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나의 분노의 2차 사춘기는 시작되었다.
곧 돌아온다던 엄마의 약속은 오래 걸렸다. 그 사이 해주는 어느덧 중학교를 졸업했고, 서울에서 세 해를 보내며 시골의 촌티를 조금 벗었다. 작은 체구에 마른 몸, 그리고 활발한 성격 덕분에 친구도 많았다. 해주는 전라북도에서 태어났다. 지방에 살았지만, 전라도 사투리가 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해주의 말끝엔 특유의 억양과 사투리가 남아 있었다.
“그랬단게?”
“아니란게?”
“내가 언제 그랬는디?”
가끔씩 튀어나오는 해주의 사투리와 센 억양이 귀엽다며 친구들은 자주 웃었다. 서울에서 첫 남자친구도 생겼다. 아들만 둘 있던 남자친구네 가족들은 작고 애교 많은 해주를 보며 항상 말하곤 했었다.
“우리 집에 이런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우린 뭐 했나 몰라, 저런 귀여운 딸 안 낳고”
남자친구의 집에 갈 때마다 해주는 항상 환영을 받았고, 심지어 가족끼리 외식을 할때에도, 가족여행을 갈때에도 해주를 꼭 초대해 주었다. 해주는 처음으로 느껴본 가족의 온기와 친딸처럼 애틋하게 대해주는 남자친구 아빠의 모습에 굳게 닫았던 마음도 활짝 열었다. 날이 갈수록 해주는 남자친구보다, 그의 가족들에게 더 애착과 사랑을 느꼈다. 해주는 가족 같은 남자친구와 나란히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심지어 둘은 같은 반이 되었다. 매일 아침 함께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 해주의 불안했던 서울에서의 생활은 어리지만 든든한 남자친구와 함께 안정적으로 찾아갔다. 그때 해주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건, 꼭 성숙하지 못할지어도, 마음으로 하는 사랑도 사랑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볼에 여드름이 하나둘 돋아날 무렵에 해주의 마음에도 활짝 벚꽃이 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 멀리 휴대폰 건너편에서 엄마가 말했다.
“해주야, 이제 우리 같이 살 수 있어.”
“엄마가 곧 갈 테니까 잘 준비하고 있어.”
“엄마가 아파트도 구했고, 아파트 근처 미용실도 오픈했어.”
갑작스러운 엄마말에 해주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기쁨보다 해주의 마음에 들이닥친 건 혼란스러움이었다. 첫 정을 주었던 서울 친구들과, 가족 같은 남자친구를 두고 떠나야 했으니까.
엄마의 그 한마디를 항상 바라고 꿈꿔왔던 순간이었지만, 왠지 모를 먹먹한 마음 한편에 가슴이 어두워진다. 하지만 그 감정도 잠시, 그리운 엄마를 향한 마음이 더 컸다. 해주는 결심 한다. 엄마에게 가기로,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가족 같은 남자친구를 떠나 다시 시골로 전학을 가게 된다. 전학을 가는 날, 학교는 평소보다 유난히 조용했다. 담임선생님은 수업 시간임에도 친구들에게 해주를 위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해 주었다.
“해주 전학 가니까 마지막으로 편지 한 장씩 써주자.”
선생님의 말을 들은 반 친구들은 모두 연습장, 노트를 찢어 손 편지를 써서 해주에게 건넸다. 책상 위엔 알록달록 예쁜 편지들과 너덜너덜 찢어진 연습장, 노트로 고이 접은 귀엽게 그린 만화편지까지, 그렇게 해주 책상에 예쁜 종이들이 소복이 쌓였다. 창밖에선 봄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 속에 운동장에서 기다리던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태수야 해주 마지막으로 운동장까지 잘 배웅해 주고 와”
“지금 태수가 가장 힘들 테니, 이 정도는 선생님이 당연히 해줘야지”
“너한테만 주는 특권이니깐, 해주 잘 보내주고 와라~”
수업 중인데도 선생님께서 특별히 허락한 일이었다.
해주와 태수의 교재는 전교생이 다 아는 이야기였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진 귀여운 중학생커플. 같은 반이 된 두 귀여운 중딩 커플의 이야기를 모르는 선생님과 아이들은 없었다. 해주 남자친구는 아무 말 없이 해주의 짐과, 가방을 들어주었다. 몇몇 여자친구들은 아쉬움과 눈물로 해주를 그렇게 보냈고, 드라마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해주는 남자친구와 함께 복도를 걸어 운동장으로 나가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운동장에서 엄마를 만난 순간 해주는 반 창문을 쪽을 쳐다본다. 창문마다 친구들이 얼굴을 내밀어 손을 흔들었다.
“해주야, 연락해! 편지 꼭 읽어!”
“야! 땅꼬마 잘 가라!!”
“너 전학 가고 태수 배신하지 마라!!”
장난 어린 남자친구들의 목소리와, 울먹이는 여자친구들 목소리들이 뒤 따랐다. 해주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마치 학교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까만 소나타를 세운 엄마가 양팔을 벌리며 서 있었고, 반가운 엄마도 잠시 해주는 엄마를 향해 웃으며 달려갈 수 없었다. 해주 남자친구는 엄마에게 밝게 인사를 건네곤 눈물을 훔쳤다. 그런 해주는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처음으로 느끼는 마음 찢어진 고통을 설명할 수 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소녀의 마음에 벚꽃을 피어준 해주의 첫사랑. 항상 마음속에 가시를 품고 살았던 해주에게 가족의 품을 느끼게 해 준 고마운 남자친구의 가족들. 그렇게 해주는 3년 반이라는 긴 시간을 버텼다.
엄마와 함께 고향에 내려온 해주는 그곳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도로들, 그전엔 없었던 키 큰 아파트들과 건물들, 정겹게만 느껴졌던 시골 공기는 서울의 탁한 공기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해주의 첫 학교생활은 처음부터 걱정이 돼 버렸다. 서울의 학교는 두발 자유라 해주는 까맣고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다녔다. 교복도 몸에 꼭 맞게 줄여 입었었다. 그러나 새 학교는 달랐다. 단발머리, 규격 교복, 규칙투성이었다. 분명 엄마는 해주가 전학 오는 이곳은 머리가 두발자유였다고 했는데, 엄마가 해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학교 중에서도 가장 규정이 까다로운 여자상업고등학교, 서울학교와 달리 남녀공학도 아니었고, 군산에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여자고등학교였다. 전학을 오자마자 해주는 교무실로 향했고 교무실에서 교감선생님과 담임선생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사이 학교에서는 긴 머리의 복학생이 전학 왔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창문 밖의 수많은 물음표를 한 눈들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고, 복도에선 똑 단발의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그때 저 멀리서,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 덕에 해주는 잠시 안도했다. 이번 학교에도 적응은 그리 어렵지 않겠다고 믿었다. 맞다 해주에게 이번 전학은 두 번째이다.
그렇게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해주는 드디어 엄마가 마련한 아파트에 들어왔다. 하지만 해주는 믿기 힘든 광경을 마주한다. 새 보금자리 안에 예전에 해주를 엄마와 함께 서울로 데려다줬던 그 아저씨가 해주를 반갑게 맞이하는 게 아닌가?
엄마가 신발을 벗으며 해주에게 말한다.
“해주야, 인사해. 기억나지? 예전에 서울 갈 때 도와줬던 아저씨야.”
엄마의 말에 해주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엄마가, 이 아저씨랑? 여기서 같이 산다고? )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해주가 홀로 서울에서 상상했던 퍼즐 조각들이 한순간에 딱 맞아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해주는 입을 꾹 닫은 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해주의 마음속엔 대신 용암 같은 분노가 치밀었다.
문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주야, 문 좀 열어봐. 엄마랑 얘기 좀 하자.”
한참 문을 열지 않던 해주가 엄마가 아저씨에게 민망할 것을 생각해 문을 열었다.
그리곤 엄마에게 얼굴을 한껏 찡그린 채 조용히 말한다.
“엄마는 대체 뭐가 아쉬워서 저런 아저씨를 만나?”
“엄마가 진짜 내 엄마라서가 아니라!”
“얼굴도 예쁘고 똑똑하고 명색이 미용실 원장인데”
“왜 직업도 없는 저런 사람을 만나?”
“엄마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엄마가 사춘기인 거야 내가 사춘기인 거야?”
“엄마는 진짜 남자 복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보기엔 남자 보는 눈이 없어!”
엄마는 한참을 해주의 말을 아무 말 없이 들었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해주야, 저 아저씨는 엄마가 정말 힘들 때 옆에 있어준 사람이야.”
“엄마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엄마 곁에서 많이 도와줬어.”
“정말 착한 사람이야. 아무리 돈이 없어도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야.”
“돈이 많으면 좋긴 하겠지만, 세상엔 돈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는 거야”
해주는 어이없는 듯 엄마를 바라봤다.
그리곤 엄마에게 다시 숨도 안 쉬고 얘기를 퍼붓는다.
“누가 안 착하대? 착한지 아닌지는 난 모르겠고!”
“근데 엄마가 왜 저런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엄마는 진짜 몰라서 그런 거야??”
“어린 나도 그 속이 뻔히 보이는데 엄마는 안 보여?”
“저 아저씨가 엄마가 왜 좋겠어?”
“엄마가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사람이었어도 좋아했을까?”
“아니잖아!!! 내 말이 틀려? ”
“엄마가 좋은 차 타고, 미용실 원장이고, 이렇게 아파트도 떡! 하니 있으니까 좋은 거지!”
“그리고, 엄마가 예쁘고 똑똑하고 몸매도 좋으니까”
“그 사람 입장에선 엄마 맘에 들려고 무슨 짓이 든 못하겠어?”
“나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어!”
“내가 남자친구를 만들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 ”
“나도 누구보다 엄마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야!”
“근데 지금까지 돈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적어도 변변한 직업 있는 사람은 만나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해주를 바라본다. 그리곤 엄마가 한숨을 푹 쉰 채 말한다.
“해주야, 엄마,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야.”
“엄마가 뭐라고..”
“그리고 엄마가 예쁘긴 뭐가 이뻐, 니, 엄마니깐 이쁜 거지”
“나 잘난 거 없고, 능력도 없어..”
“저 아저씨도 누군가한텐 귀한 자식이야”
“사람 돈 보고 판단하는 거 아냐”
“해주 말 틀린 거 하나 없는데, 아직 해주가 몰라서 그래.”
해주는 엄마 말도 들리지 않았고, 더는 듣고 싶지도 않았고, 자신을 설득하려는 그 말도 너무 싫었다.
“됐어! 나 엄마랑 말하기 싫어.”
해주는 신발을 신으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날 이후 해주는 학교를 일부러 빠지진 않았지만,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공원과 놀이터를 전전하며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진한 화장을 하고, 주말엔 술집에도 갔다. 아직 익지도 않은 폐에 담배연기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매일 밖에서 돌아다니는 해주를 보던 엄마가 어느 날 말했다.
“너 보고 내가 술 먹지 말라고 한다고 네가 안 먹지 않을 거잖아?”
“그래서 말인데, 술 먹을 거면 차라리 집에서 먹어!”
“밖에서 사고 칠 바엔 그게 낫다.”
엄마는 미용실에 자주 놀러 오는 해주 친구들에게도 말했다.
“너네 아줌마가 술 먹지 말래도 먹을 거지?”
“너네들 엄마 아빠가 아무리 말려도 숨어서라도 먹을 거잖아 그렇지?”
“차라리 너네 술 먹고 돌아다닐 거면, 아줌마 집에서 먹어!”
“내가 내손으로 술은 절대 못 사다 주겠고”
“술은 너네들이 알아서 사 오던지 구해오던지 알아서들 하고!
“먹을 곳만 아줌마가 제공해 줄게.”
“대신 밖에선 교복 입고 절대 술 마시고 담배들 피우지 마라!”
그날 이후 해주와 친구들은 진짜 그래도 되나? 이래도 되나? 하면서 해주네에서 술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 주말, 엄마는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두부를 사다 놓으며 말했다.
“술집가지 말고 주말에 술 먹을 거면 애들하고 집에서 먹어!”
“빈속에 술 먹지들 말고, 밥이랑 같이 먹어야 속 안 버린다!”
해주는 친구들을 불렀고 해주 엄마는 친구들에게 또 한 번 말했다.
“너네 이것만 먹고 그만 먹어라! 술 먹고 나가지들 말고 바로 집에 들어가고 알았니?”
그런 친구들은 해주를 항상 부러워했고, 우리 엄마도 저렇게 예쁘고 우리를 이해해 주는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기 싫었던 해주는 배를 움켜쥐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생리통 때문에 배가 너무 아픈데..”
“오늘 학교 안 가면 안 돼?”
엄마는 담담히 대답했다.
“네가 아파서 못 가겠으면 못 가는 거지.”
“근데 학교 선생님께 전화는 해 줘야지.”
엄마는 곧장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해주가 많이 아파서 오늘은 집에서 쉬게 하려고요.”
“내일은 꼭 보낼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미용실로 출근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해주는 마음이 허전했다. 그러곤 가끔 어렸을 적 혼자 상상하던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엄마는 분명 내 엄마가 아닐 거야.”
“진짜 엄마라면 딸이 학교를 안 가겠다는데, 이렇게 쉽게 전화해 준다고?”
“아 맞다!! 학생이 술도 먹는데 못 먹게 하지도 않고, 집에서 마시라고 하잖아?”
“분명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닐 수도 있어.”
“진짜 어디서 나 주어온 거 아니야?”
해주는 또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렇게 해주는 2차로 치명적인 사춘기를 맞이하게 된다. 고향에 돌아와 엄마에게 극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그 사랑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해주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여전히 똑같았지만, 3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해주는 몸도 마음도 많이 성숙해져 버렸다. 함께 하지 못 하는 할머니는 여전히 그리웠고, 엄마 옆에 있는 그 하루살이 아저씨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 아저씨는 가끔 막노동으로 하루를 벌고 일주일을 내내 쉬었다. 아마 할머니가 함께 계셨을 때 그 아저씨를 보고 시골로 짐을 싸서 나가신 듯했다. 그렇게 고생해서 지옥 속에서 꺼내온 자기 딸을 또 그 위험한 사랑 앞에서 지켜만 봐야 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속이 뭉개지고 찢어졌을까, 할머니는 그 후로 내가 집에 돌아왔어도 다시는 아파트에 발을 디딛지 않았고, 나는 가끔 시골에 가서 할머니를 보고온곤 했다. 3년 반 만에 엄마와의 재회 그리고 마냥 행복할 것만 같은 엄마와의 첫 아파트. 해주에겐 창살 없는 감옥이 돼 버렸다.
고등학교시절 술을 먹는 딸에게 선뜻 집에서 술을 마시라며 집을 제공한 것도 내가 엄마가 돼 보니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아마, 엄마는 어린 소녀들이 술 먹고 밤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한 사냥꾼들에게 혹시나 표적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리한 게 아닐까 싶다. 엄마는 언제나 내게 친구처럼 대해줬고, 나와 꼭 닮은 삐딱한 내 친구들도 딸처럼, 때론 언니처럼 우리들의 눈높이에 맞춰 항상 대화로 풀려고 했다. 그렇지만 난 그때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로지 내 감정만 중요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의 그 위험하고 가난한 사랑을, 3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몸도 마음도 성숙해졌지만, 엄마의 정신적 사랑을 감당하기엔 나는 머리가 온전히 다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는 그 아저씨와 오랜 교재 끝에 헤어졌고, 그 아저씨는 사업을 하겠다며 엄마 앞으로 차를 뽑고, 가게도 차렸다. 그 가게는 시작도 하기 전에 얼마 못 가 문을 닫았고, 그렇게 엄마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또 입었다. 엄마는 자연스레 아파트를 정리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주 반갑게도 그 아저씨와도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구더기가 가득 낀 푸세식 화장실.
문도 안 닫히고 대왕 귀뚜라미들이 뛰어다니는 창고 밖 욕실.
한 시간에 한 대씩밖에 없는 마을버스.
작은 구멍가게만 딸랑하나 있는 그런 논밭시골.
나는 23평의 그 새로 지은 그 주공 아파트보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식구가 사는 그 낡고 허름한 시골집이 더 좋았다. 나는 거기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다시 듬뿍 받으며 질풍노도였던 나의 2차 사춘기도 서서히 치유받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