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나 혼자 걸었네
내게는 아무도 없었네
차가운 바람 불 때면
내 마음 왠지 쓸쓸해지네"
1987년 대학가요제 대상곡.
작품 하나의 '난 아직도 널'...
친구와 듀엣으로 노래했던 그 시절 소녀가 그립다.
음악시간이었다.
한 달 뒤 합창대회가 열린다며
음악선생님이 풀세트로 지정해 주셨다.
피아노 반주는 나, 지휘는 부반장.
곡은 슈베르트의 '송어'였다.
근데 문제는 우리 반 절반이 진지하게
'숭어'라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강물 출신 송어와
횟집 VIP 숭어의 출신성분 차이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비랑 나미를 같은 종류라고 우기는 대참사였다.
방과 후엔 파트별로 흩어져 하모니를 맞췄다.
복사한 악보가 교실을 떠다니고,
누구는 송어를 외치고,
누구는 숭어를 부르고,
어쩌다 보면 바다랑 강이랑 회집까지
교실에 같이 들어와 있었다.
우리 반은 송어가 물결치는 곡이라더니,
막상 해보니 물결이 아니라
수족관 환수 작업이었다.
물만 빠지고 내 체력만 나갔었다.
나는 이 모든 혼종 사운드를
반주의 이름으로 감당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음악실의 소란 끝나나 싶더니,
딱 일주일 만에 또 사건이 생겼다.
교무실에서 음악선생님이
친구를 심부름꾼 삼아 날 불렀다.
검찰청에서 부르듯 살짝 오싹했지만
결국 나는 걸어 들어갔다.
다른 반 반주자가 손 털었다는 전설의 소식.
그 반은 남자반이었는데 피아노 치는 애들이 없었다.
결국 선생님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나보고 두 탕 뛰라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내 운명은 땜빵계의 국밥집 막내라는 걸.
늘 ‘얘는 믿고 쓰는 아이다’ 하시지만
정작 나는 평생 설거지에서 못 벗어나는 캐릭터였다.
다른 반 곡은 '옹헤야'였다.
리듬감 빡센, 그 자진모리장단의 타령곡.
악보 들고 교실에 돌아왔는데,
키 큰 여자애가 절도 있게 걸어와서 말했다.
자기가 장구 담당이 됐고,
음악선생님이 나랑 따로 맞춰보라 했다고.
그날부터 점심시간마다
둘이서 장구와 피아노 합을 맞췄다.
전생부터 부부처럼 팀 워크가 척척.
연습이 이어지다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며칠 뒤, 그 친구가 자기 집에 오라고 했다.
친구 아빠는 내 가족관계를 다 아는 듯,
내 옆을 묵직하게 챙겨줬다.
친구 아빠가 나한테 귤까지 까주길래
내 새마을금고 적금도 맡길 뻔했다.
말투도, 태도도, 딱 친아빠 버전.
그 순간만큼은
내가 두 집 살림 경험해 보는 느낌이었다.
합창대회 D-7일.
남학생반 리허설 처음 맞추는 날이었다.
교실 문 앞에서 나랑 장구 친구가 한참을 실랑이했다.
“네가 먼저 들어가!”
“아니 네가 들어가! 아이 창피해!”
남학생반 들어가는 게 왜 그렇게 부끄럽던지.
문 하나 앞에서 둘이 숨 멈추고 서 있었다.
결국 친구가
그 특유의 키 큰 실루엣으로
스르르— 문을 연 채 먼저 들어갔다.
그 순간 남자애들 반응은 군대 급식 줄도 아니고,
그냥 단체로 “와ㅡㅡ!!” 하고 환호가 터졌다.
키 크지,
하얀 남방에 생머리 찰랑이지,
청바지에 얼굴 예쁘지…
남자애들 눈에 완전 전학생 미인 등장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다음에 내가 들어간 순간이다.
문턱 넘자마자
소리는 바로 뚝 끊기고
공기 온도가 바뀌었다.
남자애들 표정이
‘미인 등장’에서
“… 지네 큰 고모 오셨다…” 모드로 변했다.
이상하게 다들 조용해지고,
방금 전의 흥이 사라지고.
그냥 나만 묵직하게 들어갔다.
정신을 가다듬고 옹헤야 연습을 시작했다.
우리 반 송어는 도시 아쿠리움인데,
여기 옹헤야는 농사철 난장판이었다.
남자애들은 의자에서 들썩거리고,
장구 친구의 눈빛은
“오늘 한 판 때린다 ”로 바뀌어 있었다.
피아노 의자에 앉자마자 느낌 왔다.
“아… 이건 합창이 아니라 모내기밭 굿판이다.”
내 귀에는 동이 터야 끝날 것 같은 농악대였다.
나만 피아노 치고 있고
애들은 이미 추수철에 들어가 있었다.
중간 부분에는
남학생들이 군가도 아니고 변성기 외래종이었다.
장구는 첫 박부터 쪽박 쪼개는 기세.
송어를 치던 우아한 손가락을 버리고
옹헤야는 거의 피아노로 주먹질하는 템포로 쳤다.
합창대회 D-3일.
음악선생님이 또 나를 불렀다.
표정이 이미 답 나와 있었다.
특별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사정상 못하게 됐다며,
나한테 급하게 독주 부탁을 했다.
그래서 결국 송어, 옹헤야, 독주까지
세탕 연주가 죄다 내 몫이 됐다.
그때 나는
“아… 이 학교 인력난 심각하네” 이 생각만 났다.
어느 순간 땜빵계의 유재석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고,
그날부터 학교판 요술램프 지니였다.
드디어 합창대회 하루 전!
2탄은 곧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