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관계망
오래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창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의 평등과 차별 철폐를 외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평소에 나와 잘 지내던 형님이 계셨다. 그 형님은 시각장애인으로 저소득층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계셨다. 전에는 함께 살던 여자가 있었다.
형님은 안마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나름대로 경락을 연구해서 경락 마사지를 하는 기술도 갖고 있었다.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는 하루 일당이 엄청 많았다고 한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그때 함께 살던 여자가 그 많은 돈을 가지고 도망갔다. 형님이 안마와 경락 마사지로 열심히 일해서 벌어들인 돈을 모았는데, 당시 5천만 원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가지고 도망가고, 찾을 길도 없이 형님은 홀로 되었다.
내가 형님을 알게 된 것은 후원금과 후원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부터다. 그때부터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형님은 본인이 겪은 이야기를 잘 말해주곤 했다.
집에 가면 방 안에 경락 마사지하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 많이 있었다.
형님의 마사지와 경락은 조화를 이루어 인기가 많았고, 많은 분들이 형님을 찾았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집으로 찾아가서 마사지를 해주셨다.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잘 찾아다니셨다. 잘 모를 때면 내게 전화해서 데려다 달라고 하곤 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형님이 찾아와서 내 자리 위치까지 아시고, 뒤에 와서 머리를 만져주셨다. 그리고 어깨, 손, 발 등 경락을 찾아서 해주셨는데, 엄청나게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주말 쉬는 날이면 형님과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밥도 잘 먹었다. 특히 형님이 돈을 잘 번다며 식사비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차량 운전으로 형님과 잘 어울렸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형님과 함께 살았던 여자는 형님의 전 재산을 들고나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여자를 보면, 우리 사회가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들을 헤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환경이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지만 형님은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충분히 돈을 벌 수 있고, 충분히 혼자서 잘 해내고 있어"라고 하셔서 나는 안심했다.
몇 년을 함께 지내다가 나는 이직을 통해 교사가 되었고,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연락이 뜸해졌다. 18년 정도 지났을까?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형님이 작고하셨다고 들었다.
그전에 나는 한 번도 찾아가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던 것이 너무도 후회스럽다. 서로 연락만 잘하고 있었더라면, 형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있었을 것을... 지금에 와서야 후회가 된다.
그렇지만 형님이 장애를 극복하는 모습에서 나는 형님을 본받아야 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각장애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안마를 해주시던 형님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복지 현장에서 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형님이 혼자가 아닌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을 만들지 못한 것은 복지 정책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차별 없이 함께 살 수 있는 나라가 이 시대가 원하는 과제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다. 보이지 않는다는 약점을 이용해 평생 모은 돈을 가져간 여자. 이것은 명백한 범죄지만, 형님은 신고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 누구인지 찾을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둘째, 장애인의 자립과 존엄성이다. 5천만 원을 빼앗기고도 형님은 "충분히 벌 수 있다"며 당당하게 살아가셨다. 이것이 진정한 자립이고, 존엄성이다.
셋째, 사회적 관계망의 중요성이다. 나와 형님의 관계처럼, 장애인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지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18년간 형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그것이 평생의 후회로 남았다.
넷째,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다. 형님처럼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장애인은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기 쉽다. 하지만 경제 활동을 한다고 해서 착취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형님에게 필요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법적 보호 장치, 그리고 사회적 관심이었다. 성년후견인 제도가 있었더라면, 재산 관리를 도와줄 수 있었을 것이다. 장애인 권익옹호 시스템이 작동했더라면, 착취를 예방하거나 사후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제도들이 없었거나 미비했다. 형님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나는 형님을 생각하며 다짐한다. 내 제자들이 형님처럼 당하지 않도록, 경제 교육, 법률 교육,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망 형성을 도와야겠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아야겠다고. 형님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 후회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고.
형님,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 그리고 제가 형님께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잘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