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이라는 숙제를 끝내기 위해 반차를 내고 병원이 있는 건물에 들렀다. 1층에서 타면 10층 건강검진센터까지 한 번에 올라가는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곧 문이 열리고, 안에는 이미 주차장에서부터 올라온듯한 남성 한 명이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휴대폰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미 목적지인 10층 버튼에 불이 들어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의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수직으로 이동하는 좁은 공간 속에 흐르는 짧지만 어색한 침묵.
그 순간을 깨려는 듯 뒤쪽에 있던 사람이 나에게 조용히 질문을 했다.
"아, 제가 어디로 가면 되나요?"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돌려 대답했다.
"네? 이거 10층만 가는 건데요."
그 공간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기에, 나는 당연히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깜짝 놀라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눈을 맞추고 서있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헉'하며 작은 실소를 머금더니, 왼손 검지를 들어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이어폰?'
아뿔싸. 그가 나지막이 말한 것은 나에게 질문한 것이 아니라, 전화 통화 중에 상대방에게 건넨 말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그의 귀에 꽂힌 작은 이어폰을 발견하고 상황을 인지했다. 나는 갑자기 그들의 개인적인 대화에 끼어들어 말을 건 눈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얼얼했고, 등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를 더 이상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재빨리 몸을 앞쪽으로 돌리고, 엘리베이터 층수가 바뀌는 데만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조용히 통화를 이어갔다.
나는 속으로 '제발 빨리 도착해라'만 외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만을 빌었다. 10초가 10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내 등을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한 시선을 뒤로하고 나는 꿋꿋이 정면만 바라봤다.
금속 탈출구의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도망치듯 그 공간을 빠져나왔다. 병원 직원이 건네주는 번호표도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대기실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정신이 몽롱했고, 좀 전의 민망함과 창피함이 숙취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통화를 다 마친듯한 이어폰맨이 자동 유리문을 열고 검진센터로 들어섰다.
'아, 설마... 저 사람도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건가? 그럼 계속 같이 대기해야 한다는 얘긴데....'
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며 그 사람의 발걸음을 주시했다. 번호표를 받은 그는 대기실을 둘러보더니 정확히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아,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제발 그냥 지나가세요.'
눈을 질끈 감고 절규하고 있는데, 아까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저기,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아 네네, 아깐 죄송했습니다. 통화 중인 줄 모르고 그만..."
그는 시원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중요한 거래처 사장님과 통화 중이어서 제가 대꾸를 못 해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하하. 건강검진 하러 오셨나 보죠? 덕분에 잠깐 웃었습니다."
그는 물 흐르듯 대화를 이어갔다. 분명 그는 최고의 상황 정리 능력을 가진 영업맨이나 심리학자일 것이다. 그는 처음 본 사람과도 순식간에 어색함을 녹여내고 있었다. 나처럼 MBTI 성향이 극 내향인(I)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부러운 재능이었다.
우리가 대화를 마무리할 때쯤, 병원 검진복을 입은 어르신 한 분이 대기실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간호사에게 이제 물을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시고는, 우리가 앉아있는 소파 근처 정수기 앞에 섰다. 그분이 종이컵에 물을 따라 오랜 갈증을 해소하듯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있는데, 마침 자동문이 열리고 또 다른 남성이 검진센터로 들어왔다.
그는 바로 정수기 앞으로 직진하더니 종이컵을 꺼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혹시 위내시경 하세요? 전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못 마셨더니 어지러워 죽겠어요."
'응?' 주변을 살피던 어르신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로 확신하고 대답하셨다.
"나도 이제야 물 한 모금, 하는 중이네."
순간의 정적.
이 상황에 잠깐 당황한 새로운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지금 통화 중이라서요.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물을 따른 컵을 들고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우리 둘은 서로 눈이 마주쳤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방금 보셨죠. 저도 아까 딱 저 마음이었다니까요."
어르신의 순순한 오해와 또 다른 이어폰맨 덕분에, 나와 그 사이에 민망함의 장벽은 완전히 걷히고 새로운 연대감이 쌓였다. 살짝 불편했던 자리는 이내 편안한 분위기가 되었고, 우리는 금식의 고통과 건강 걱정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어폰이 만들어낸 찰나의 굴욕에 고개를 숙였지만, 낯선 이의 똑같은 실수를 목격하는 순간, 민망함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비로소 그 순간을 공통의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아, 근데 아까 진짜 나한테 하는 말인 줄 알았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