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 도전하기 좋은 나이.
중견기업의 교육 담당자로 일하던 시절, 나는 꽤나 ‘괜찮은’ 주니어였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채용 설명회 무대에 서서 회사의 비전을 전파하고, 신규 입사자들을 위한 입문 교육을 진행하고 강의도 했다. 나와 함께한 수많은 신규직원과 라포(Rapport)를 형성하며 그들이 조직에 안착하도록 돕는 일은 분명 보람찼다. 때로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교육 시간에 늦은 교육생을 과감히 탈락시키는 엄격함을 보이기도 했다. ‘회사라는 곳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라는 긴장감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심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한 인사담당자의 전문성이었다.
나의 성과를 눈여겨본 회사는 내게 큰 기회를 주었다. 새롭게 론칭하는 신사업 기획팀 산하의 조직 세팅을 맡긴 것이다. 텅 빈 사무실을 채울 집기부터 임금 제도 설계, 입문 교육 체계 구축까지, 어떻게 보면 인사의 전반을 아우르는 소중한 실무 경험이었다. 주니어로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고민은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직장인에게 마의 구간이라 불리는 ‘3·6·9’의 시기였을까.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속 빈 강정’ 같았다. 구성원들은 내가 만든 제도와 내가 보낸 메일의 텍스트에 강한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정작 내 안의 지식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정말 최선인가? 법률적 근거는 확실한가? 나는 전문적인가, 아니면 그저 회사의 간판 뒤에 숨어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를 향한 신뢰가 커질수록, 스스로 느끼는 무력감과 부채감 또한 비례해서 커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HR이라는 업을 제대로 완성해보지도 못한 채, 그저 그런 ‘회사원’으로 남을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단순히 회사를 옮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장소만 바뀔 뿐, ‘빈 깡통’의 소리는 계속될 것이 뻔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공인노무사’라는 자격증이었다. 당시 코로나는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고, 2030 세대 사이에서는 ‘전문직’을 통한 안정성과 가치 증명이 화두였다. 나는 결심했다. 어떤 회사를 다니는 것이 자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나만의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 내가 하는 일에 구구절절한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진짜 ‘인사 전문가’가 되기로.
결혼을 약속한 지금의 아내에게 진심 어린 허락을 구했다. “딱 2년만 나에게 시간을 줘. 진짜 전문가가 되어서 돌아올게.” 안정적인 월급봉투를 뒤로하고 전업 수험생의 길로 뛰어들었다. 대학 시절에도 해본 적 없는 엉덩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수년 만에 잡은 펜은 어색했고, 법전의 글자들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선택한 ‘인사(人事)다운 인사’를 하기 위한 필수적인 통과의례였다.
나의 고군분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남들이 보기엔 무모한 퇴사였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나 자신을 다시 채우기 위한 가장 절박한 선택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얼룩진 노무사 수험 생활과 그 끝에서 다시 마주한 재취업 도전기를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