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날, 운명처럼 나에게 왔다.

22살 대학생. 검은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by Gina

오늘도 꾸꾸는 거실 아랫목에 뒹굴고 있다.


(지나) "꾸꾸야, 너 요즘 너무 게을러진 거 아니야?"


(꾸꾸) "귀찮다~냥"


뒹굴뒹굴.

오늘도 통통해진 배를 드러내고

바닥에서 편안하게 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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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났다.


처음 꾸꾸를 데려왔을 때가




22살 대학생,

나는 혼자 살고 있었다.




엄마한테 전화로 말했다.


(지나) "엄마, 담비가 낳은 강아지 내가 키울게!!"

"나 혼자 살기 싫은데.."

"강아지 키우면서 같이 살면 안 돼??"


집에서 키워온 말티즈 '담비'가 새끼강아지를 낳았다.

눈도 못 뜬 새끼강아지 사진들을 엄마가 자주 보내줬는데 꼬물거리는 작은 아이들이 너무너무 귀여웠다.


분양처를 알아보면서

주변에 한두 마리씩 보냈는데,

나도 평생 함께할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당연하게도 엄마는 나를 말렸다.


(엄마) "미쳤어? 너 도서관 가서 자주 밤새잖아? 어떻게 강아지를 키우려고 해.. 공부하러 나가고 학원도 가고 바쁜데, 그렇게 강아지 혼자 두다가.. 우울증 걸리면 어떡하려고?? 절대 안 돼!"


엄마의 잔소리는

폭격기가 미사일을 쏘듯이

심장에 콱- 콱- 박혔다.


반박할 수 없는 팩트였다.


(지나) "나도 아는데.. "

"그래도 나 평생 혼자 살기 싫은데.."

"집에 담비 같은 귀여운 강아지 있으면 좋겠다고~"


사실 못 키우리란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괜히 엄마한테 떼를 썼다.


(엄마) "나중에. 아주 나중에."

"어휴 미쳤어 증말!"

"회사생활 하고 여유 생겨서 키울 수 있게 되면 그때 키워~ 지금은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야~ 안 돼!"


엄마는 단호했다.

아빠도 그런 엄마의 편을 들으며 나중에 키우라고 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무책임하게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건,

동물학대하는 행위와 같다는 걸.


혼자 살면서 강아지와 산책하고 놀아 줄 자신이 없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나만 기다릴 강아지를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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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1.5룸.

그 안에 갇혀사는 강아지에게는

감옥 같은 공간이겠지?


적어도 개를 키운다는 건,

개를 위한 공간까지도 준비할 수 있어야 했다.



(지나 마음속)

'나만을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내 가족을 책임질 수 있겠지?'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았던 나에게,

고양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룸메이트로 같이 살게 된 언니의 반려묘였다.



하얀 털과 검은 털이 섞인 턱시도고양이였는데,

보통 집안 어딘가 숨어 있거나, 베란다에 가서 창밖을 보곤 했다. 잠잘 때만 잠시 옆에 왔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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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귀여운 생명체라서

이름을 불러주고, 곁에 다가가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까칠했다.


(지나) "여기 와봐~ 언니가 간식 사왔다구~~"


그 녀석은 내가 불러도..

집사가 아니라서 그런지 내 곁에 다가오지 않았다.


고양이는 사람이 가까이하는 걸 싫어하고 혼자 놀기 좋아한다더라.. 고양이는 강아지와 많이 달랐다.

같은 방을 써도 독립적인 생명체였다..


룸메이트 언니는 한 학기가 지나고 헤어졌다.





(지나) "키우고는 싶지만... 아직 자신이 없어"


(지나) "아! 그럼 탁묘를 해보자!

입양이 아니라 입양 가기 전까지 돌봐주는 거야!"


동네에서 다행인 건지

탁묘를 구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고


1-2주 정도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면서...

생각보다 고양이와 같이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삶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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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밥을 챙겨준다.

깨끗한 물을 준비해 주고, 아이들과 인사를 한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관리해 주고,

고양이가 원할 때만 쓰담쓰담해주면서 곁을 내줄 수 있다.


물론 더 큰 책임감이 있어야 하지만,

작은 생명체 하나는 내가 맡을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우연히도

우리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

고양이를 파양하겠다는 재학생의 글을 보게 되었다.


[고양이 입양처 구함. 검은 고양이 남아 6개월]



(지나) "뭐야.. 이렇게 무책임한 애가 어딨어.."


새끼고양이를 입양했으면 끝까지 키워야지.. 몇 달도 안 돼서 못 키우겠다고 입양해 줄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었다. 같은 학교 학생이라 커뮤니티에서 바로 쪽지를 보냈다.





그렇게 검은 고양이는 내게로 왔다.


검은 고양이라서

검은색은 일본어로 '쿠로'

(그 당시 나는 일어일문학과 복수전공자였다.)

'쿠로쿠로'를 줄여서 '꾸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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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고양이는 엄청 사고를 치는 녀석들이다.


원래 1살이 되기 전까지

호기심이 많고 에너자이저 같은 생명체라 다 그런 시기를 보낸다고 했다.


정말, 대단한 사고들을 쳤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싱크대에 올라가는 건 당연하고,

높은데 올라가서 물건을 엎지르고 떨어트리는 것도,

가구에 스크래치를 내고 상처 입히는 건 기본이고,

음식이 들어있는 냄비를 엎어서 난장판이 된 집을 봤을 때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꾸꾸와 6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대학도 졸업하고

대학원을 나와서, 회사원이 될 때까지 함께였다.




무럭무럭 자란 꾸꾸는 옷장 속을 좋아했다.


어딘가로 사라지면,

가장 먼저 옷장 문을 열어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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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털에 보호색을 입듯,

옷 틈에 들어가서 노란 눈동자를 반짝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릴 때 수많은 사고를 치던 꾸꾸는

이제 게을러져 있었다.


작고 날씬하고 소중하던 새끼고양이 녀석이

통통하다 못해 돼냥이가 되었고,

활발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애가

이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에 숨어 있는다.


숨는 게 좋은 건지

잘 안 보이는 곳에 숨었다.




제주도로 이주 오고 나서....

더욱더 게을러져 버린 꾸꾸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바닥에 뒹굴거리고 있다.


(지나) "꾸꾸야~ 일어나 봐~ 너 너무 안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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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거실 한쪽,

따뜻하게 보일러가 돌아가고 있는 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자고 있다.


그나마

마당도 돌아다니기 시작해서

조금은 운동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살이 찌고 움직임이 둔해지니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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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꾸꾸야. 오늘은 무슨 생각해?"


꾸꾸의 모습이 귀여워서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꾸꾸) "나 졸리다~냥"


가끔은 꾸꾸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빤히 쳐다본다.


내가 눈치껏 알아들으려 노력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 뒹굴뒹굴거리다가

사진 찍는 걸 알면 '냐옹' 하고 운다.



꾸벅꾸벅 졸리던 꾸꾸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잔다.






고양이 없이 살던 삶이 얼마나 삭막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믿기지 않는다.


혼자 산다면

아마도

가만히 혼자 있다가,

집안 청소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켜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핸드폰에서 숏폼을 본다든지,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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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양이를 키우면서,

아니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아이들은 그냥 생명체가 아니다.

나의 마음 한 구석을 가득 - 채워줄 수 있는 따뜻한 온기를 주는 존재.





나를 귀찮게 하는 동물이 아니라


내가 응석 부릴 수 있고,

내가 놀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놀아달라고 하기 전부터

혼자 있으면 말조차 하지 않을 삭막한 시간에

애들에게 말을 걸고 노는 게 바로 우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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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건강하게만 살아줘~ 그거면 돼 언니는"


꾸꾸는 내 마음을 알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편하게 뒹굴고 있다.



앞으로도 꾸꾸와 함께할 날들.


제주의 봄,

제주의 여름,

제주의 가을,

그리고 또 다른 겨울.


함께 보내게 될 시간들. 나는 미래를 상상한다.


(지나 마음속) '오래오래 함께하자, 꾸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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