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먼저 하늘나라로 간 제자와 함께하는 또 한 명의 제자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고등부 지휘자로 교회 봉사하면서 만난 4명 중, 대학을 가지 않았던 또 다른 제자는 손재주가 많았다. 기타, 베이스 기타 등을 잘하곤 했던 제자였다. 그도 직장 생활하면서 대학교에 가지 않은 2명의 제자와 자주 만나서 밥을 먹곤 했다.
그런데 그 한 제자가 장애인이 되었다. 본인은 장애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신과 적인 장애 판정을 받았다.
군대에 있으면서 선임이 똥을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거부했고, 선임이 많은 구타를 했고, 군 복무 중에 발병하여 의가사 제대를 했다고 했다.
평소에는 똑같이 생활한다. 장애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 나는 그 2명의 동생들과 자주 어울리고 놀곤 했다. 당구도 치고, 볼링도 하고, 함께 밥도 먹고. 그런데 그 한 명의 동생은 술을 먹지 않는다.
"왜 안 먹어?" 하니, 그제야 군대에 있을 때 그런 일이 있어서 술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 제자도 택배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교회 여전도사님이 이 친구를 중매(소개팅)한다고 했다. 그 여성분은 탈북 여성이었다. 처음 보자마자 그 제자는 마음에 들어서 사귀기로 했고, 그러다 결혼했다.
그런데 아이 낳고 몇 년이 지나서 이 친구의 병이 발병했다. 이 친구는 정신장애가 발병할 때면 잠을 자지 못한다. 3일간 잠을 안 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이 친구는 먼저 간 친구를 구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제자가 결혼해서 그런 현장을 알게 되었고, 결국 탈북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다. 아이는 아내가 키우고, 이 친구가 택배 일을 하면서 양육비를 줄 때 아이의 얼굴을 보고 놀곤 한다고 했다. 지금은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다.
이 친구의 병이 발병할 때면 다른 친구는 그 친구를 피한다. 피하는 이유는 친구를 괴롭게 하기 때문이다. 몽둥이로 구타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면 이 친구는 정말로 착한 사람이다. 순하고, 부모님께 효도도 잘하고, 그런 친구다.
우리 세 명은 자주 만났다. 물론 내가 결혼하기 전이니까,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술 한잔하고 그런 생활을 계속했다. 정신장애를 가진 제자에게는 절대로 술을 주지 않고 먹지도 않게 했다. 병이 발병하면 그 친구를 괴롭히니까, 옆에서 꼭 지켜보고, 잠을 안 자면 꼭 자게 하곤 했다.
"너도 장애 등록을 해라. 정부 정책으로 혜택도 많을 것이다." 내가 특수교육복지교사이니 권유했지만, 그 친구는 절대로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았다.
병이 발병할 때 병원에 입원한다. 스스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병원에 가서 입원했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퇴원해서 택배 일을 한다.
친구(앞서 이야기한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자)가 죽고 난 후에 많이 울었다. 그리고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있다. 친구가 없으니 내게도 연락이 뜸하다. 가끔 만나서 밥 한 끼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 친구는 아직도 택배 일을 하면서 녹록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많은데, 군대에서 그러한 일을 당하고, 선임의 무자비한 군기 잡기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뀐 것을 보니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지켜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친구가 장애 등록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본인은 받기 싫어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복지 정책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정책을 잘 지키고 있음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본인이 하기 싫어해서 어쩔 수 없다.
아내와 헤어지고, 아이와 함께 살 수 없고, 혼자서 생활하는 삶이 지금도 안타깝다고 생각된다. 언젠가는 그 병에 대해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차별받지 않고 떳떳하게 직장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동생은 본인의 병을 알기에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잘 관리만 하면 직장 생활을 잘하는 장애인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친한 친구를 먼저 보내고 외롭게 살아가는 동생이 오늘도 생각난다. 잘 지내고 있지...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 군대 내 가혹 행위의 심각성이다. 선임이 "똥을 먹으라"라고 하고 구타한 것은 명백한 범죄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건강한 청년이 정신장애인이 되어 평생을 고통받아야 한다.
둘째,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다. 그 친구가 장애 등록을 거부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다. 정신장애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오해받기 쉽고, 편견도 심하다.
셋째, 가족의 해체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병이 발병하자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탈북 여성으로서 한국에서의 삶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남편의 정신장애까지 감당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이를 위해 양육비를 성실히 보내며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넷째, 진정한 우정이다. 병이 발병할 때면 몽둥이로 구타하려 하는데도, 우리는 그 친구를 피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봤다. 잠을 안 자면 자게 하고, 술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진정한 우정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자, 그 친구는 더욱 외로워졌다. 나도 결혼하고 바빠져서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 외로움이 얼마나 클까.
다섯째, 장애 관리의 중요성이다. 그 친구는 병이 발병할 것 같으면 스스로 병원에 입원한다. 이것은 대단한 자기 관리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있다면 충분히 직장 생활도 할 수 있을 텐데, 본인이 두려워한다.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잘 관리하면 충분히 일할 수 있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정신장애인도 당당하게 장애 등록을 하고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군대 내 가혹 행위도 근절되어야 한다. 한순간의 폭력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도 그 친구는 택배 일을 하며 혼자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병과 싸우며, 외로움과 싸우며. 그 친구가 조금이라도 덜 외롭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