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주, 수요일
교실마다 즐거운 활동이 한창이던 시간,
한 선생님이 상기된 얼굴로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왔습니다.
아이의 눈시울은 붉어져있었고 올려진 아이의 소매 너머로 선명한 이빨 자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가 그랬니?' 조심스레 물었지만, 아이는 작은 입술을 꾹 다문채 고개를 저으며 말없이
눈물만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작고 동그란 초콜릿케이크의 광고노래처럼
아이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더라도 눈빛만으로 모두 알아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그 분위기가 짐작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에겐 눈빛만으로 아이의 마음을 알아채는
그런 마법의 능력이 매 상황마다 발휘되진 않습니다.
아이의 마음은 때로 너무 깊고, 너무 조용해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닿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이의 침묵 앞에서 말하지 않는 아이를 다그치지 않기 위해 잠시 호흡을 멈추고 다시 한번 부드럽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많이 아팠겠다, 누가 그랬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니?"
많이 아팠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가 말합니다.
"그런데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물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말하지 못해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선생님이 어떤 상황인지 물었지만 대답 없이 울기만 했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 "누가 물었니"라고 물어보았지만 모두들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통에
내게로 찾아오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혹시 친구가 문 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양 마음에 많이 쓰였던 걸까,
아니면 친구가 문 이유를 자기가 제공했다고 생각이 들었을까.
끝내 자신을 문 친구의 이름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담임선생님과 교실로 돌아가도록 하고 안전을 위해 설치해 둔 CCTV화면을 찾아보니 그제야 상황이 정확히 이해가 됩니다.
다락방 계단 공간에 자리를 잡고 나름의 놀이를 하고 있던 아이와 계단을 통과하려는 아이의 진로가 방해되자 작은 실랑이가 있었고 그 끝에 그 아이의 팔을 무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실랑이가 있었던 친구를 조용히 따로 불러 다정한 목소리로 "00가 00의 팔을 물었니?" 하고 물으니
조금은 망설이는 듯 "네"라고 대답하며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그 아이도 친구의 팔을 문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속상함과 친구와의 갈등을 신체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기에 물린 친구를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제야, 침묵을 유지하던 아이는 자신이 아팠던 이야기, 속상했던 감정을 털어놓고
친구를 문 아이는 사과의 말을, 자신의 속상함도 함께 나누고는 서로 마주 보며
'괜찮아'라는 말을 다정히 건네고 교실로 돌아갑니다.
두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 또 하나의 깨달음을 갖습니다.
선생님은 진실과 시시비비를 캐내어 응징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말하지 않는 아이 앞에서,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 재촉하지 않고
처음부터 물었다고 시인하지 않은 아이 앞에서,
왜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냐고 비난하지 않는 것,
그것은 우리가
아이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선생님'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갈등 상황에서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보다
행동이나 침묵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자신이 피해를 입었을 때조차
'말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선생님은
진실을 빠르게 파악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에 먼저 다가가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침묵은 때로 감정의 방어막입니다.
아이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짓말을 한다거나 숨긴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은 진실과 옳고 그름을 캐묻는 질문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어야 합니다.
갈등의 해결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아이 스스로 감정을 말하고, 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하며 기다려주고 들어주는 것.
그것이 선생님의 역할입니다.
ㅣ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는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하였나요?
아니면 아이들의 감정이 회복되는 데 마음을 두었나요?
ㅣ 아이가 말하지 않을 때, 나는 그 침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혹시 답답함이나 조급함이 먼저였나요, 들어주고 기다려
주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