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아주 오래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대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나는 교회 고등부 지휘자로, 중등부 교사로 교회 봉사를 하고 있었다. 1월 초 처음 고등부 지휘자 인사를 하게 되었고, 그중에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성가대가 활성화되었다.
보통 고등부 성가대는 30~40명 정도 모였다. 대학 때 다니던 교회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4명의 고등학교 1학년생들이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들이 있으면 다른 학생들이 잘 어울렸고, 그들이 없으면 분위기가 엉망이 되곤 했다.
2명은 공업고등학교에 다니고, 2명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다. 인문계 2명은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공업고등학교 2명은 그나마 하는 편이었다.
그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에 나는 고등부 지휘를 그만두고 대학부 지휘를 맡게 되었다. 대학부 지휘는 너무 힘들었다.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이 많았고, 교회도 잘 나오지 않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1년 넘게 하다가 지휘자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갔다.
고등학교 때 가르쳤던 4명의 학생들 중 2명은 대학교에 갔고, 2명은 대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몇 년이 흘렀을까? 나도 직장 생활하고, 그 아이들도 직장 생활할 때 다른 교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중 가장 가깝게 지내고, 함께 동거하고, 같이 놀고 먹는 제자가 있었다. 여기서 제자는 교회 제자라고 하자. 나와 나이 차이가 5살 난다.
사회에서 만났는데 많이 변해 있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잘되었다고 한다. 나와 함께 생활하는 제자는 뚜렷한 직장이 없고,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택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빠지지 말고 계속 나가자고 했지만, 그것이 잘 안 된다고 했다.
나도 혼자였고, 그 제자도 혼자였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자주 어울리고, 우리 집에서 생활하다시피 했다. 함께 운동하고, 배드민턴, 볼링, 탁구 이런 운동을 같이하며 생활했다.
그 제자는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고, 내가 다리 수술할 때 간병을 해주던 제자였고, 내가 무슨 일을 부탁하면 무엇이든 들어주던 제자였다.
어느 날 그 제자가 "형님, 형 집에 주소를 옮겨서 수급자로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 제자의 첫사랑이자 끝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헤어졌다. 내가 옆에서 보고 있어서 너무 안타까운 광경을 보곤 했다. 이 동생은 직장이 없고 하루 살아가는 택배 기사로 살고 있어서 그 여성이 나중에 떠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옛날 어느 날 둘이서 술 한잔하고 동생이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우리 집하고 노래방이 조금 떨어져 있어서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우리는 술을 먹었기 때문에 음주운전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동생은 직장인도 아니고 택배 일을 하니 운전해도 괜찮다고 하고, 나는 안 된다고 했다. 극구 동생은 운전해서 가자고 했다.
할 수 없이 함께 가는 중에 경찰 음주 단속에 걸리게 되었다. 물론 운전은 그 동생이 했다. 음주 측정을 했더니 면허정지가 나왔다. 벌금이 백만 원이 나온다고 했다.
그 동생은 돈이 없으니 감방에서 산다고 했다. 정말로 교도소에 가서 하루 살면 벌금이 감면되는 생활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가끔 가서 영치금을 주곤 했다.
그 후에도 나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 동생과 15년이 넘게 함께 지내고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많았다. 제주도도 한 번도 안 갔다고 해서 제주도도 가보고, 좋은 관광지가 있으면 같이 가보고, 그 동생이 사진 기술이 있어서 웨딩 촬영하는 일을 겸해서 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웨딩 촬영할 때 "형, 오늘은 어디서 촬영하니까 밥 먹으러 와"라고 했다. 식권을 항상 2장 받아서 함께 점심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말 점심때면 특히 택배를 하면 점심시간이나 개인 시간이 많아서 자주 만나서 맛집을 자주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결혼하게 되었고, 그 동생은 혼자가 되었고, 계속 택배 일을 하면서 삶을 살았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의 일이다.
"형, 요즘 머리가 아파서 병원 가서 약을 지어야겠어요."
동네 병원에 가서 혈압이 높아서 혈압약을 지으려고 갔는데, 간 기능 검사를 하는 중에 췌장 쪽에 혹이 있으니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내게 전화가 왔다. "형! 의사가 췌장 쪽에 혹이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래요."
"너의 친구가 대학병원에 있으니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받아 봐라." 고등학교 지휘자였을 때 4명 중 한 명이 의대를 가서 대학교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췌장암 3기 정도 되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나도 깜짝 놀랐고, 그 동생도 깜짝 놀랐다. 평소에 아프지도 않고 건강한 체질이면서 아픈 데도 없고, 단지 혈압이 약간 높아서 내가 항상 빨리 가서 혈압약을 지어 먹으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췌장암 치료에 들어갔고, 서울 큰 병원에 가서 치료하고, 광주에 내려와 대학병원 다니면서 치료를 계속했다. 갑자기 아파서 대학병원에 갔는데, 그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암 진단받고 9개월 정도 암과 씨름하다가 하늘나라에 갔다.
너무 힘들었다. 내 아내도 힘들었다고 한다.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우리 장인, 처남이랑 같이 술도 먹고, 여행도 가고 낚시도 같이 했는데, 아내가 가끔 동생 이야기 한다. "지금 살아있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기억한다.
나 또한 그 동생이 그립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직장 생활하면서 다시 만나서 20년을 넘게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외로움을 달래며 살았던 동생인데, 왜 하나님은 착한 동생을 결혼도 못 했는데 데려가셨나요? 했던 기도가 생각난다.
나도 결혼을 늦게 해서 그 동생과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설 때만 되면 그 동생 묘지 영락공원에 가서 소주 한 잔 붓고 오곤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동생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는 것을 내가 옆에서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 끼치는 일 안 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다른 사람들이 부탁하면 전부 다 해주고 그러면서 살았는데, 조금 더 살게 하지 하고 생각이 난다.
오늘 별다른 생각이다. 함께 있었으면 지금쯤 수영 끝나고 술 한잔 했을 것 같은데, 그리움이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을 가지고 그런가 보다.
언젠가는 우리도 하늘나라에 가겠지만, 현재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그 동생에게서 배웠기에 그렇게 살아간다.
그 동생은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사랑도 이루지 못했고, 결혼도 못 했지만, 늘 웃는 얼굴로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았다. 그것이 진정한 삶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그 동생을 생각하며 산다. 수영장에서, 맛집에서, 소주 한 잔 마실 때마다. 그 동생이 옆에 있는 것 같다.
형제보다 가까웠던 그 친구여,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 그때는 더 오래 함께 있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