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해 설악의 겨울... 빙벽 등반 이야기 3
▶ 그해, 설악의 겨울... 빙벽등반 이야기(Main Story 2)
- 설악산 동계 (`02년 1월 28일 ∼ 2월 7일 10박 11일) 중,
○ 2월 2일 (형제폭)
설악산, 겨울 추위로 얼어붙은 폭포인 빙벽을 시작하는 날이다. 야영장에서 소공원까지 경묵형의 차로, 그리고 걸어서 드디어 형제폭이 보인다. 이미 도착을 하니, 여러 팀이 보인다.
아래에서 스크류(빙벽 고정물의 하나다) 설치할 자리와 올라갈 자리를 파악한 후 출발! 오른쪽, 왼쪽은 이미 자일(등산용 로프)이 2동씩 걸려 있다. 스크류를 3개 설치하고 올라갈 작정을 하고 2개까지 설치, 오른쪽으로 가는 게 쉬워 보이는데 이미 걸려 있는 자일이 신경 쓰인다.
중간으로... 올라가다 보니 고드름에 오버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여기를 넘으면 바로 설치하고, 그다음엔 정상... 선반모양의 얼음 상단에 피켈을 찍고 아이젠으로 발 디딜 곳을 차 보지만 계속 얼음이 깨진다. 한걸음만 제대로 일어서면 오른쪽 피켈을 더 멀리 찍고 그럼 올라갈 수 있는 거 같은데 쉽지 않다.
팔에 펌핑이 나고... 아껴둔 체력이 많이 떨어진다. 오버가 져서 그런지 피켈을 찍었지만 피켈을 빼는 방향으로 힘을 받는다. 으-- 그리고... 순간 피켈이 빠지는 게 보이고, 몸이 붕 뜨는 기분이다. "앙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몸에 충격이 오고, 힘이 쭉 빠진다.
다행히 2번째 설치해 둔 스크루에 걸렸지만 이미 몸은 쇼크를 받고 힘은 하나도 없이, 그러나 다행히 의식은 있다. 성대팀 외 여러 팀이 도와줘서 빌레이 보는 곳까지 하강... 그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15m∼20m 정도 떨어졌다는 소리와 가슴과 왼팔, 왼쪽 다리에 통증이 오고 숨 쉬는 게 힘들다. 말도 안 나오고...
곧이어 들리는 형들과 동기들의 목소리... 체온 유지를 위해 정말 많은 옷을 덮고, 휘발유 버너를 틀고, 덕규랑 현준이랑 따뜻하게 덮인 손으로 얼굴을 감싸준다. 호성형과 일철이도 다리 주물러서 체온이 안 떨어지게 하고, 다른 팀들은 구조대에 연락하는 소리도 들린다.
시간이 흐르고 헬기가 뜨고 단카(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나도 많이 아팠지만 오히려 나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힘들고 정신이 없음이 느껴진다. '앞으로 얼음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다쳤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정신이 없을 때 헬기에서 엠블런스로 그리고 속초의료원으로...
스플린트를 풀고 아픈 부위를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여러 검사를 받은 후 이제야 좀 진정이 되나 보다. 다행히 골절된 부위는 없어서 수액을 맞고 병동으로... '얼음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어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몰려드는 피로로 잠...
눈을 뜨리, 현준이가 보인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걱정이 돼서 왔단다. 왜 그리 현준이가 반가워 보이던지. 하루를 더 쉬어보고, 이상 없으면 다시 얼음 하러 가겠다니 현준이 펄쩍 뛴다. 서울로 가라고... 티격태격 싸우다가(?) 같이 병원에서 자기로 하다. 빙벽 사고는 일단 한번 발생하면 대부분 사망 또는 중상이다. 20여 m를 떨어졌는데 골절된 곳 하나 없다는 게 지금도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천운인가? 앞으로 정말 좋은 일만 하면서 다시 얻은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 그리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잠시나마 탈출했던 국토종단을 다시 이어서 완주할 수 있겠네... 정말, 정말... 다행이야...! 아∼ 진짜로 정신없는 하루다. 마치 꿈을 꾼듯한... 그리고 정말 꿈속으로...
○ 2월 3일 (속초의료원 - 비선대 산장)
오전에 눈을 뜨니 몸에 힘은 하나도 없지만, 왼쪽 다리 쪽 골반을 제외하고 팔과 가슴은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빙벽 환자가 헬기 타고 실려와서 전 속초의료원의 대부분 의료진이 달려왔었는데... 골절 하나 없다는 게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봐도 "천운"이다!
덕규랑 일철이랑 호성이 형이랑 병원에 왔다. 정말 걱정돼 죽는 줄 알았단다. 나도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어쨌든 다시 보니 정말 반갑다. 호성이형 얼음 하러 왔다가 나 다치는 바람에 얼음도 못해보고, 덕규랑 일철이, 현준이도 나 때문에 일정이 미뤄져서 많이 미안하다.
같이 서울로 가자는 호성이 형에게 다시 얼음 하러 간다고... 만약 못하더라도, 텐트라도 지키면서 애들 하는 거 보고 싶다고 사정사정해서 형 먼저 서울로... 일단 병원에서 점심때까지 휴식을 취하고, 형이 주고 간 스틱으로 다시 비선대 산장까지...
비선대에 오니 또 한 번 난리다. 동기들부터... 성대팀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더니, 오늘 잦골 비박이란다. 고맙다는 말은 다음으로 미루고, 많이 걱정하는 동기들과 일철이 한테 안 아픈 척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보였으려나?
내일은 몸이 더 회복되어서 꼭 같이 얼음을 해보려는 생각에 자면서도 계속 팔이랑 다리랑 움직여 본다. 나 때문에 팀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생각에 혼자 고민도 하고... '내일은 애들 먼저 보내고 천천히 따라가서 얼음을 하던지, 아님 애들 얼음 하는 거 보면서 라면이라도 끓여줘야지'라는 생각으로 오지도 않은 잠을 억지로 청해 본다.
○ 2월 4일 (형제폭)
먼저 애들을 보내고, 천천히 가니 이미 덕규가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 몸은 괜찮냐는 질문에 웃으며 잘 올라가라는 말을 해주고, 나도 준비를...
떨어지면서 장비가 많이 바뀌고 상했다. 유종이 코플라치부터, 고어텍스 오버트라우저 바지는 찢어지고(나중에 사주려면 무사히 얼음 마치고 세뱃돈 많이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어텍스는 비싼 장비다^^;;;) 덕규 자일 걸고, 내가 Second로 가겠다니 또 현준이 무지 걱정한다. 힘들면 내려온다고...
그래서 출발... 스크류 회수하면서 한참 가다 보니 옆으로 내가 저번에 떨어진 곳이 보인다. 자일이 있으니 다시 한번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덕규에게 " 덕규야~! 내 머리 위로 혹시 설치한 거 있냐?" 물었더니 오른쪽으로 돌아 설치를 하나 했단다. 회수하려면 여기는 다음에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아쉬움과 아울러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드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 그럼 나도 우측으로... 무사히 올라가고, 현준이랑 일철이도 잘 올라온다.
렌턴이 없는 관계로 내가 먼저 내려가고 다른 일행은 정리하고 바로 내려오기로 하고... 골반을 다쳐서인지, 무릎 아래로 움직이는 것은 그나마 괜찮은데, 경사진 곳을 오를 때나 내릴 때면 참 힘이 든다. 스틱의 도움으로... 그리고 오기로... 먼저 비선대에 도착하니 명우형이 보인다. 형과 나를 도와준 성대 형들도...
막걸리 한 잔 하란다. 정말 너 죽는 줄 알았다며... 제2의 인생 축하니 뭐니 이런 말들을 듣는데 또 한 번 아찔해진다. 경험도 지식도 많이 부족하다는 말은 가슴에 와 닫는다.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그날 비선대에서 마시는 막걸리는 너무도 달고 맛있다. 그리고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고맙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2월 5일 (잦은 바위골 - 50m 폭 - 100m 폭)
잦골은 어프로치가 먼 관계로 아침 일찍 출발이다. 멀찌감치 일행들을 보냈는데 잦골 초입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도 걱정이 되나 보다.
합류를 하고 좀 쉰 다음에 바로 잦골로! 잦골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길이 멀고도 험하다. 자일 쓰는 곳도 4곳 정도... 형제폭 어프로치와 달리 몸에 무리가 많이 오는 느낌이다. 역시 스틱과 힘든 곳마다 기다려주는 현준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가지도 못했을 거다... 현준아 정말 고마웠어... 몸이 안 좋아 속도가 쳐지는 날 기다려주는 현준이에게 미안하지만 현준이는 이렇게 나랑 다시 같이 갈 수 있는 게 더 고맙단다.
아무도 없었으면 나 아마 울었을 거야... 그래 더 힘을 낼게... 현준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한다. 밑에서 나 밀어주고, 위에서 끌어주고... 차라리 서울로 갔으면 이런 고생 안 시켰을 텐데, 괜히 남아 더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니 막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힘들게 올라오니, 덕규와 명우형이 준비를 하고 있고, 일단 어프로치는 끝냈으니 좀 안심이 된다.
덕규가 자일을 걸고, 명우형에 이어 우리도 유마(등반 장비의 하나다) 등반이다. 자일을 픽스시키고 유마로 등반하니 탑 빌레이만 보면 되니 참 편하다. 원래 계획은 50m 폭 아래서 야영을 할 생각이었지만 다른 팀(인원이 꽤 많다.)이 오는 관계로 100m 폭 아래에 텐트를 치기로 하고, 모두 어택을 메고 50m를 다시 오른다. 어택을 메고 빙벽을 오르다니... 오늘은 아주 체력을 모두 설악에 쏟아붓는 기분이다. 확보를 하고, 덕규랑 일철이 빌레이를 보고 100m로... 100m 바로 아래서 사이트를 잡고, 나무를 해서 모닥불을 만들고... 저녁... 그리고 일철이가 아까 50m에서 막걸리 먹고 싶다는 일념으로 다시 비선대에서 사 온 막걸리랑 소주를 먹는다. 모닥불 주위에 모여서, 목이 마르면 바로 얼음 아래로 흐르는 시원한 폭포수를 마시며... 명우형이 참 좋은 말을 많이 해준다. 산노래도 부르고...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 2월 6일 (100m 폭 - 비선대 - 소공원 - 야영장)
100m 폭포(줄여서 "100m 폭"이다)가 생각보다 많이 안 얼어있어 일단 하단부만 하기로 결정을 하고 드디어 등반 시작!
어제 그 팀도 100m 폭까지 왔다. 그 팀 Top도 98학번인데 장난이 아니다. 피켈로는 이미 덕규가 걸어놓은 우리 자일을, 아이젠으로는 자기가 달고 온 자일을 막 찍는다. 얼음을 막 깨부수는 것 같이 등반하는데, 우리 자일이 많이 상하는 거 같다.
덕규랑 명우형에 이어 3번째로 등반을 하고 하단부 꺾이는 곳을 보니 1학년때 생각이 난다. 그땐 걸어가서 턱진 곳에 스크류를 3개 밖았었지... Second 올리고, 기다리는 동안 얼음을 깨 먹으면서 팥빙수라고 우기던 때가 있었다. 참 재미있었는데, 해가 바뀌니 기분도 많이 다르다.
명우형과 덕규가 먼저 50m 폭 하강자일을 걸고 가고, 일철이에 이어 현준이가 마지막으로 장비를 다 회수하고 우리도 하강... 역시 잦골 탈출하는 일은 올라올 때 보다 더 힘들다. 역시 고생하는 현준이... 1학년때 그 무거운 어택을 메고도 씩씩거리며 잘 가던 곳이 몸이 아픈 곳이 있으니, 참 어렵다.
자일 잡고 내려가는 곳에서 현준이가 거의 거꾸로 무등을 태우고,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비선대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떨어졌다. 현준이랑 도착하니 이미 먼저 간 일행들은 막걸리를 마시고 있고, 우리도 한잔씩... 1학년때도 안 퍼졌던 길을 오늘은 정말 양갱이 한 개를 안 먹었으면 퍼질뻔했다는 게 웃음이 나온다.
비선대에서 소공원까지 내려오는 길 내내 현준이가 많은 힘을 준 게 참 고맙다. 정말 너 때문에 동계 끝까지 마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했더니, 현준이는 내가 아픈 몸으로 동계같이 마쳐준 게 더 고맙단다. 정말 이번 동계는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거다.
현준, 덕규, 일철... 짐도 무거울 텐데, 내 짐도 많이 덜어주고, 안 보이는 곳에서 정말 많이 도와줬기에 잘 동계를 끝낼 수 있었던 거 같다. 모두 모두 정말 고마워! 이제 내일이면 정회원이 된다는 일철이, 그래서인지 저녁 찌개로 끓인 김치"찌개가 정말 맛있다. 물론 명우형이 사주신 많은 재료가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 내일이면 우리 모두 무사히 서울로...
○ 2월 7일 (양영장 - 속초터미널 - 서울)
잘 있거라 설악아! 다시 보는 날까지!! 10박 11일의 동계가 매듭지어지는 순간이다. 나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어진 동계가 된 거 같다. 현준이도 잘 대장 넘기고, 덕규도 잘-- 대장 받고, 일철이는 어느새 정회원이 되고... 나도 좀 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 현준, 덕규, 일철, 그리고 많이 걱정했을 형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할게요!!
- To be conuti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