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화이트크리스마스

팔자 좋은 여편네들-군인가족의 라떼이야기02

by 노을

20여년 전에도 기막힌 일이 있었다.


소령을 진급하고 받는 육대 교육의 성적이 중령 진급에 큰 영향이 있다고 믿었다.

마치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면 더 이상의 진급은 없을 거 같은 간절한 심정으로,

남편들은 새벽까지 수험생 못지않게 공부를 해야 했다.


가족들은 (가족은 가족전체가 아닌 배우자를 말한다)

아이마저 공부에 방해될까 노심초사 학습분위기 조성에 힘쓰며, 홍삼이나 오가피를 끓여 먹이고 응원을 보탰다.


4개월의 일반과정 상위 10%는 1년의 정규과정에 편입될 수 있었다.

아파트도 정규과정 동과 일반과정 동으로 나뉘었다.

들어가는 입구만 봐도 정규인지 일반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그들만의 모임도 만들어졌다.


안타깝게 남편도 정규과정 편입을 위해 죽어라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독박육아는 곧 가족의 임무가 되었다.


딸아이가 병원에 때도 남편은 없었다.

심지어 수술날도 옆은 비어있었다.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타들어가는 입술을 찬 물로 적셔가며

자꾸만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수술실 문이 열리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4개월 만에 남편은 송추로 발령이 났다.


아들은 광탄에서 입학해 1학년의 두 번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아이의 세 번째 학교를 알아보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쌀을 씻으려니 물이 나오질 않았다.

'어 왜 물이 안 나오지?'

친한 엄마한테 물어보니 그 집은 잘 나온단다.

앞집 문을 두드렸다. 그 집도 잘 나온단다.


남편한테 전화를 했다.

"우리 집만 물이 안 나와!"


남편은 잠시 후 믿기 힘든 말을 했다. 자대배치를 받고도 이사를 안 가는 세대에 단수 조치를 했다는 것이다.

귀를 의심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가빠졌다.

뭐라고? 이게 말이 되는가!

서러움이 북 바쳐 오르고 목이 메었다.


남편이 알아보고 해결한단다.

남편에게 물었다.

"나 전화해도 돼? 관리실에 그 높은 분한테 전화해도 돼?"


전화를 했다.

어떻게 애들 밥 할 시간에 물을 잠그는 비인간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느냐고.

윗분의 명령이라 자기는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그 윗분을 바꿔달라 했다.

잠시 후 그 윗분은 아닌 다른 윗분이 전화를 받았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흔들리는 내 목소리가 귓속에서 버둥거렸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발령 난 지 2주도 안 됐어요.

집이 있어야 이사를 가지요.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렸나요?

바꿔주세요. 제가 직접 말할게요"

자기가 윗분께 전하겠다는 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떨리는 손때문에 전화기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덜그럭 거렸다.

깊은숨을 쉬고 한참을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엄청난 용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악다구니였다.

명색이 대한민국의 육군 소령가족이 받는

비 인간적 처사에 대한 비참함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남편에게 누가 될까 누르고 눌러서 지른 비명 같은 항의였다.



삼십 분쯤 후 밖에서 관리병 소리가 들렸다.

수도를 틀었다.

목에 걸린 듯 푸식푸식 거친 숨을 내뱉는 것도 잠시

콸콸콸 물이 잘도 나온다.

쌀을 씻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 위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아무도, 어떤 설명도 없었다.

사과는커녕 자초지종도 알 수 없었다.



일이 있고 채 일주일 안 돼 집이 났다.

이삿짐센터에 연락해 가장 빠른 날을 잡았다.


이삿날,

눈이 펑펑 내렸다. 하얗고 이쁜 함박눈이 온 세상을 조금씩 바꿔놓고 있었다.

캐럴송이 울려 퍼지는 2004년 12월 24일.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남편이 발령받은 지 20일이 되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놀고 있던 두 아이를 차에 태웠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캐럴송에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뿌연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육대 아파트가 보였다.

더욱 커진 눈송이가

쉼 없이 차창에 떨어졌다 부서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침에 짐을 뺀 집에, 간신히 바닥만 쓸고 짐을 넣었다.

여군 장교가 아버님을 모시고 살았던 집이란다. 담배연기에 찌들어 벽이 시커멓고 냄새까지 배어있었다.


다음날부터 그릇을 다시 꺼내고 미처 닦지 못한 싱크대를 청소했다.

찌든 벽에 락스를 뿌리고, 아이들이 썼던 천기저귀가 시커멓게 변할 때까지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락스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구토가 날 때까지.


그게 여섯 번째 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