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출정

축구하자 2-1 이감독, 진짜 국가대표 되다

by 이종인
나는 절대 두렵지 않다. 나를 믿는 10명의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 카카 -


월드컵 개막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대표팀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선수 한 명이 갑작스럽게 이탈하면서 대체 선수를 발탁하게 된 것이다. 고심 끝에 코치진은 1차 선발 12명 중 최종평가 9위로 아쉽게 최종명단에 들지 못했던 박 선생님의 재선발을 결정했다.


박 선생님의 재승선에는 같은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절친’이자 먼저 8인 명단에 올라 있던 손 선생님의 증언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는 박 선생님이 최종 8인 명단에 들지 못했음에도,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고 꾸준히 자신과 함께 훈련해왔다고 증언했다. 몸 상태는 물론이고 전술적으로도 기존 선수들과 융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보탰다.


손 선생님의 이야기는 전부 사실이었다. 박 선생님은 운동장에서 자신의 좋은 컨디션을 증명했고, 그간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전술 이해도도 높았다. 그 덕분에 대표팀은 다시 8인 체제로 훈련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언제라도 긴장을 놓거나 스스로 불안요소를 제어하지 못하면 국가대표에서 낙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만든 것이다. 선수들은 월드컵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리고 끝난 후에도 스스로와의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단지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 자신을 갈고닦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 여름 무더위 아래에서 땀흘린 것이 아닌가?


유독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출정의 순간도 다가왔다. 8명의 국가대표 선수들과 3명의 코치진, 여름 내내 국가대표팀과 함께 땀을 흘렸던 이 트레이너님, 빅이슈 코리아 관계자와 취재진까지.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출정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보낸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여름을 자축하고 본선에서의 건강과 안전, 행운을 빌었다.


오슬로에 도착하니 지난 2016년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네덜란드인 미힐 슬롯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힐은 자원봉사자로 처음 홈리스 월드컵에 참여했고, 이후 보람을 느껴 꾸준히 대회와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근무하고 있는 비영리기구에 장기 휴가를 내고 노르웨이에 왔으며, 2017 오슬로 대회에서는 현지 가이드로 대한민국 대표팀을 도울 예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곧이어 또 한 명의 외국인 스태프가 합류했는데 영국 레스터에서 날아온 피지컬 코치 대니 빅스였다. 그와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또한 대니는 팀의 살림을 맡은 매니저님의 연인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매니저님의 영국 유학 시절에 만나 영국과 한국을 넘나드는 장거리 연애를 해왔고, 2017년 대회 이후 결혼에 골인했다.


네덜란드인에 영국인까지. 순식간에 다국적 군단이 된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의 첫 번째 스케줄은 시차 적응과 휴식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장시간의 비행으로 인한 여독을 달랬다.


오슬로에 도착한 다음 날,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이 개막했다. 개막식에는 노르웨이 공주를 포함한 유명 인사가 참석했는데 그녀의 수수한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다. 대회 공식 주제가 * Friends Forever에 맞추어 춤을 추는 자원봉사자들의 공연도 감동적이었는데, 나는 지금도 가끔 이 노래가 생각나 찾아 듣는다.


* 유튜브에서 Friends Forever Salvation Army를 검색하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개막식 후에는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우리 대표팀은 2002년 월드컵에서 시작된 특유의 응원문구인 ‘대~한민국’을 외치며 오슬로 거리를 활보했다. 거리에는 홈리스 월드컵이 열린다는 소식과 대한민국 대표팀이 출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서 반겨주신 현지 교민들도, 여행 중 우연히 대표팀을 만나 응원 메시지를 전해주신 한국인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더욱 큰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는데, 퍼레이드 후에는 나를 포함한 대표팀 여럿의 목이 쉬어 있었다.

반나절 만에 홈리스 월드컵이 경쟁 아닌 진정한 축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유독 흥이 넘치는 아프리카 선수들의 춤을 따라 추기도, 호텔 앞에서 만난 유럽 선수들과 공을 가지고 놀며 언어장벽을 허물기도 했다. 어느새 선수들의 얼굴에도 긴장과 부담감이 아닌 설렘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날 일정은 제법 바빴는데. 오후에는 오슬로 시청 앞에 설치된 경기장에서 연습게임을 했고, 저녁에는 주 노르웨이 대한민국 대사관의 초청을 받아 한식으로 에너지를 채웠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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