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이 허락되는 토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커피 한 잔의 여유로운 의식이다. 주중에는 정신없이 출근하느라 부리지 못한 사치를 주말에는 최상의 결과물로 만끽하기 위해서다.
느릿느릿 주방으로 향한 나는 가장 먼저 물을 끓인다. 나름 홈카페로 꾸며놓은 공간 한쪽에 놓인 원두 통을 열자, 잘 로스팅된 원두 특유의 고소하고 쌉싸름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약 10그램의 양의 원두를 계량해 핸드밀에 넣고 커피콩이 갈리는 소리를 듣는다.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소리가 아침의 정적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투명한 그라인더 통에 고운 갈색 가루가 소복하게 쌓이면 나의 정신도 함께 깨어나는 듯했다.
드리퍼에 필터를 조심스럽게 펼쳐 넣고, 미리 끓여둔 뜨거운 물을 살짝 부었다. 린싱은 종이 냄새를 제거하고 드리퍼와 서버를 예열하는 매우 중요한 단계다. 물이 서버로 떨어지고, 여과지를 따라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시각적 명상이다. 이 순간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 때문에 이 단계를 절대 건너뛸 수 없다.
예열된 여과지 위에 방금 간 커피 가루를 붓고 평평하게 펴준다. 주전자를 들어 섬세하게 중앙부터 원을 그린다. 물의 양을 조절하며 뜸을 들이는데, 이때 물이 원두에 닿아 부풀어 오르며 뿜어져 나오는 농밀하고 진한 커피 향은 위스키 향보다 진하다.
30초쯤 시간이 지났을까. 뜸이 잘 든 커피 위로 다시 한번 물을 가늘게 부어준다. 느린 속도로 일정한 원을 그리며 본격적인 추출을 시작한다. 물이 커피 가루를 통과하며 짙은 갈색으로 변해 서버에 규칙적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완성된 커피 한 잔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만큼 깊고 풍부하다.
가장 아끼는 잔에 커피를 따라 소파에 기대앉았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오늘 하루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누리는 잠깐의 사치. 이 평화로운 오감 만족을 위해 번거로운 과정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하, 이제 시작해 볼까?"
여유롭게 커피를 마신 후 나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3주간 미뤄온 집안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은 날이기 때문이다. 커피잔을 가지고 주방으로 돌아가니 완벽한 아침과는 다르게 주방 한구석에는 이미 숨이 막힐 듯 포화 상태인 종량제 봉투가 보였다.
창가로 간 나는 모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걸로 이 대장정의 포문을 열었다.
먼저 택배 박스에 한꺼번에 담겨있는 재활용품들을 분류해 분리수거장에 버리고 왔다. 쌓여있던 재활용품들만 집 밖으로 내보내도 한결 집이 넓어 보였다.
다음은 옷이나 책, 그릇 등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질러져 있는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려주었다. 소파와 실내 자전거에 걸쳐져 있는 트레이닝 복과 수건을 걷어 먼저 담겨있던 옷들과 함께 세탁기를 돌렸다.
인터넷에서 대청소하는 순서를 검색하고 '인'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 했다. 그동안 대청소를 머리 무겁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니 효율적이고 힘도 덜 드는 것 같았다.
다음은 조명, 전자제품, 책장 위 등의 먼지를 털어내고 창틀을 닦고 욕실을 청소하는 것까지. 오래 걸릴 것 같았던 대청소가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되었다. 도구 정리까지 완벽하게 마친 나는 마지막으로 종량제 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묶어서 버리고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모아둔 모든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오면 집이 얼마나 쾌적할지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종량제 봉투 손잡이를 끌어당겨 겨우 묶으려고 하는데, 내 눈앞에 커피 찌꺼기를 모아놓은 신문지가 보였다. 버리기 전 말려놓은 것들과, 또 방금 전 내려 마신 필터 안의 커피 가루.
'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하지만 새로운 봉투를 꺼내 커피 가루를 담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기필코 커피 찌꺼기까지 이 종량제봉투에 넣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전투적이 되었다. 향긋한 냄새는 다 빠지고, 갈색 흙처럼 변한 찌꺼기를 신문지 채 말아서 봉투에 밀어 넣으려 했다. 얼마나 차곡차곡 쓰레기를 잘 버렸는지 여분의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신문지 더미를 밀어 넣으려고 애쓸수록 안에서는 쓰레기 파편들이 투두둑 소리를 내며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길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아... 어쩌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이즈음에서 새 봉투를 꺼내는 건 왠지 패배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압축 가능해!'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다시 무장하고 슬리퍼를 신은 오른쪽 발을 종량제 봉투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한 번에 끝내자는 생각으로 체중을 한쪽 발에 실었다. 봉투 안에서는 '꾸우우욱, 피유우웅-' 하는 기괴한 소리가 들리며 쓰레기들이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며 남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조금 더 강하게 손잡이를 당기며 발을 눌러 쓰레기를 밟았다.
그러나 그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봉투의 옆구리가 터져버렸다. 그 터진 사이로 압축되었던 쓰레기들이 자유를 향한 탈출을 시도했다. 애써 말았던 커피 찌꺼기 가루들이 폭탄처럼 터져 나와 내 발과 바닥을 더럽히며 흩어졌다. 오래된 쓰레기들이 터져 나와 내가 그동안 뭘 먹고, 뭘 하며 살아왔는지를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햇살이 따스하고 은은한 커피 향에 취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던 순간은 꿈속의 일처럼 까마득해졌고 지금껏 열심히 청소한 게 무색하게 퀴퀴한 냄새가 주방을 덮쳤다.
나는 당황해서 두 손은 쓰레기봉투 손잡이를 부여잡고 한쪽 발은 쓰레기봉투 속에 쑤욱 넣은 채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 후 엉망이 된 주변을 보며 번뜩 든 생각은 이 모습을 아무도 못 봐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가족, 특히 여동생이 이 모습을 봤다면 몇 년 동안 놀려댔을 것이다.
절망 속 안도감이라는 두 마음을 안고, 나는 한쪽 발로만 뛰어 욕실로 달려가 발을 씻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과 함께 다시 청소기를 꺼내 갈색의 폭탄 무리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봉투 하나 아끼려다 마룻바닥을 재차 청소하고, 터진 봉투를 수습하기 위해 새 봉투까지 써야 하는 미련함이라니.
쓰레기를 두 개의 봉투로 나눠 담으며 나는 다짐했다. 쓰레기는 꽉 차면 빨리 버리겠다고, 다시는 발로 밟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완벽하게 시작했던 주말 아침의 사치는, 결국 쓰라린 대청소로 처절하게 끝이 났다.
내일 아침 커피는 왠지 쓰디쓴 한 잔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