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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노동권의 현실

오늘도 미안하다.

by 윤호근

발달장애인의 노동권의 현실


제자를 1년이 넘게 가르쳐 졸업시키고 취업하여 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지나갔다. 그 제자는 지금도 일하고 있다. 사업장 세탁을 하는 곳에 취업했다.


우리 과에 다니면서 어떤 여학생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제자는 자기 표현을 할 수 없는 제자다. 물론 장애 특성을 감안하면 다 그런편은 아니지만, 교제를 잘하는 친구들도 있다. 커플도 많이 나타난다. 물론 졸업하면 헤어지는 경향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 제자는 다른 제자보다 사교성이나 특히 여학생들에게 말하는 것이 호감을 주는 타입은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보기에는 잘생겼다.


키도 크고. 물론 이 모든 것에 발달장애인의 특성이 들어가 있지만, 나는 이 제자와 여학생이 교제하기를 바랐다.


자주 내가 옆에서 여학생에게 "이 친구 좋은 친구니 한번 사귀어라" 해도, 여학생은 싫다고 한다. 그 여학생은 발달장애인이지만 경계선급 장애를 가진 친구라서, 웬만한 발달장애 친구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그 여학생과는 사귀지 못하고, 둘 다 졸업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 여학생은 지금 쉬고 있고, 남자 제자는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




이 제자는 야구를 좋아한다. 기ㅇ를 응원하는 팬이다. 야구 시즌이 되면 일 끝나면 혼자 야구 보러 간다. 기ㅇ 야구선수들의 이름을 다 알고, 타수, 순위, 타율 등 나보다 아는 것이 많다. 물론 나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고 야구 규칙도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제자는 그런 것도 잘 안다.


야구 시즌이 끝나면 배구 보러 간다. 여자 배구선수들을 좋아한다. 응원하는 배구선수들의 이름도 다 외우고, 일 끝나면 배구 보러 간다. 항상 카톡에 배구선수들의 사진이 있다. 자주 바꾼다.


내가 그 제자에게 말한다. "배구선수 말고 너 잘생긴 얼굴 좀 올려라." 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재도 이 제자와는 한 달에 3번 이상 전화, 카톡으로 선생님 안부를 묻는다. 언제나 졸업생 모임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성실한 친구다.


그 회사에서 인기가 많고 일도 잘한다. 잘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장애인 노동권에 있어서 너무 힘들게 일을 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제자는 때로는 새벽 4시에 출근한다. 5시에 갈 때도 있다. 6시에 출근할 때도 있다. 물론 빨리 출근하면 빨리 퇴근하지만, 발달장애인을 노동시장에서 노동 인권을 무시하면서 일시키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공장장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학생들에게 노동 강도가 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몇 번이고 이야기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 회사를 지원하는 공공기관에 이야기했지만, 그 기관도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일의 특성상 그렇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에게는 정확한 시간과 정확한 노동 시간을 정해 줬으면 한다.


회사를 경영하는 경영자 입장에서는 이익을 내기 위해서 새벽이든 밤늦게든 일을 해서 수익을 내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처음에 내가 이 제자를 데리고 갔는데, 지금은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명절 때도 남들 다 쉬는데 출근하는 제자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항상 웃으면서 선생님께 전화해 준다. 어쩌든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은 좋은데, 일의 강도가 너무 힘들고 그에 따른 보상이 조금은 아쉬운 것 같다.




기업들 찾아다니며 장애인 인식개선 강의를 하지만 솜방망이일 뿐이다.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장애인 노동권을 존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 복지라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 할, 고민해야 할 일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장애인 고용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장애인을 고용한다. 좋은 일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 새벽 4시 출근, 명절 출근, 높은 노동 강도, 그에 비해 낮은 임금.


장애인을 고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고용하느냐다. 공정한 임금, 적절한 노동 시간, 인간적인 대우. 이것들이 보장되어야 진정한 장애인 고용이다.




"일의 특성상 그렇습니다"라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사업장 세탁이 새벽 일이라 해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조건이어야 한다. 오히려 장애인에게는 더 배려가 필요할 수도 있다.


공공기관도 문제다. 형식적인 점검만 하고, 실질적인 개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의 특성상"이라는 말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그 공공기관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도 마찬가지다. 1년에 한 번, 형식적으로 듣고 끝이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이 제자를 취업시킨 것이 잘한 일인지 후회될 때가 있다. 7년을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좋은 곳에 취업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착취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제자는 불평하지 않는다. 항상 웃으면서 전화한다. "선생님, 저 잘 지내고 있어요. 어제 기아가 이겼어요." 야구 이야기, 배구 이야기를 신나게 한다.


그 순수함이 오히려 더 마음 아프다.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장애인 고용 의무제가 있다. 장애인을 일정 비율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 숫자만 채우면 된다. 질은 상관없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보편적 복지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형식적인 복지다. 장애인 인권을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무시당한다.


새벽 4시에 출근하는 제자에게 나는 오늘도 미안하다. 더 좋은 곳에 취업시켜 주지 못해서. 이런 현실을 바꾸지 못해서.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 목소리를 낼 것이다. 공공기관에, 회사에, 그리고 사회에. 장애인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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