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자 2-1 이감독, 진짜 국가대표 되다
축구의 위대함은 피치 위의 선수들이 아니라, 이 작고 동그란 축구공에 담겨 있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 -
반전의 실마리는 경기장이나 전술 회의가 벌어지는 호텔이 아닌 의외의 공간에서 찾을 수 있었다. 홈리스 월드컵 경기장이 설치된 시청사 주변에는 여러 편의 시설이 함께 마련되어 있었는데, 선수들과 코치진, 그리고 자원봉사자가 함께 이용하는 홈리스 월드컵 식당과 연습 경기장 등이었다. 선수들이 본 경기에 앞서 몸을 풀고 전술훈련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연습 경기장에서는 종종 각국 코치와 선수들이 모여 친선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비교적 실력이 좋은 코치들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선수들을 비롯한 많은 인파가 연습 경기장으로 모여들었다. 경기를 보기 위해 삼삼오오 모인 선수들끼리는 근처에서 론도(공 돌리기)를 하거나 리프팅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식사 시간과 경기 대기 시간이 겹쳐서였을까? 우리 대표팀은 이곳에서 유독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짐바브웨 같은 아프리카 팀들과 자주 마주쳤다. 그들은 축구 실력만큼이나 뛰어난 노래 실력과 춤 실력으로 대회 첫날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스스럼없이 먼저 인사도 건넬 줄 아는 성격 좋은 친구들이었다. 덕분에 아프리카 선수들과는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비단 아프리카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첫 경기에서 우리에게 대패를 선사한 캄보디아 대표팀의 어린 선수들도 식당과 연습 경기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쑥스럽지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대회 내내 축구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애정으로 주목받으며 수많은 팬을 양산했던 칠레 남녀 대표팀, 그리고 여러 차례의 연습 경기를 통해 친분을 쌓은 이집트 대표팀과는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준비한 여러 프로그램도 도움이 되었다. 각국 대표팀 친구들과 함께 떠난 피오르드 투어, 오슬로 시내 트레킹, 오슬로 북쪽 숲 피크닉 등은 훈련과 경기로 지친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었고, 노르웨이와 아제르바이잔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 경기를 직관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점점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 이 대회는 경쟁이 아니라 축제이며, 전 세계의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무대라는 것을. 경기에서의 패배는 물론 가슴 아프겠지만 승리한 상대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으로 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선수들이 안정을 찾자 대표팀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본궤도에 올랐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코치진과 선수단이 서로를 믿고 기다린 결과가 좋았다는 것이었다.
문득 2010년 브라질 리우 대회에서 전체 최하위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경기장 안팎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이며 ‘최우수 신인팀 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마도 그들의 성공은 승리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회를 즐기며 긍정적으로 경기에 임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해냈다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오슬로에서 만난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홈리스 월드컵이 준 선물)
남아프리카 공화국, 짐바브웨 국가대표팀
아프리카 사람들은 춤과 노래가 탑재되어 태어나는 걸까. 그야말로 흥이 넘치는 이 친구들은 보통 10명 이상이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데, 전혀 위화감이 없었고 움직이는 곳마다 긍정과 행복을 전했다.
칠레 국가대표팀
칠레는 남미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축구 열기가 뜨거운 나라라고 한다.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한 칠레 대표팀과 칠레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의 열기로 조금은 쌀쌀했던 오슬로의 날씨가 후끈(!?)해졌다.
캄보디아 국가대표팀
순수한 미소를 가진 팀. 조별리그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두 차례의 패배를 선사했지만, 경기장 밖에서 대한민국과 캄보디아는 언제나 친구였다.
이집트 국가대표팀
뛰어난 축구 실력만큼이나 훌륭한 인성을 가지고 있는 팀. 연습 경기를 통해서 친해졌다. 몇몇 선수들은 대회가 끝나기 전에 나를 찾아와 아쉬운 인사를 건네며 눈물을 보이기도.
벨기에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첫 승리를 선물한 팀. 경기 중 대한민국 선수의 강력한 슛에 벨기에 골키퍼가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쓰러지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다행히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대회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함께 떠난 ‘노르웨이의 숲 피크닉’에서 더 친해졌다.
홍콩 국가대표팀
해외에서는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유대감이 생긴다. 대회 중반에 친해진 이들과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격려했고, 때로는 경기장에 직접 찾아가서 응원 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우리 대표팀과 홍콩 대표팀은 유독 코치진들 간의 사이가 좋았다.
스웨덴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대회 마지막 상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두 팀 모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스웨덴과의 결승전 경기 영상은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으므로 검색해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미래의) 일본 국가대표팀 코치들
일본 국가대표팀은 2017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미래의 코치가 될 두 명의 일본인이 대회에 파견되었다. 둘 중 한 명은 항상 가슴팍에 ’CANADA‘가 새겨진 후디를 입고 다녔는데, 나는 그 친구를 ’카나다 상‘으로 불렀다. 이들과는 대회 이후에도 꽤 오래 연락을 이어갔는데 문득 근황이 궁금하다. 잘 지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