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게는 축구가 있다

에필로그

by 이종인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게는 축구가 있습니다. 단 한 달이라도 국민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2002 월드컵 출전을 앞둔 아르헨티나 대표팀 공격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한 말이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국가 부도를 선언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나이지리아와의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조국에 1:0 승리를 안긴 것이다.


이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 것은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춘 2020년 초. 그해 2월,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이탈리아 여행을 강행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코로나 확진자는 단 한 명뿐이었고,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고 있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의 풍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공항은 무서우리만치 조용했고, 마스크는 품절 대란을 겪었으며, 뉴스에서는 연일 초토화된 이탈리아와 세계 각국의 모습을 보도했다. 다행히도 귀국 후 실시한 코로나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한편 국내 모든 실내외 체육시설에는 이용 금지령이 내려졌다. 사랑하는 축구와 생이별하면서 경기장에서 안부를 주고받던 사람들의 얼굴도 점점 잊혀 갔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지 꼬박 1년 후 다시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확진자가 거의 없는 완도에 살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오랜만의 축구에 몸은 아주 힘들었지만 혼자 공을 가지고 놀거나 중계를 볼 때와 달리 무언가가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축구를 잃어버린 기간 동안 시달렸던 크고 작은 질병이 사라지고 늘어난 체중도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라는 인간은 정말이지 축구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고, 사람들과 함께 운동장을 뛰는 일,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음을 축구를 잃어버린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다시는 축구를 멈추지 않으리라. 모든 것이 무너지더라도 축구만은 영원하기를.

keyword
이종인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출간작가 프로필
팔로워 2,696
이전 29화이탈리아 밀라노 더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