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어느 30대 이야기

축구하자 3-3 이감독, 작전판을 내려놓다

by 이종인
미친 사람이 이성적인 사람보다 세상을 더 많이 변화시킨다.
- 에릭 칸토나 -


때는 바야흐로 2010년. 어느 사회인 축구팀에 소속되어 뛰던 ‘기’와 그의 친구들이 있었다. 팀은 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음에도 본 대회에서 기와 친구들은 1분도 뛸 수 없었다. 감독이 자신과 친한 회원들을 출전시키기 위해 기와 친구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던가. 기와 친구들은 그 팀에서 나와 새로운 팀을 만들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새 팀의 이름은 회원 대부분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에서 영감을 받은 ‘FC METRO’었고, 목표는 오직 하나 원소속팀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메트로는 리벤지 매치에서 0:3으로 처참한 패배를 당한다. 기와 친구들은 다시 한번 복수를 다짐한다. 한 경기라도 그 팀을 이기는 날 후회 없이 해체하리라!


메트로는 이후 10경기에서 전패를 당한다. 그마저도 득점하지 못하고 0:4, 0:5로 처참하게 패한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대로라면 복수는커녕 정상적인 축구가 불가능했다. 기와 친구들은 팀의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인의 지인, 그리고 그들의 지인까지 영입을 시도했다.


그러던 2010년 말, 인상적인 축구 실력을 보유한 대학생 ‘용’이 팀에 합류한다. 팀명이 메트로에서 카리스로 바뀐 것도 이즈음. 기의 어머니가 추천한 이름인 카리스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이 있었다.


기와 친구들의 맛집 공세와 따뜻한 팀 분위기에 매료된 ‘용’이 대학 축구 동아리 후배들을 카리스로 데려오면서 팀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대학생들의 연착륙으로 팀은 전성기에 돌입했고 연승가도를 달렸다.


어느새 기와 친구들의 나이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 마흔을 향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신체 능력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혼을 준비하거나 이미 가정을 이뤘다면 주말마다 축구를 하기가 더욱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와 친구들은 최선을 다해 운동장에 나왔고 경기가 끝나면 팀의 동생들에게 맛있는 밥과 술을 사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먹고사는 등의 이유로 초창기 회원이 하나, 둘 팀을 떠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전히 팀에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창단 이후 줄곧 단장의 역할을 맡아 팀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기’였고, 다른 한 명은 팀의 살림꾼이자 최연장자로서 동생들의 존경을 받았던 ‘이’였다.


두 사람은 기혼자였지만 피치 못할 이유가 없다면 주말마다 축구를 하러 갔다. 때로는 운동장에 아내와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팀은 감독 교체 이후 불의의 사고가 겹치며 부침을 겪는다.


팀의 부진이 1년 가까이 길어지자 기는 결국 제 손으로 팀을 해체했다.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말자.’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누구도 기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지난 8년 동안 기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고, 그 덕분에 어떤 이들은 멋진 20대를 보냈다.

keyword
이종인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출간작가 프로필
팔로워 2,696
이전 21화03 어느 20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