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레크레이션 강사가 아닙니다만

가치를 심고 사람을 잇는 보이지 않는 공기의 설계자

by 인싸담당자 신민주

흔히 조직문화 담당자라고 하면 사내 이벤트를 기획하거나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선물을 고르거나 워크숍 장소를 섭외하는 모습을 보며 동료들은 "재밌는 일 하시네요"라고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자칫 이 부분에만 매몰되면, 담당자는 일회성 이벤트만 준비하다 지쳐 떨어지고, 조직에는 즐거웠던 기억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공허한 상황이 발생한다.


나는 조직문화 담당자의 역할을 단순한 이벤트 기획자가 아닌, '가치의 연결고리'이자 조직의 '윤활유'라고 정의한다. 회사의 핵심가치(Core Value)가 벽에 걸린 액자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일하는 방식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고, 업무 생산성을 저해하는 비효율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회사의 사업 방향과 구성원이 한 몸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내 일의 본질이다.


그래서 가끔은 욕심을 부려본다. "조직문화 담당자인 나의 업무 영역이 채용까지 확장하면 어떨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우리 회사의 결(Team fit & Culture fit)에 맞는 사람을 알아보는 'P-O Fit(Person-Organization Fit, 개인-조직 적합성)' 관점의 채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젠가 채용부터 온보딩, 그리고 조직문화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우리 회사만의 고유한 색깔을 완성하는 것이 나의 장기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목표만 높다고 문화가 저절로 만들어지진 않는다. 나는 좋은 제도를 만들기 위해 HR 매거진을 탐독하며 타사의 성공 사례를 끊임없이 수집한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 어울릴만한 제도임과 동시에, 정말 궁금하고 우리 조직에 적용해보고 싶은 제도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그 회사의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낸다. "안녕하세요, 000 프로젝트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혹시 운영 노하우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렇게 구글밋으로 다른 회사 팀장님을 만나 운영 팁을 얻고, 시행착오를 줄일 묘수를 배운다. 구성원이 좋아할 만한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해서라면, 인사담당자에게 이 정도 '얼굴에 철판 까는 용기'와 '적극성'은 필수 덕목이 아닐까 싶다.


2025년, 내가 설정한 조직문화의 핵심 키워드는 '연결'이었다. 우리 회사의 핵심가치 중 하나가 '소통'임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의도하지 않은 '사일로 효과(Silo Effect)'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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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시도한 해결책은 '사내 동호회'였다.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대기업도 아닌데 과연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일까? 하지만 나는 갤럽(Gallup)의 연구 결과를 믿어보기로 했다. "직장에 절친한 친구가 있는 직원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업무 몰입도가 7배 더 높다." 친한 동료가 주는 심리적 안전감이 곧 업무 성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판을 깔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치 이런 멍석이 깔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6개의 동호회가 생겨났고, 전사 구성원의 40%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업무로만 만났다면 딱딱했을 관계들이 취미를 매개로 유연해졌고, 이는 곧 협업의 효율로 이어졌다.


이 흐름을 타서, 클래식한 기념일 챙기기도 새롭게 선보였다. 이는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 EX) 관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입사일은 회사원으로서 다시 태어난 날과 같다. 1주년을 맞은 직원들을 위해 점심 간담회를 열어 그들의 지난 1년을 인정해 주고, 부모님 댁으로 회사 명의의 감사 선물을 보냈다. 매달 열리는 생일파티에서는 동료들이 롤링페이퍼처럼 쓴 축하 메시지가 당일 아침 메일로 자동 발송되도록 세팅했다. "회사 다니면서 부모님께 선물 보낸 건 처음이에요."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감동의 순간들이 모여 구성원의 소속감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외에도 타 부서 사람들과 무작위로 매칭되어 점심을 먹는 '랜덤 런치', 1:1로 매칭되어 서로의 비밀 산타가 되어주는 '크리스마스 랜덤 산타(마니또)', 경영진과 직접 소통하며 투명성을 높이는 '타운홀 미팅'까지.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구성원들이 서로 섞이고 비벼질 수 있는 다양한 장(場)을 만들었다. 특히 랜덤 런치를 6개월 넘게 순항시키며, "다른 부서 분과 처음으로 사적인 대화를 해봤어요"라는 피드백을 들을 때면,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큰 회사에 있을 때 이런 재량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말이다.


조직문화 담당자는 무대 위의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그저 구성원들이 서로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판을 까는 사람(Facilitator)'이다. 그 판 위에서 직원들이 웃고, 떠들고, 라포(Rapport)를 형성하며, 결국엔 일이 더 잘 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조직문화의 힘이다.


지금까지는 구성원을 '연결'하는 판을 깔았다면, 다음 화에서는 구성원의 성장을 돕기 위해 어떤 판을 깔았는지, 그 치열했던 고민의 기록을 공유해보려 한다. 조직문화가 어떻게 구성원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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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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