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불합격에 이은 재취업 성공기
호기롭게 사표를 던진 후 마주한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냉혹하고 고요했다. 독서실 세대였던 나는 키오스크로 결제하는 스터디카페가 낯설었고, 집 한구석에 들여놓은 작은 수험용 책상은 나의 새로운 세상이자 감옥이 되었다. ‘인싸’라 불리며 사람들 속에 섞여 에너지를 얻던 나에게, 철저히 혼자가 되어야 하는 수험 생활은 고립 그 자체였다.
평일에는 집 근처 스터디카페에서, 주말이면 모의고사를 보기 위해 난생처음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다. 미혼이었다면 그곳에 살며 공부했겠지만, 나는 가정이 있었기에 통학을 택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한데, 법전 가방을 메고 고시촌 언덕을 오르는 나만 세상에서 유리된 기분이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앉은 책상 위, 펼쳐본 법전의 글자들은 나를 비웃는 듯했다. 그동안 나는 ‘암묵지’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경험칙에 의존해 일해왔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법적 근거도, 깊이 있는 이론도 없이 갓 입사한 입문교육생들에게 “이게 정답”이라고 가르쳤던 지난날의 내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것은 학습이 아니라, 무지에 대한 참회였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나는 수험이라는 괴물을 너무 얕봤다. 합격 수기들만 믿고 나 자신을 과대평가한 탓에, 전략의 실패로 1차 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충격이었다. 인생의 플랜 B따위는 없었다. 1차 합격 후 주어진 두 번의 2차 기회 안에 끝내겠다는 내 완벽한 시나리오는 첫 장부터 찢겨 나갔다. 절망은 6개월간 끊었던 술을 다시 부르게 했다. 한 번 무너진 멘탈은 술잔을 기울일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고, 다시 펜을 잡기까지 꽤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전열을 가다듬어 다음 해 1차 시험은 합격했으나, 이어진 2차 시험은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약속했던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남은 기회는 단 한 번의 2차 시험. 여기서 멈춘다면 평생 미련이라는 짐을 지고 살 것 같았다. 나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부탁했다. “딱 1년만 더 하게 해 줘. 후회 없이 끝내고 싶어.”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주던 아내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의 무모한 도전을 지지해주고, 가장 힘든 순간마다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가 없었다면 나는 그 긴 터널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결과적으로 나는 노무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1년의 추가 시간 덕분에 나는 ‘실패’가 아닌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수험 생활을 정리하며 떠난 시드니와 삿포로 여행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짓누르던 합격의 강박을 내려놓고 ‘다음 챕터’를 구상할 힘을 얻었다.
하지만 현실 복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노무사 1차 합격 이력은 서류 통과에 약간의 도움이 되었으나, ‘3년의 공백’을 가진 30대 중반의 취업준비생을 반겨주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화려했던 경력은 단절되었고, 나는 그저 ‘나이 많은 중고 신입’일 뿐이었다.
가장으로서 돈은 벌어야 했다. 면접 일정이 잡히면 언제든 달려가야 했기에 정규직 아르바이트는 언감생심이었다. 영하의 추위가 몰아치던 겨울, 나는 공사판에서 소위 ‘노가다’를 뛰었다. 몸이 부서질 듯한 고된 노동보다 힘들었던 건 퇴근길이었다. 작업복 차림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말끔한 정장을 입고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마주칠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잡을 수 없는 꿈처럼 느껴져, 길 위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 나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 퇴사했는데, 나는 왜 더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라는 자괴감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키려 할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건 아내였다. 그녀의 묵묵한 응원이 없었다면 나는 그 겨울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며 버틴 지 3개월, 거짓말처럼 세 곳에서 합격 통보가 왔다. 한 곳은 총무, 한 곳은 기획,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은 HR 조직문화였다. 앞선 두 곳은 처우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내가 지향하던 커리어의 방향이 아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HR 조직문화와 교육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경력직을 선택했다. 조건이나 환경보다 중요한 건, 내가 다시 ‘업(業)의 본질’로 돌아가 인사 전문가로서의 길을 잇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지난 1년은 말 그대로 ‘압축 성장’의 시간이었다. 3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나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달렸다. 업무를 파악하고, 제도를 기획하고, 밤을 새워 칼럼을 쓰고, 강연 무대에 섰다.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아니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듯 치열하게 살았다. 이제야 조금은 내 나이와 경력에 걸맞은 옷을 입은 기분이 든다. 법전을 파고들던 시간, 공사장에서 흘린 땀방울, 수없는 불합격 통보의 아픔. 이 모든 것이 섞여 비로소 나만의 ‘인사(人事)’가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더 이상 ‘빈 깡통’이 아니다.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과 깊이가 내 안에 생겼다.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단순히 직장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되는 꿈을.
다음 글부터는 복귀 후 1년 동안, 치열한 현장에서 부딪히며 만들어낸 구체적인 조직문화 사례와 인사이트를 하나씩 풀어놓으려 한다. 이론과 현실,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길어 올린 나의 ‘진짜 HR 생존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