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의 갈취(착취)?
졸업생 중에 지금도 연락하고 사후 지원하는 학생이 있다.
졸업과 동시에 자동차 전기 관련 강소기업에 취업했다. 한 달 월급은 기본 230만 원, 시간 외 수당 포함하면 260~280만 원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학생은 대도시에 친인척이 없었다. 처음에는 장애인생활가정을 추천했지만 며칠 적응하지 못하고 나왔다. 나와 함께 회사 근처에 원룸을 구했고, 혼자 밥을 해 먹으며 자립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학생의 가정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이혼한 가정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으며, 물론 이혼한 가정이 전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뚜렷한 직장이 없고 수급자로 등록되어 있었다. 친모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가끔 친모에게 가서 점심도 먹고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혼 후 국제결혼을 하려고 결혼중개 회사에 많은 돈을 줬다. 첫 번째는 결혼 상대를 찾지 못했고, 몇 년 후 두 번째 국제결혼을 위해 동남아까지 갔다. 그 모든 비용을 학생이 모아둔 돈에서 냈다. 천만 원 이상을 아버지의 국제결혼 비용으로 준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아버지와 통화했다.
"아이의 삶을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아이의 월급을 모두 가져가면 되겠습니까?"
학생에게도 말했다. "앞으로 아버지에게 돈을 주지 마라. 용돈 정도는 줄 수 있지만 네가 벌어둔 돈을 모두 주는 것은 아니다."
학생의 친모가 돌아가시고 친모 앞으로 되어 있던 땅과 얼마 안 되는 사망보험금을 아버지가 또 달라고 했다. 학생은 또 아버지에게 줬다고 한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져서 장애인 직원을 먼저 퇴사시켰다. 나중에 회사가 좋아지면 다시 오라고 했지만, 학생은 이미 퇴사한 후였다.
나는 여러 곳에 취업을 시켜서 일을 하게 했지만, 처음 회사보다 월급이 반도 안 된다며 거부했다. 적어도 250만 원 이상 되는 곳을 원했다. 지금은 수급자로 생활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 꼭 전화가 온다. "월급 많이 주는 회사에 가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발달장애인에게 그만큼 많은 월급을 주는 회사를 찾기는 어려워졌다.
오늘 또 전화가 왔다.
"할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했어요. 치매와 뇌졸중으로 입원했는데, 제가 간병을 해야 한대요."
"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있는데 왜 네가 간병을 해야 하니?"
"할머니께서 다른 사람은 싫고 저만 된다고 하세요."
일은 못 하고 할머니 간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는 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있는데 화가 나지 않니?"
"어릴 때 할머니가 저를 자주 돌봐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간병을 해야 해요."
가정과 친인척이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것은 차별이다.
왜 다른 친인척 중에 비장애인이 있을 텐데,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이러한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가? 안타깝다.
이것을 인권의 문제로 말해야 하는지, 차별의 문제로 말해야 하는지, 장애 인식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있지만 가족에게 적용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오늘도 나는 인권과 차별금지에 대해 고민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착취하는 것. 효도라는 이름으로,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의 돈과 노동력을 빼앗는 것. 이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학생은 할머니가 자신을 돌봐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간병을 자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자발적인 선택일까? 가족의 압력, 사회적 기대,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만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는 없는가?
세 명의 아들이 있는데도 손자인 발달장애인 청년이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 이것이 정상인가? 아버지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아들의 월급을 자신의 국제결혼 비용으로 쓰고, 친모의 유산마저 가져가는 상황. 이것이 가족인가?
법은 장애인을 사회에서의 차별로부터 보호한다. 하지만 가족 내에서의 차별과 착취는? 그것은 사적인 영역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되고 있다.
성년후견인 제도가 있지만, 부모가 살아있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우 적용하기 어렵다. 재산관리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돈은 자신을 위해 쓸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효와 가족애를 강조하는 우리 문화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가족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결국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 가족 상담, 재정 관리 지원, 법적 보호 장치. 그리고 가족 내에서도 장애인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 개선.
오늘도 학생에게서 전화가 올 것이다. "선생님, 월급 많이 주는 회사 없어요?" 혹은 "할머니 간병하느라 힘들어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자리를 찾아주고, 조언하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이름의 착취를 막을 방법, 그리고 차별의 사각지대가 있을 것이라고, 오늘도 나는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