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by 김승예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로, 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유정은 몇 번이고 그 긴 복도를 달렸다. 문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 믿으며, 어느 순간에는 선수 대기실이 열리고 윤이 익숙한 표정으로 걸어나오리라 기대하며. 그러나 마주한 것은 늘 같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 하나 없는 복도. 천장도 벽도 희미하게 흐려져 경계가 사라진 공간. 발소리만 메아리처럼 따라왔다가 이내 삼켜졌다.

윤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자신 안으로 더 깊이 숨어든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은 문득, 말끝이 자신답지 않게 단단해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 어느 날은 거울 속 눈빛이 낯설어 섬뜩해졌다.
‘혹시… 다시 들어온 걸까.’
의심은 파문처럼 번졌다가도, 확인할 길이 없어 스스로 가라앉았다. 세상과의 연결이 거의 끊긴 삶에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내부의 잔향인지 가늠할 기준도 흐려졌다.

혼자 남은 집에서 며칠을, 몇 달을 버티는 동안 집 안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저녁이 되면 싱크대 물비린내 속에 저수지의 냄새가 섞여 드는 것 같았고, 욕실 거울에 서리라도 맺히면 물에 불어 희게 부푼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밤이면 작은 소리에도 숨이 멎을 듯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때 이모가 유정이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을 팔고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후견인이 되겠다고, 성인이 되면 보험금과 유산, 집 판 돈에서 생활비를 뺀 나머지를 그대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말은 단정했고, 계산은 또박또박했다.

유정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1년에 한두 번 카페에서 얼굴을 마주하던 이모는, 혈연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멀게 느껴졌다. 집에 얹혀산다는 사실이 숨을 조이듯 답답할 것 같았다. 게다가 이모에게는 마침 기숙사로 떠난 아들이 있었다. 텅 빈 방 하나를 채워 넣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1년도 남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집에 홀로 남아 있는 것이 점점 견딜 수 없었다. 식탁 위에 남은 흠집, 벽에 기대어 있던 엄마의 체취, 문득 스치는 물 냄새.
결국 유정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구는 모두 처분되었다.
짐이라 할 것도 없었다. 옷가지 몇 벌, 칫솔, 낡은 공책과 책 몇 권. 박스 하나에 담기고도 공간이 남았다. 집을 나서며 한 번쯤 뒤돌아볼 법도 했지만, 유정은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그곳은 이미 집이 아니라, 물에 잠긴 기억의 잔해처럼 느껴졌다.

이모네 집 현관문이 열렸을 때, 먼저 스며든 것은 향초 냄새였다. 달콤하고 인위적인 향.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퀭한 얼굴과 달리, 이모는 다시 피부가 팽팽해져 있었다. 눈가에는 옅은 펄이 반짝였고, 입가엔 무리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그새 많이 야위었네. 들어와서 밥 먹자. 갈비찜 해뒀어.”

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진 복도를 지나자, 걸레질만 해도 한 시간이 걸릴 듯한 너른 거실이 펼쳐졌다. 바닥은 광이 나 반짝였고, 소파와 텔레비전 사이에는 과하게 넓은 간격이 있었다. 화면이 아무리 커도 저기서 잘 보일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사이, 새하얀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는 긴 초록 매트가 길게 놓여 있었다. 골프 퍼팅 매트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겠지만, 그때의 유정에게 그것은 단지 이 집의 취향과 생활을 드러내는 이질적인 선처럼 보였다.


이 집에 온 건 처음이었다. 이모는 늘 카페에서만 유정을 만났고, 집 안으로 들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턱을 넘는 순간, 자신이 손님인지 가족인지 애매해졌다.

거실로 발을 들이길 잠시 머뭇거리자, 이모는 짐가방을 거의 낚아채듯 받아 들고 안으로 걸어갔다.
“이모부는 회사 갔어. 우리끼리 갈비찜 식기 전에 얼른 먹자.”

식탁 위에는 윤기가 도는 갈비찜이 김을 올리고 있었다. 윤이 나도록 반질거리는 접시, 반듯하게 놓인 수저, 정갈하게 접힌 냅킨.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너무도 잘 준비되어 있어서, 오히려 숨이 막힐 정도였다.

유정은 자리에 앉아, 설익어 뼈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갈비를 조심스레 이로 뜯었다. 고기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질겼다. 씹는 동안 고기 결 사이로 단맛이 배어 나왔다.

‘혹시 이런 걸 보면, 내가 박탈감을 느낄 거라 생각한 걸까.’

텅 빈 집에서 혼자 컵라면을 먹던 지난밤들이 스쳤다.
넓은 식탁 위에 단둘이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유정은 어딘가 유리 진열장 속에 놓인 물건처럼 느껴졌다.

이 집은 따뜻했고, 환했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했다.
그 평온이 오히려 유정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겪은 것들이, 이 빛 아래에서는 너무 쉽게 지워질 것만 같았다.


식사를 마치자 이모는 유정을 사촌 민종의 방으로 데려갔다.
텔레비전이 걸린 벽 뒤편, 거실 소음이 한 겹 걸러져 닿는 자리였다.

문을 열자 책상과 책장이 정면으로 마주 보였다. 반듯하게 세워진 참고서들, 연필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필기구, 책상 위에 가지런히 정렬된 스탠드와 타이머.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치고는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었다. 숨소리마저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방이었다.

“문 열고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여기가 민종이 공부하던 방이야. 유정이도 슬슬 검정고시 준비해야지? 여기서 공부하면 돼. 민종이 기 받을 겸. 민종이가 여기서 공부해서 특목고 들어간 거거든. 좀 쉬라고, 쉬라고 해도 펜을 안 놓더라니까? 요즘엔 바빠서 기숙사에만 있는데, 집에 오면 모르는 거 물어봐. 걔가 의대 준비해서 웬만한 건 다 알 거야.”

이모의 말은 자랑과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민종이 기.’
그 말이 유정의 귀에 오래 남았다.

공부방 안쪽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이모를 따라 그 문을 열자, 짧은 복도가 이어졌고, 한쪽에는 화장실 문이, 그 끝에는 또 하나의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 베란다가 딸린 침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붙박이장이 벽 깊숙이 박혀 있었고, 햇빛이 커튼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어 발치까지 흘렀다. 바닥은 매끈했고, 침대 위 이불은 호텔처럼 각이 잡혀 있었다. 사람의 체온이 스민 적 없는 방 같았다.

유정은 다른 방을 굳이 둘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집에서 가장 넓고, 가장 볕이 잘 들고, 가장 안쪽에 자리한 공간들이 민종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자신은 그 중심을 에둘러 붙은 방을 건네받은 셈이었다.

“여긴 자는 방, 침실이야. 빈방에 먼지만 쌓일까 봐 매주 청소만 했는데, 유정이 네가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저기 베란다에 장롱 보이지? 거기다 짐 풀면 돼. 필요 없는 건 미리 다 치워놨으니까, 공간은 넉넉할 거야.”

유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열었다.
옷걸이에 셔츠를 하나씩 걸고, 서랍을 열어 속옷을 정리했다. 가져온 짐이 적어 서랍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빈 공간이 도드라졌다. 이 집의 넉넉함은 어쩐지 유정의 빈약함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옷을 정리하는 손끝이 조금 느려졌다. 자신이 이 방에 얹혀 있는 작은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그때, 말없이 지켜보던 이모가 목이 메인 듯 낮게 말을 꺼냈다.
“유정아… 나도 싸워서 남처럼 지냈지만 어쨌든 네 엄마 동생이고, 우리… 다 가족이잖니. 그러니까 절대 신세 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뭐든 불편한 거 있으면, 나든 이모부든 누구든, 꼭 말해줘. 이 집은 네 집이나 다름없으니까. 알았지?”

말끝이 조금 떨렸다.
눈가를 훔치던 이모는 조심스레 두 팔을 벌렸다. 말 대신 품을 내어놓는 몸짓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모.”

유정은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그 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모의 몸에서는 백화점 1층에서 맡을 법한 화장품과 향수 냄새가 섞여 났다. 달콤하고 세련된 향. 그 향은 병원 지하에서 맡았던 차가운 냄새와도, 집에 남아 있던 물비린내와도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따뜻했고, 안정적이었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의 냄새였다.

이모의 팔이 등을 감싸자, 잠시 어깨에 힘이 풀렸다.
하지만 그 안에서조차, 유정은 어딘가 몸을 완전히 맡기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이 집이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지만, 유정의 마음은 아직도, 문 하나 없는 그 복도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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