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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이른 새벽 풍경

by 하르딘

경유 1번 포함해서 2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거쳐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였다. 혹시나 숙소에 조금이라도 일찍 체크인할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전날 숙박객이 있어서 안된다고 했다. 결국 숙소에 캐리어만 맡겨놓고 바로 나왔다. 서른 시간 가까이 씻지도, 제대로 잠도 못 잔 몰골로 마드리드 시내 중심가를 걸어 다녔다. 장장 4시간 동안..! 마드리드는 관광지가 거의 중심가에 다 몰려있어서 첫날 그렇게 좀비처럼 걸어 다니면서 주요 관광지는 다 봤다. 마드리드에서 3박 일정 잡았는데, 첫날 4시간 만에 구경 다 했으니 이제 뭐 하지..?


그때 에어비앤비 숙소 호스트에게서 이제 체크인해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숙소에 들어온 시간은 오후 1시 반. 짐 대충 풀고, 씻고, 자려고 누웠다. 조금 자고 일어나서 저녁 먹으러 나가려고 저녁 8시에 알람을 맞춰 놓았다. 알람에 눈은 떴으나, 몸이 떠지지 않아 그대로 다시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기절했다가 다시 눈 뜬 시간은 새벽 2시.


새벽 2시에는 뭐 어디 갈 데도 없었다. 그제야 말똥말똥 해진 눈을 껌뻑이면서 '나 마드리드에 잠자러 왔나..?' 하는 허탈함이 밀려왔다. 여행 첫날 피곤함에 하루 종일 자느라 하루를 다 날렸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창가의 커튼을 걷고, 창밖으로 거리 풍경을 또 멍하니 보았다. 일시정지된 화면처럼 정적이고 어둡고 고요했다. 구글맵으로 오늘 가볼 곳들과 식당들을 검색하고 다시 멍 때리고, 그러다 새벽 5시쯤 되니 밖에 쓰레기 수거차들이 엄청 돌아다닌다. 음식점에서 나온 쓰레기들과 거리 쓰레기통의 쓰레기들을 분주하게 수거한다.


이제 겨우 새벽 6시. 여전히 밖은 어둡다. 슬슬 어디 일찍 여는 식당을 가볼까 구글맵을 켜본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추로스 집이 새벽 6시 반에 여는 곳이 있었다. 조금 쌀쌀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밖에 나왔다. 밤거리보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이른 새벽시간 거리가 더 무서운 것 같았다. 밤에는 곳곳에 늦게까지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른 오전 새벽 6시에는 거리는 어두컴컴하고 조용한데 사람은 거의 없다. 서울의 환한 가로등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마드리드 새벽은 너무 어두웠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거의 없이 간간이 사람이 지나다니는데 나도 모르게 경계하게 되었다.


어두운 골목길에 홀로 불 켜져 있는 추로스 집에 문 열고 들어간 시간은 새벽 6시 40분 즈음. 직원들은 영업 시작 준비를 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아마 그날 내가 첫 손님이었던 것 같다. ¿Está abierta?(문 열었나요?) sí(네). 넓은 매장에 나 혼자 자리 잡고 앉았다. 사실 스페인에서 추로스 먹을 걸 꽤 기대했었다. 한국에서 먹는 일반적인 추로스랑은 완전히 다른 맛이라던 사람들의 후기가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먹어야지!'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아직 피곤함과 머리가 몽롱한 상태인 데다가 그 전날 공항에서 먹은 것들, 기내식들이 그대로 뱃속에 있는 상태여서 딱히 뭘 먹어도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처음 먹은 스페인 추로스는 그냥 따뜻하고 바삭바삭 쫄깃했다. 아마 시장에서 파는 (설탕 안 입힌) 찹쌀 도나스와 비슷한 것 같다. 초콜릿은 엄청 진하고 걸쭉한 녹인 초콜릿인 것 같은데, 리뷰만큼 그렇게 달지 않았던 것 같다. 몸 상태가 괜찮았다면 더 맛있게 즐겼을 텐데 좀 아쉬웠다.


그 후 골목을 돌아다녔다. 이제 잠에서 거의 깼는데, 아직 도시는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골목골목은 이전에 넷플릭스에서 스페인 영화, 스페인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같았다. '어? 여기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봤던 장소 같아!' 하면서 신기했다. 하지만 그 후 그 골목이 그 골목, 그 건물이 그 건물 같아 보였다. 유명한 광장, 대성당 아니고서야 비슷비슷했다. 하긴 서울도 잠실타워, 경복궁 같은 거 빼고는 대기업 건물들도 비슷하고, 아파트들도 다 비슷하게 생겼지 뭐. 영화에서는 눈에 안 들어왔던 것이 실제로 보이는 건 거리의 쓰레기들과 담배꽁초들이었다.


조금씩 어둠이 걷히는 7시 반 좀 넘어가니 이른 아침 강아지 산책 시키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여기는 대부분 작은 강아지보다 대형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한국처럼 출근 전에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내가 본 반려견 키우는 사람들은 다 배설물을 바로바로 수거하는 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나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있듯, 거리에 강아지 배설물들은 종종 보였다.


걷는데 조금 지쳐 큰 길가 도로변에 있는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이 가까운 카페에 가서 아침 메뉴로 파는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했다. 아침 8시쯤 되니 하나둘 점점 사람이 많아졌다. 대부분 출근 전에 간단히 아침과 커피를 먹고 출근하려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안에서는 출근 전 카페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들. 밖에서는 점점 해가 밝아오며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들, 도로엔 점점 많아지는 차들. 잠들어 있던 도시가 하나 둘 깨어가며 분주해지는 마드리드의 이른 새벽 풍경을 구경했다.


평일의 이른 새벽~오전 시간 동안 돌아다니면서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동양인은 나 혼자뿐이었다. 마치 이 공간에 나는 어울리지 않는 듯, 투명 인간인 듯 느껴졌다. 마드리드의 이른 새벽 풍경은 여느 도시들과 다를 바 없는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보통 일상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에 비해할 일 없는 여행자인 나는 그 속에서 홀로 이질적인 존재로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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