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있어도 차별받지 않고
내 친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는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했다. 일을 잘하다가 창업한다며 퇴사했고, 창업 후 현재는 소식이 없다. 하지만 그가 사회적으로 성공했던 시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꿈꿨다.
중증장애인이 대기업에서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차별 극복이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큰 꿈이 있었다. 바로 여행이었다.
그 친구는 목발로 50미터도 걷기 어려워 휠체어를 이용해야 했다. 서울에서 공항까지 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지만, 어찌하여 공항에 도착했다. 첫 목적지는 태국이었다.
당시 공항과 항공사에는 휠체어 대여나 장애인 서비스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친구는 당황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목발로는 50미터밖에 걸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공항 직원들에게 부탁하여 휠체어로 이동해야 했다. 손도 불편했기에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아마 그 친구로 인해 공항에 휠체어가 처음 배치되었을 수도 있을 만큼, 그의 도전이 공항 시설 개선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후, 미리 예약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 직원들이 나와서 부축하고 짐을 정리하며, 모든 것을 친구의 상황에 맞춰 도와주었다고 한다. 물론 호텔 측에 미리 메일을 보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서비스 가능 여부를 확인한 후였다.
태국에서 혼자 여행하기 어려웠던 친구는 호텔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다른 여행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여행 코스와 일정을 물어보던 중,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함께 여행할 수 있는지 제안했다. 여행 경비는 자신이 내겠다고 했다.
놀랍게도 식당에서 만난 유럽 여행자들이 흔쾌히 동의했다. 그들은 불편한 친구를 업어주고, 어깨동무를 하고, 택시를 함께 타며 태국 파타야까지 함께 여행했다. 밤에는 클럽에도 함께 가서 술을 마시며 많은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 친구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다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중증장애인이 혼자 여행하는데, 모르는 여행자들이 흔쾌히 함께 동행해 줄까? 차별받지 않고 함께 클럽을 가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친구는 다시 한번 여행을 꿈꾸며 다음 목적지로 말레이시아를 계획한다고 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연락이 없어 소식을 모른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았다. 중증장애인도 해외여행에서 즐겁게 차별받지 않고 여행자들과 함께 놀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지금까지 불평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 친구의 용기와 도전정신이 놀랍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도 감동적이다.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용기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 친구의 여행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장애인도 충분히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진정한 포용사회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바로 이런 사회일 것이다. 장애가 있어도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함께 즐길 수 있는 사회 말이다.
그 친구가 태국에서 만난 유럽 여행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 아닐까. 차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와주고, 함께 즐기는 그런 자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