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자 3-3 이감독, 작전판을 내려놓다
나에게 거만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유럽 챔피언이며 주위에 널려 있는 시시한 감독이 아니다.
나는 스페셜 원(Special One)이다.
- 주제 무리뉴 -
감독이었던 내가 서울을 떠나 완도로 이주하는 것이 확정되면서 소속팀 ‘FC KARIS’에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나는 2013년부터 5년째 이 팀의 감독을 맡고 있었다. 실력도 경험도 부족한 내가 5년이나 팀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팀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팀을 떠나는 이 시점이야말로 다른 그 어느 때보다 팀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팀을 이끌어나갈 새 감독을 찾아야 했다.
5년은 정말 긴 시간이었다. 내가 처음 팀에 입단할 당시 30대였던 형들은 어느덧 40대가 되었고, 대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이제 예전 형들의 나이가 되었다. 5년 사이에 결혼해서 아이가 생긴 팀원도, 군에 다녀오거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은 팀원도 있었다.
5년 동안 팀의 주축으로 활약한 우리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팀에 새로운 선수를 수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매년 입학하는 신입생 중에서 축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친구들을 찾아서 데려오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장기적인 세대교체에 실패했다.
세대교체에 실패한 팀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긴 암흑기를 맞게 된다. 이것은 비단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감독의 교체도 중요하다. 무려 27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었던 알렉스 퍼거슨 경이 팀을 떠나자 유나이티드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은 아주 좋은 예시다.
일반적으로 사회인 축구팀은 1년마다 감독과 운영진을 교체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프로선수처럼 축구가 돈을 벌어다 주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과 축구를 병행하는 것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1년마다 책임과 의무를 팀원 모두가 나누어 맡는 것이랄까.
그러므로 나와 우리 팀의 경우처럼 한 명이 2년 이상 팀을 이끄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퍼거슨처럼 유능한 감독이라면 5년 아니, 10년도 문제없겠지만 나는 전혀 그런 종류의 감독이 아니었다. 오로지 투지와 열정만으로 5년을 버텨온 것이다.
애석하게도 새로운 감독이 짊어질 부담감은 상당할 것이다. 어느때보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팀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고, 새로운 감독에게 필요한 자질이나 조건에 대해서도 적어 보았다.
1. 20대 대학생
2. 매주 꾸준히 참석할 수 있는 팀원
3. 평균 이상의 축구 실력을 갖춘 팀원
4. 스스로 감독을 하고 싶다는 열정을 가진 팀원
차기 감독의 연령과 신분을 20대 대학생으로 정한 이유는 두 번째 조건인 매주 꾸준히 참석하는 일에 최대한 부담을 덜 느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갓 취업해서 회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 그리고 기혼자의 경우 매주 운동장에 나오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KARIS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운동하는 팀이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에게는 부담스러울 여지가 있었다. 역시 20대 대학생이 최적이었다. 대학생이었던 20대 중반에 감독 데뷔전을 치른 나의 사례도 참고했다.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선수들의 경기 출장 여부와 전술, 포지션을 결정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패스조차 하지 못하는 감독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따를 선수는 어디에도 없다. 축구를 잘하지 못하는 감독은 무슨 말을 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은 가장 중요한 열정이다. 사회인 축구팀의 아마추어들은 프로선수처럼 축구 실력이나 경기 결과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이 말은 곧 사회인 축구팀 감독 또한 때로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데도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5년이나 팀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국가대표 축구선수라는 이루지 못한 꿈을 다른 방법, 다른 곳에서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다음 감독에게도 이처럼 거창한 꿈과 열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나는 최소한 그가 작은 야망이라도 품고 있기를 바랐다. 이것은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고, 또 쉬운 마음으로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