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시간
아이는 학교에 가고, 남편은 출근했다.
집 안엔 오랜만에 정적이 흐른다.
식탁 위에는 아침에 급히 마시다 남은 컵이 하나 놓여 있고,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리기 전,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집안일을 시작하기 전 한 시간,
이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창문을 살짝 연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따뜻한 실내와 섞인다.
그 공기 속에서 커피 향이 천천히 번져간다.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
손끝으로 온기가 전해진다.
그 온기가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한 모금 삼킬 때마다
쌓였던 피로가 조금씩 녹아내린다.
이 시간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휴대폰도, TV도, 음악도 잠시 꺼둔다.
창밖의 하늘과 햇살만이 나의 벗이다.
햇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식탁 위를 비추면
그냥 그 빛만 바라봐도 마음이 느긋해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앉아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시간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빨리빨리”에 익숙했던 나에게
‘멈춤’은 낯설고 불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 짧은 여유가 하루를 버틸 힘이 된다는 걸.
커피 한 잔의 시간은 길지 않다.
한 잔을 다 마실 즈음이면
다시 세탁기를 돌려야 하고, 점심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괜찮다.
잠시라도 나를 위해 머무는 이 시간이 있으니까.
살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해야 하는 일들’이 떠오른다.
그 사이에서 ‘하고 싶은 일’을 꺼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내리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건 내가 나를 위해 하는 작은 일이다.”
커피 한 잔의 여유는 거창한 휴식이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이 내게 인사하는 순간이다.
“괜찮아, 오늘도 잘 지내보자.”
그 말 한마디가
내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