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여정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남학생이 있었다. 수줍음이 많아 여학생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당시 장애 등급 1급의 발달장애 학생이었다.
처음 만난 날, 그 학생은 아버지와 함께 왔다. 면담을 하며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우리 아이가 집에만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교육을 받으면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요?"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당연했다. 나는 그 학생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1급이면 가장 중증인데, 이 학생은 말을 참 잘했다. 2급, 3급 친구들보다 오히려 더 잘 표현했다.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이야기하고,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여건에서도 자기 입장을 잘 전달하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기능적인 면은 전혀 달랐다. 다른 친구들보다 정말로 느렸다.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물건의 같은 짝끼리 맞추는 것도 어려워했다.
교육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 남학생에게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아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시험 없이 교육만 받으면 자격증을 주던 때였다. 지금은 시험과 실습을 거쳐야 하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요양원이나 병원에 취업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작업 능력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취업이 쉽지 않아 보였다.
부담이 컸다. 4명 모두를 합격시켜야 한다는 책임감. 특히 이 남학생은 1급 발달장애인이었다.
병원 실습이 시작되었다. 여학생들은 잘 적응했다. 하지만 남학생은 달랐다. 병원 호실에 들어가면 창문을 보고 가만히 서 있곤 했다. 간병사들이 많이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간병사와 관리자들을 만났다.
"이 학생에 대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느리지만 조금씩 좋아질 겁니다."
간곡하게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2주간의 현장훈련이 끝났다. 다행히 3개월 수습 기간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학생은 7년을 근무했다. 7년이다. 처음 창문만 바라보던 그 학생이, 7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했다. 결국 병원에서 간병보조 인력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방침으로 퇴사했지만, 그 7년은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퇴사 후 1년 정도 집에서 지낸 후, 다시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가 집에서 놀고 있는데, 직업훈련을 조금 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학생은 직업학교에 다시 입학했고, 지금도 잘 다니고 있다.
우리는 발달장애인을 대할 때 기다려줘야 한다. 인내하고, 참으면서 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쉽게 이야기하고, 때로는 모형으로 설명하고. 그래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다.
그 장애인의 속으로 들어가면 많은 것을 웃게 만든다. 그 발달장애인의 속으로 들어가면, 세상이 보인다.
나는 오늘도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계속해서.
1급 발달장애인이라는 진단, 창문만 바라보던 그 모습, 그리고 7년이라는 근무 기간. 이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기다림과 인내로 가능해진다는 것.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진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