜드들과 일하며 바이럴 영상 제작 위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상 제작을 시작한 것은 올해로 5년째. 이전에는 IT업계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영상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디지털카메라가 유행이던 시절, 저도 카메라를 하나 구입했는데요. 어느 날 문득 카메라 귀퉁이에 있는 빨간 버튼이 뭔지 궁금해 누른 것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셔터보다 REC 버튼을 더 많이 누른 것 같네요.


SOUND OF ASTON MARTIN


Q. 이전에는 IT맨이었는데, 회사를 벗어나 지금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A. 인터뷰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회사원 시절을 돌이켜 봤는데 딱히 힘들다고 느꼈거나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회사 다니는 틈틈이 찍은 영상들을 SNS에 올리면서 재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 저 스스로도 재미를 느끼다 보니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비싼 전문 서적을 사보고 온라인 강좌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일을 할 때는 그만큼 열정적이지 않았는데 영상은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열심히 한 만큼 늘어난 실력이 영상에서 드러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저에게 영상 편집과 제작을 '일'로써 의뢰하는 분들이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용돈벌이 개념으로 시작했지만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회사원으로서 삶과 영상을 업으로 하는 두 가지 삶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게 된 거죠. 빅딜이 들어온 겁니다!


회사원으로서의 삶과, 취미로 영상을 시작해서 직업 수준에 이르게 된 삶을 비교해보니 쉽게 결론이 나왔습니다.



Q. 말은 쉽다고 하셔도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에 못지않게 노력도 많이 하셨을 것 같고요.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왔고, 지금은 또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A. 앞선 인터뷰를 통해 느끼셨겠지만 저는 철저히 계획을 세우거나 준비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삶의 방식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프리랜서들은 고정적인 수입이 없으니 당연히 일이 들어와야 생활이 가능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죠. 처음부터 규모 있는 일이 충분히 들어왔을 리 없었습니다. 회사에서의 경력을 살려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케이스와 달리, 저는 취미생활이 밥벌이가 된 케이스니까요. 처음에는 인맥도, 경험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먹고사는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영상일을 하는 회사에 취업하기도 하고, 작은 분식점도 해봤습니다. 단, 조건은 이 모든 것을 전업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요. 영상 프로덕션에서는 스스로 월급을 줄이면서 근무 시간을 조정했고, 분식집의 경우에도 최소한의 시간만 투자하면 저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생존을 위한 일을 하는 나머지 시간은 밤낮으로 영상작업에만 몰두했어요. 그로 인한 결과물들이 쌓이면서 일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 영상 프로덕션 외에 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저의 영업 방법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겨울철이나 일이 뜸해지는 비수기에는 여전히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포트폴리오를 쌓는 것이 제가 아는 유일한 영업 수단이에요.



Q. 영상 제작과 편집은 체력과 정신력을 모두 요하는 일이라 들었습니다. 이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시간 관리와 자기 관리를 하고 있나요?


A. 저는 그리 부지런한 타입은 아니에요. 아침잠도 정말 많고요. 보통 오전 11시쯤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정해진 곳으로의 출근도 없고 매일 고정적이고 반복적으로 할 일도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면서 지내는데요.


하지만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빡빡한 촬영 계획에 맞춰 출장 다녀오고, 들어오면 바로 편집 시작하고. 그렇게 며칠 밤을 새워 프로젝트를 끝내고 난 후에야 다시 평소의 나른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바쁠 때 바쁘고 늘어질 수 있을 때 늘어지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 보니 특별히 시간 관리나 자기 관리를 시도한 적은 없네요. 하지만 다른 모든 영상 제작자들이 저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세요.


ROCKET BUNNY X SEOUL : BMW E46 M3/TOYOTA86 RB meet in Seoul


Q. 그렇다면 주변 영상 제작자들의 삶도 궁금합니다. 흔히 디지털 노마드(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가는)라 알려진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은가요? 많다면 그들이 이와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저와 비슷한 규모의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분들 중에는 저처럼 사무실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크고 작은 사무실을 갖추고 출퇴근 시간에 맞춰 일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회사원처럼요. 하지만 이건 더 낫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스타일의 차이 같아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저는 말씀하신 디지털 노마드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Q. 자동차 영상을 제작하는 일은 그야말로 ‘여정의 연속’ 일 것 같습니다. 잦고 오랜 이동으로 인한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A. 지방 출장이 잦고 또 야외 촬영이 대부분인 만큼 더 멋진 배경이 있는 곳을 찾아서 전국을 돌아야 하는데, 이것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힘든 일이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타지에서 장기간 머무는 일과 낯선 곳에서 지내는 것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지만 장거리 운전만큼은 늘 부담스럽습니다. 체력을 나눠 쓰며 팀으로 움직일 때도 있지만 홀로 5시간 이상 운전하며 이동하는 일도 많거든요. 운전 중에는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Q.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수입’과 ‘지속 가능한 일’ 일 것 같습니다. 영상 제작은 이 부분에 있어 유리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A. 확실히 과거에 비해 점점 SNS를 통해 공유되는 콘텐츠에서 영상 콘텐츠의 비율이 늘고 있습니다. 요즘 10대와 20대들은 포털사이트 검색이 아닌 유튜브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영상 제자로 살고 있는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덕분에 영상 콘텐츠의 수요도 증가했고, 꾸준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특정 수준 이상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제가 타이밍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그만큼 분야에서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성능 좋고 간편한 카메라들이 출시되고 스마트폰 카메라도 훌륭한 퍼포먼스를 내게 되면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격차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국 더 많아진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겠죠.



Q. 종원 님께서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제작자나 감명 깊게 본 영상 혹은 영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다들 좋아하시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원제: The fast and the furious)가 제 최애 영화입니다. 전 세계를 배경으로 자동차에 환장한 청년들이 등장하는 범죄 액션 영화인데요. 자동차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현실적이고 매니악해서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깊게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예를 들어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 중에 ‘Nine second car’라는 게 있습니다. 400미터 거리를 9초 안에 돌파할 수 있는 고성능 차를 말하는 건데요. '드래그 레이스'라는 카레이싱 게임에서 자주 쓰는 말이라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표현입니다. 반대로 아는 사람들은 그 가치에 대해 더 깊게 공감할 수 있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가 흥행을 거듭하면서 자동차 이야기가 아닌 일반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로 변모했다는 것입니다. 시리즈 초반에 볼 수 있었던 B급 감성과 자동차 오타쿠들을 자극하던 몇몇 장면들, 저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광팬으로서 액션보다는 자동차에 대한 깊이가 있는 영화를 한국 배경으로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나름 거창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THE CITY RALLYIST : SUBARU WRX STI


Q. 삶의 가치관이나 좌우명은 무엇인지도 궁금한데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는지, 아니면 거듭 변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서 가치관도 함께 변해갑니다. 20대의 저는 모험보다는 안정을, 독특하고 튀는 것보다는 평범함을 좇았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하지만 30대의 시작과 함께 ‘끌리는 대로 흘러가는 것에 충실하자’라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행동하고 또 살고 있습니다.



Q. 만약 영상 제작자로서의 삶을 그만두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가요? 그리고 새로운 일을 구할 때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고 싶나요?


A. 저는 영상 제작에 재미를 느껴 이전의 일상보다 열정적일 수 있었기 때문에, 뒤늦게 시작한 영상제작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영상을 시작했을 때 느꼈던 것처럼 강한 끌림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영상만큼 매력적인 것을 접하지 못했어요.



Q. 만약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게 된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A. 일본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한국에 비해, 아니 세계로 범위를 넓혀 봐도 자동차 문화에 있어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예요. 그만큼 영상으로 다룰 수 있는 소재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있는 제 클라이언트 한 분은 저더러 미국으로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일본보다 폭넓고 다양한 기회가 있다나 뭐라나. 미국은 너무 먼데...



Q. 브런치 목요 위클리 매거진 ‘디지털 노마드 가이드북’이 단행본으로 출간된다면 반드시 들어갔으면 하는 내용이 있나요?


A. 디지털 노마드라는 조금은 생소한 라이프 스타일이 앞으로 하나의 주류가 될 미래인지, 아니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가는 과도기적 모습일지 심도 있게 예측해보는 내용을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미래 설계에 참고 좀 하게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자동차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는 이미 이야기했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LJWF 프로덕션을 더 많은 프리랜서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일이 들어오면 모여서 일하고 없을 땐 각자 자유롭게, 조금 게으른 생활을 하면서도 부족하지 않은 수입을 가져갈 수 있는 회사. 제가 출퇴근이 도무지 적응될 것 같지 않기에 규모가 커지더라도 사무실은 만들고 싶지 않아요! 아하하하하핳~



LJWF.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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