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월드컵

축구하자 2-1 이감독, 진짜 국가대표 되다

by 이종인
축구는 독불장군이 아니야. 팀워크야. 혼자서는 할 수 없어.
- 영화 소림축구 中 -


그날 밤 미힐이 ‘빅 뉴스’가 있다며 코치진을 호텔 로비로 불러모았다. 토너먼트의 조 편성 결과가 발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경기 상대는 캄보디아로 결정되었다. 이전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 글래스고 대회에서 33위에 오른 팀이었다. 코치진은 곧바로 전술 미팅을 소집했다. 본격적인 축구 이야기에 선수단 분위기도 오전, 오후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고, 몇몇 얼굴에서는 약간의 긴장감마저 읽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후에는 룸메이트인 감독님과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주로 홈리스 월드컵 무경험자인 내가 궁금한 것을 묻고 유경험자인 감독님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는 “첫 경기 이후 선수들이 많이 당황하고 좌절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날이 밝고 본격적인 홈리스 월드컵 토너먼트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슬로에는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렸는데, 경기장이 설치된 오슬로 시청사 앞이 바다인 탓에 선수들은 부슬비에 차가운 바닷바람까지 맞으며 경기를 치러야 했다.


캄보디아 대표팀은 평균 연령 42.3세의 우리 대표팀에 비해 아주 어려 보였다. 채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선수들이 하나둘씩 경기장으로 들어왔고, 벤치에도 그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문득 저렇게 어린 친구들이 홈리스라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경기는 무려 12골을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캄보디아 대표팀의 8:4 승리로 끝났다. 전후반 7분씩의 길지 않은 경기였지만 선수들은 골키퍼와 필드 플레이어를 가리지 않고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는데, 비가 내려 미끄러운 경기장에서 빠르고 체력 좋은 캄보디아 선수들이 쉴새 없이 몰아붙인 탓이었다. 대체 선수로 발탁되었던 박 선생님의 선제 득점과 멀티골 활약만이 우리 대표팀의 위안이었다.


이어진 토너먼트 경기에서도 대표팀은 참패 또는 석패를 당했다. 반복된 패배에 선수단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고 정신적, 신체적 압박이 가해지자 그동안 잘 다스리고 있었던 선수들의 불안요소도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감독님의 예상보다 더 일찍 당황하고 좌절했다.


대표팀은 결국 전패로 ‘스테이지 1’을 마쳤다. 홈리스 월드컵은 수직형 토너먼트인 동시에 수평형 토너먼트로 진행되는데, 스테이지 숫자는 해당 토너먼트의 단계를 뜻한다. 각국 대표팀은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거듭하면서 대회 마지막 날까지 같은 숫자의 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이 시스템을 간단히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 그룹 스테이지 진행 방식>

- 총 3차례의 조별리그 진행

- 조별리그 상위 팀과 하위 팀을 가려 조별리그 재편성

- 재편성 기준은 상위 팀은 상위 조, 하위 팀은 하위 조

- 각 조 우승팀을 가리기 위한 최종 토너먼트 진행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 *남성부 최종 토너먼트 및 우승컵 이름>

LEVEL 1 HOMELESS WORLD CUP

LEVEL 2 SALVATION ARMY PLATE

LEVEL 3 CITY OF OSLO BOWL

LEVEL 4 NEW BALANCE SHIELD

LEVEL 5 KNIF GLOBE

LEVEL 6 VIASPORT QUAICH


*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에는 남성부 45팀과 여성부 19팀이 출전했으며, 혼성 대표팀도 있었고 브라질, 멕시코, 칠레 등은 각각 남성부 1팀과 여성부 1팀이 출전했다.


이어진 조별리그에서도 대한민국팀의 경기력과 성적은 모두 좋지 않았다. 스테이지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낮은 실력을 가진 팀들을 상대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경기력은 개선되지 않았다. 감독님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매일 밤 지난 경기를 복기하고 전술 회의를 했다. 그러나 선수단의 가라앉은 분위기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여름 내내 강조하고 훈련했던 팀워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선수는 관중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팀플레이가 아닌 개인 공격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선수의 개인행동은 경기장 안과 밖을 가리지 않았는데, 덕분에 선수단 분위기는 어수선해졌고 불신과 분열의 조짐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거듭된 패배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선수도 있었다. 부진한 자신의 경기력이 팀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늦은 밤 갑자기 나를 찾아와 "술을 마시러 가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나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만약 대회 기간 중 술을 마시면 남은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는 것으로 오히려 맞불을 놓았다. 다행히 그가 마음을 다잡은 덕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 사건은 대회 기간을 통틀어 대표팀이 가장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팀의 부주장이자 골키퍼로서 여러 차례 페널티를 내주고, 실점을 많이 허용한 문 선생님마저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자책했고, 골키퍼 장갑을 끼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예상하고, 우려한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었다.


코치와 미디어 담당자, 필요한 경우 통역과 선수 상담까지.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하며 밤낮으로 바쁜 가운데 동시다발적으로 사건이 벌어지면서 나 역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대회 일정은 아직 절반 넘게 남아 있었다.

keyword
이종인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출간작가 프로필
팔로워 2,696
이전 07화06 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