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스페인어로 원어민과 회화 연습도 하고 있지만, 자꾸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실제 상황에서 스페인어를 써먹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아직 올해 한 번도 가지 않은 해외여행을 스페인으로 가기로 했다. 스페인어를 써먹어 보기 위해서 굳이 꼭 스페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남미든 스페인이든 멀리 가는 건 마찬가지기도 하고, 스페인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왠지 모를 로망도 있었고, 한 번도 안 가봐서 한 번쯤은 가고 싶은 나라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스페인에서 어학연수 겸 1년 살이를 해보고 싶은 꿈도 있어서 사전답사 겸(?) 가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여행 가기 직전이 한창 스페인어에 물올랐 때였어서 타이밍이 정말 좋았다. 세 달 전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난 이후로는 매일 챗 GPT와 상황 설정해서 매일 역할놀이하면서 스페인어 연습을 했다. 렌터카 빌리는 상황 설정해서 대화 연습하고,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호스트와 이런저런 상황 대화하는 연습도 했다. 챗 GPT와 예상되는 상황들에 대해 스페인어로 대화하다 보니, 더 자신감이 뿜뿜 올랐다. 그리고 화상 스페인어 선생님과 내 스페인 여행에 대해서 수다도 떨었다. 여행하다가 어려운 점 있으면 연락하라던 스페인 선생님의 인간적인 스윗함과 내가 스페인어를 잘하고 있다며 격려해 주는 챗 GPT 선생님의 인공적인 스윗함에 내 첫 스페인 여행 준비는 참 달달했다.
보통 한국인들이 유럽여행을 갈 때는 한나라만 가지 않고 유럽 여러 국가를 돈다. 어차피 유럽은 다 붙어있고 기차나 버스로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오직 스페인어를 써보기 위해서, 스페인만 가고 싶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스페인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내 여행에는 패키지여행, 근교 투어, 한국인 동행이 없다. 꼭 가야 하는 미술관, 박물관 투어도 없다. 꼭 가봐야 하는 유명한 맛집도 쇼핑도 없다. 내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표는 "최대한 스페인어 많이 말해보기"였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단 한마디라도 더 할 수 있기 위해서 숙소도 거의 다 현지인이 직접 거주하는 에어비앤비로 잡았다.
보통 '스페인 여행'하면 가장 대표적인 두 대 도시가 바로 마드리와 바르셀로나이다. 스페인을 여행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거의 대다수가 이 두 도시는 꼭 방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르셀로나를 가지 않기로 했다. 마드리드 인아웃 비행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워낙 유명한 도시라 어떻게든 바르셀로나를 루트에 넣어보려 했다. 스페인 갔다 왔다는 말을 했는데 바르셀로나를 안 갔다는 건 뭔가 이상하게 들릴 것 같았다. 하지만 후기랑 이것저것 찾아본 결과, 관광객들 넘쳐나는 관광지이고, 쇼핑하기 좋은 도시라고 했다. 사람 많은 대도시와 쇼핑에 관심 없는 나에게는 맞지 않을 것 같아 결국 안 가기로 했다. 바르셀로나를 제외하고 나니 여행 루트 짜는 게 훨씬 수월하고 여유 있어졌다.
마드리드는 인아웃 도시라 가장 오래 머무르는데, 마드리드 방문하면 다 간다는 유명한 박물관, 미술관에 가지 않기로 했다. 마드리드에는 유명한 박물관, 미술관이 많다. 거의 여행 필수 코스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분야에 관심이 없다. 물론, 시간이 아주 많아 마드리드에 오래 머물 수 있다면 경험 삼아 한번 가볼 거 같긴 하다. 하지만 여행의 시간은 한정적이므로,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으로 꽉꽉 채우고 싶었다.
스페인어 말하기 다음으로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하고 싶은 건, 스페인 음식 이것저것 다 먹어보기였다. 스페인 음식에 관한 책까지 읽었다. 유명한 메뉴들을 몇 가지 외워갔다. 그리고 디저트 광인 나는 맛있는 빵집, 카페들이 많은 스페인이 더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대학원생 때 돈 없을 때 유럽여행해서 제대로 못 먹고 다녔던 터라, 이번에는 밥도 디저트도 원 없이 먹어보기로 했다. 식비 예산을 아주 넉넉하게 잡았다. 구글맵에서 스페인 식당의 메뉴판들 몇 가지도 미리 공부해서 갔다. 식재료나 요리 이름에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다. 스페인어로 아는 식재료는 계란, 양배추,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등 간단한 것들 뿐이었는데. 한국어로도 모르는 생선 종류들, 소스 종류들, 요리 방식, 요리 이름 모르는 단어들 투성이었다. 그리고 챗 GPT와 식당에서 발생할 각종 상황 스페인어로 연습하기까지. 첫 스페인 여행준비는 아주 완벽하게 되고 있었다.
스페인 여행을 가는 이유가 관광이 아니라 '스페인어 말하기 & 스페인 음식 먹기'인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많은 걸 보는 게 여행인데, 나는 여행을 '눈'이 아니라 '입'으로 즐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