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농활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안줏거리였다. 그곳에서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를 배웠고, 서로 도와가며 쌓은 끈끈한 전우애는 우리 동아리의 자부심이었다. 특히 우리가 즐겨 찍던 '얼굴 밀어주기' 사진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들 그때의 굴욕과 웃음에 흠뻑 젖어들었다.
"하...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
.
.
매년 농촌 봉사활동을 가는 것은 우리 한글 사랑 동아리의 가장 큰 행사였고 자랑거리였다. 매년 5월이 되면 남해 다랭이 마을로 MT 겸 농활을 가는데, 선배들 대부터 벌써 10년 넘게 이어진 전통이라고 들었다. 마을회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농사일을 돕는 것이 우리 동아리의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일손이 부족한 초여름, 우리가 도착하면 어르신들은 우리를 자식처럼 반겨주셨고, 금세 밥상 가득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셨다. 낮에는 일손을 돕고, 밤에는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장기자랑을 하며 떠들썩하게 웃음꽃을 피웠다.
남해의 특산물 중 하나인 마늘은 5~6월이 수확기다. 매년 같은 곳을 방문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 시기가 다가오면 선배들은 마치 자신의 농산물을 수확하러 가듯이 전투적이 되었다. 다 자란 마늘을 흙에서 뽑아내 햇빛에 마르도록 눕혀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특별히 어려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뿌리 부분인 마늘을 부러지지 않게 잘 뽑아 올려야 하는게 관건이었다.
뜨거운 남해의 햇볕 아래, 조금만 움직여도 땀은 비 오듯 흘렀고, 폴더처럼 허리를 접고 땅을 바라보며 하는 작업은 고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사용해서 그런지, 밤에는 머리만 대면 깊은 잠에 빠졌다. 불면증 있는 사람들에게 농사가 보약이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 우리는 마늘 밭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로 했다. 특히 그날은 동기 중 한 명인 '동윤'의 생일이어서 특별한 기념샷을 남기기로 했다.
"야, 오늘 동윤이 생일이니까 오늘은 동윤이한테 다 몰아주기다. 알지?"
"어, 당연하지!"
우리는 이미 합의한 대로 얼굴을 힘껏 구기거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얼굴을 망가뜨리고, 주인공인 동윤이만 멀쩡하게 나오도록 했다. 한참 유행하던 '얼굴 몰아주기'에 한껏 심취해 있었던 우리는 자주 이런 사진을 찍었는데, 농활을 와서도 어김없이 이 놀이는 멈추지 않았다. 리더인 정봉이 이장님께 스마트폰을 맡겨 사진을 부탁했다.
"하나, 둘, 셋!"
나는 얼굴을 최대한 처절하게 구기고 바보처럼 표정을 지었다. 동아리 친구들과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고, 오늘 주인공 동윤이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내가 지은 괴상한 표정에 만족하고 있을 때, 뭔가 분위기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휙 하고 돌아보니, 나만 빼고 모두가 멀쩡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게 아닌가.
"야! 너희들 뭐야! 나만 빼고 무슨 작당을 한 거야! 어?"
"푸하하하~"
친구들은 배꼽을 잡고 마늘 밭을 구르며 웃었다. 내 절규에도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마늘 밭에 메아리쳤다.
리더인 정봉이가 웃음을 참으며 이장님께 맡겼던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는 말했다.
"자, 기념비적인 사진 한번 봅시다!"
나는 분노 속에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면을 쳐다봤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화면 속에는 예상대로 동윤이 주인공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그 주변을 동기들이 둘러싸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늘 캐느라 땀범벅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모두 건강하고 해맑아 보였다. 나만.... 나만..... 빼고 모두 완벽한 정상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동윤이의 왼쪽 아랫부분, 얼굴 근육을 최대한 찌그러뜨리고, 입은 비뚤어졌으며, 눈은 실눈을 뜨고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게다가 몸까지 기괴하고 구부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게 누구냐고?
후... 그래. 바로 이 사람. 나였다.
나는 처절한 희생양이 되어 가장 못생긴 모습으로 사진 속에 박제되어 있었다.
"야, 너희들! 심하잖아! 빨리 지워."
나는 다시 한번 소리쳤지만, 친구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웃고 있었다.
"야, 너 표정 진짜 장난 아니다. 우리도 최대한 찌그러뜨린 건데 네 표정이 너무 리얼하고 독보적이라 비교가 안되네! 오늘의 주인공은 완전 허저 너다. 너! 베스트 포토제닉!"
나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승리감에 도취된 얄미운 친구들의 변명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한 순간의 굴욕과 추억으로 사라질 것으로 여겼던 그 사진을 다시 보게 된 건, 연말에 발행된 우리 동아리의 '한글 사랑 동인지'에서였다. 우리 동아리는 1년 동안의 활동을 모아 매년 동인지를 발간하고 있었다. 연초 신입생을 모집하는 기사부터, 캠페인 활동, 워크숍, 교환학생을 위한 한글 캘리그래피 교육, 농촌 봉사 활동, 축제 등등 다양한 기사를 실어 1년을 돌아보고, 함께 기념한다.
그 책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록 페이지에 그 문제의 마늘 밭 사진이 가장 크고 선명하게 실려있었다. 사진 밑에는 '혼을 불어넣은 마을 밭에서의 투혼'이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 나는 졸지에 괴상한 표정으로 동아리의 명물이 되어 선후배들에게 눈도장을 찍게 되었다.
편집을 담당한 '정봉'에게 달려가 따지자, 그는 마늘밭에서 웃던 것처럼 또 한 번 깔깔 웃더니 마침내 모종의 전말을 밝혔다.
"야, 미안. 그때 너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우리가 마을회관에서 입을 좀 맞췄어. 너 얼굴 진짜 잘 망가뜨리잖아. 그것도 재능이라니까! 이번엔 다 같이 멀쩡하게 찍어서 너만 돋보이게 하자고 작당모의 한 거야. 하하! 근데 진짜 잘 나오지 않았냐?"
분노가 차올랐지만, 정봉의 만족스러운 표정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친구들이 몰려와 나에게 덧붙였다.
"야 허저. 잘 생각해 봐. 우리가 왜 그랬겠어!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평소에 너무 샌님 같잖아. 동아리 후배들한테 인기 있는 선배가 되려면 이렇게 좀 망가지고 웃긴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야 한다니까?"
동기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이밀며 나를 달래려 했다.
나의 굴욕적인 사진이 그들에겐 숭고한 희생이었다는 논리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그 투혼 사진은 동아리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농활 사진으로 남았다. 그때는 동기들이 얄미워서 며칠간 진심으로 삐쳐있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굴욕까지도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다.
.
.
.
"그나저나, 그 사진 아직도 동아리 방 벽에 붙어 있으려나?"
우리는 추억 속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술잔을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