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자 2-2 무리뉴 덕후, 축구해설가 되다
나는 하루에 12시간을 연습했고
두 다리 중 어느 하나가 우월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 파벨 네드베드 -
한국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몇 주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 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된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가 이유였을까? 아니면 여름 내내 모든 것을 쏟았던 대회가 끝나고 찾아온 공허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침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이 막을 내린 9월은 유럽의 프로축구리그가 새로운 시즌에 돌입하는 시기였다. 당시 나의 우상 주제 무리뉴는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있었는데, 부임 *2년 차를 맞아 팬들의 기대가 한껏 높아진 상태였다.
*주제 무리뉴는 부임하는 팀마다 2년 차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팬들은 이를 가리켜 ‘무리뉴 2년 차의 과학’이라고 부를 정도.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리고 무언가 몰두할 것이 필요했던 나는 본격적으로 무리뉴와 유나이티드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맨유의 국내 팬 커뮤니티인 ‘The Red Devils’에서도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 공지사항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왔다. 아프리카TV에서 편파중계를 진행할 중계진을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총 모집인원은 2명. 중계진이 되면 아프리카TV로부터 소정의 중계료를 받으며 유나이티드의 리그 경기와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중계할 수 있었다.
그냥 축구를 보는 것도 재미가 있는데, 국내 최대 규모의 축구 팬덤을 대표해서 공식 방송국을 운영할 수 있다고? 게다가 중계료까지 준다니 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게다가 나는 지난 2015년 모 회사로부터 런칭을 앞둔 자사 스포츠 플랫폼의 축구 중계진이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다. 회사의 인사 담당자가 나와 지인들이 운영하던 축구 팟캐스트를 들은 것이 계기였다. 끝내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준비 과정에서 수차례 중계와 해설을 연습한 경험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에 다녔던 스포츠 콘텐츠 회사에서도 아프리카TV 방송국을 운영했었다. 옆자리에서 근무했던 입사 동기가 담당자인 덕분에 인터넷 방송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한두 번인가 회사 방송에 출연한 경험도 있었다.
직접 방송을 운영한 건 아니지만 팟캐스트나 회사 방송 등으로 여러 차례 간접적인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지원서를 쓰는데 전 자신감을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아마추어 축구인으로서 해왔던 것들을 또박또박 지원서에 적어 제출했다.
- 5년 차 사회인 축구팀 감독
- 책 ‘축구하자 : 무리뉴 덕후, 사회인 축구 감독 되다.’ 출간
-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
- 다수의 스포츠 콘텐츠 회사 근무 경력
- 축구 블로그 및 팟캐스트 운영
서류를 작성하며 어느새 축구와 관련된 다양한 이력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그들과 한 가지 다른 점은 나는 누구도 꺾거나 이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 즐기기 위해 축구를 해왔다는 것이었다. 새삼 스스로가 뿌듯하고 대견했다.
며칠 뒤, 팬 카페 운영진으로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 커뮤니티 공식 방송국’의 중계진으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책을 출간하고,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 코치가 되었을 때만큼이나 기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