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어느 20대 이야기

축구하자 3-3 이감독, 작전판을 내려놓다

by 이종인
그라운드에 내가 있다면, 내 안에 그라운드가 있다.
- 박지성 -


우리는 모두 대학교 친구이자 선후배였다. 그리고 같은 인문대 학생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우리 학교 인문대는 다른 단과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남학생보다 여학생의 숫자가 더 많고, 그마저도 남학생 중에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적은 편이었다. 덕분에 인문대 소속 학과들은 학내 축구대회에서 항상 약체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사이에 입학한 인문대의 남학생들은 달랐다. 자타공인 ‘황금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축구 약체 인문대’라는 편견을 깨뜨렸는데,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2010년대에 열린 한 교내 축구대회에서 인문대 소속 두 학과가 준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다.


대학 내 축구대회와 인문대 체육대회에서 각각 다른 학과 소속으로 뛰던 황금 세대 멤버들은 인문대 축구 동아리 ‘야생마’에서 하나로 뭉쳤다.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비교적 늦은 군 전역 이후에 야생마에 가입했다. 황금 세대와 함께 야생마는 다시없을 전성기를 구가했다. 대학 내 모든 학생을 모집 대상으로 하는 중앙 축구 동아리와의 시합에서도 밀리지 않았고, 때로는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덕분에 우리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공강 시간마다 동아리방에 모여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위닝 일레븐을 하거나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우정을 쌓았고, 밤새 유럽 축구를 봤다.


그러던 중 동아리 내에서 선후배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축구 실력까지 좋아서 ‘갓’으로 불리던 선배 ‘용’이 지인의 권유로 사회인 축구팀인 FC KARIS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카리스는 축구 실력과 팀워크가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배를 따라, 그리고 그들과 친분이 있는 야생마의 핵심 선수들이 하나둘씩 유입되면서 카리스는 점차 팀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이때 <인문대 – 야생마 – 카리스>의 관계는 마치 프로구단의 <유스 - 아카데미 – 1군>과 다름없었다. 인문대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야생마로 모였고, 야생마에서 축구를 잘하는 멤버들은 주말이 오면 카리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이 덕분에 카리스는 쉽게 지지 않는 탄탄한 팀으로 성장했다. 팀은 3년쯤 전성기를 구가했다.


내가 감독이 된 것은 카리스 입단 1년 후의 일이었다. 야생마 출신의 카리스 1대 감독 ‘라’가 초석을 닦아둔 덕에 비교적 연착륙이 쉬웠고 이후 5년이나 팀을 이끄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20대 초중반에 팀에 입단했던 우리는 어느덧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있었다. 취업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더 열심히 준비해야 했다. 그러려면 때로는 주말 축구를 반납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둘 팀을 떠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축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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