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있는 스페인어 공부 방법은 영어 공부하는 분들도 많이 하는 방법이다. 특히 '일기 쓰기'는 정말 효과적인 외국어 학습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어 일기 쓰기는 나도 여러 번 시도했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매번 작심삼일이었다. 재미가 없었고, 하기가 싫었다. 나에게 영어는 늘 뭔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억지로 해야 하는'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스페인어 일기 쓰기는 지금 세 달 넘게 꾸준히 하고 있으니 나 스스로도 신기할 노릇이다.
게다가 영어는 오랜 시간 동안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공부만 해왔다. 대학 때 토익도 고득점에, 중고등학생들 영어 과외도 오래 했다. 하지만 영어시험 점수만 높은 나는 영어로 말하기가 늘 어려웠다. 반면에 스페인어는 영어처럼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사실이 스페인어 공부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외운 단어들을 또 까먹었을 때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그냥 다시 외우면 되지' 하게 된다. 문법도 공부하긴 하지만, 영어 공부할 때만큼 문법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스페인어는 '말하기'가 된다는 게 가장 재미있다. 문법도 많이 틀리고, 발음도 좋지 않아도 원어민과 '소통'이 된다는 걸 경험하고 나니 더욱 그렇다. 스페인어 뉴스가 다 들려도, 스페인 원서 책을 술술 읽을 수 있어도, '스페인어로 말하기'가 안된다면 외국어 공부가 영 재미없었을 것 같다.
물론 영어도 어느 정도의 말하기는 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영어 말하기에는 '심리적 장벽'이 너무 크다. 스페인어로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왜 영어 말하기가 그렇게 어렵고 또 무서웠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국인이라면 영어를 아예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안다. 그러다 보니 영어로 말을 한다는 게 어지간히 부담스럽다. 누군가 영어로 말을 한다면 그걸 듣는 사람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영어능력을 평가한다. 나도 그렇다. 누가 영어로 발표하는 거 들으면서 '어? 동사 시제 틀렸는데?' 하고 바로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특히 영어로 말할 때 가장 부담스러운 건 '발음'이다. 다들 말은 못 하면서 귀는 수준급이다. 저 사람의 영어 발음이 좋네, 안 좋네 바로 평가를 꽝꽝! 내려버린다. 그러하다 보니 안 그래도 소심하고 예민한 나는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말을 하기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영어로 말을 할 때 늘 머릿속으로 영어 문장을 떠올리고, 말로 내뱉기 전에 머릿속에서 한두 번 더 그 문장을 굴려본다. '이 문장 시제가 현재완료가 맞나? 어? 이거 전치사 in을 써야 되나 on을 써야 되나?' 하면서 머릿속에서 자체 검열을 하는 것이다. 그러하니 영어로 말이 바로바로 나올 리가.
스페인어로 말할 때는 영어와 다르게 자체 검열을 안 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다. 틀리면 선생님이 고쳐준다. 내가 이 문장이 맞는지 저 문장이 맞는지 질문하기도 한다. 그리고 틀려도 알아듣는데 이상이 없다면 선생님도 매번 고쳐주기보단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은 어떤 외국어든 그 외국어를 배웠다면 그 외국어로 '말하기'가 되어야 재미도 느끼고,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십 년을 해온 영어 공부보다 겨우 1년 반 해온 스페인어를 더 재밌게 하고 있는 이유는 결국 '외국어로 소통하는 게 재밌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