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모든 장애인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성년후견인제도가 시행되기 전, 혼자된 장애인은 장애인 보호시설에 가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후견인제도로 인해 혼자된 장애인을 대상으로 후견인을 선임한다. 부모가 안 계시면 친척, 지인, 공무원, 사회복지사가 그 장애인의 후견인이 되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돕는다.
나는 이 후견인제도가 시행되기 전, 후견인처럼 학생들을 돌봤다. 학생들이 취업하면 기숙사가 있는 곳은 사장님과 이야기해서 기숙사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했고, 기숙사가 없는 회사는 장애인생활가정에서 다니게 했다. 기숙사나 생활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사장님과 사회복지사에게 말하라고 했고,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내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한 학생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학생이었다. 시설에 있다가 성인이 되어 나와 취업하게 되었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기숙사가 있는 회사에 취업시켰다. 담당자에게 잘 부탁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일하고 난 후 제대로 씻지 못하는 환경이었고, 낮에 먹었던 반찬을 저녁에 그대로 주었다. 아침에는 밥만 주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사장님께 "이것저것 잘못된 것 같습니다"라고 따졌지만, 사장님은 "알았습니다"라고만 하고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나와 사장님 사이가 약간 불편해졌다.
이 학생은 그 회사에서 7년을 일했다. 그러다 더 이상 회사에서 일하기 싫다고 내게 전화가 왔다.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일을 많이 시켰고, 기숙사에 있다 보니 쉬는 날에도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장애인생활가정에 갈래? 아니면 원룸에서 생활할래?"
본인은 원룸에서 자유롭게, 다른 사람 간섭받지 않고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러면 원룸을 알아보자."
적당한 원룸을 구해서 잘 지내는가 싶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비장애인 친구들이 매일 찾아왔다. 그동안 벌어둔 돈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비장애인 친구들은 학생을 노래방, 게임방, 나이트클럽 등에 데리고 다니며 벌어놓은 돈을 엄청 많이 쓰게 했다. 지금은 수급자로 신청해서 수급비로 살고 있다.
성년후견인만 있었어도 그 학생이 잘 살았을 텐데. 내가 관리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어서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하는 것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것을 정책으로 반영한다면 이러한 안타까운 일들이 없지 않았을까?
많은 장애인 부모, 사회복지사, 특수교사들이 이러한 일들을 겪었기에 정책을 반영하여 혼자 선 장애인에게 후견인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 빨리 도입했다면 이러한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오늘도 차별이라는 생명선 앞에 서 있다. 이 시간에도 장애인 당사자는 차별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 학생에게 말했다. "비장애인 친구를 멀리해라. 원룸도 다른 곳으로 옮겨라."
지금은 혼자서 잘 생활하고 있다. "취업해라"라고 했지만,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다고 한다.
"그래, 조금 쉬다가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있을 거야."
오늘도 나는 그 학생에게 안부를 묻는다.
이 일을 겪으며 절실히 느꼈다.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개인의 선의와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성년후견인제도는 단순한 법적 제도가 아니라 장애인의 삶을 지키는 안전망이다.
7년간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을 악의적인 친구들에게 빼앗기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면. 기숙사에서의 부당한 대우를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면. 자립 생활을 하면서도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하지만 그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교사인 내가 개인적으로 돕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법적 권한도 없었고, 24시간 함께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성년후견인제도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장애인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제도를 모르거나, 신청 과정이 복잡하거나, 적절한 후견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정책으로 반영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피해를 입는가. 그래서 우리는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현장의 이야기를 정책 입안자들에게 전해야 한다.
그 학생은 지금 쉬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일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