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은 땅이 팽팽 도는 듯한 숙취 속에서 겨우 발을 떼어, 졸업식이 열리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속이 빈 북처럼 울렸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머릿속에서 둔탁한 파동이 번졌다. 어제의 술 냄새가 아직 목 안쪽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평소 밋밋하던 체육관 벽은 오늘만큼은 각종 현수막과 플래카드로 요란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빛나는 졸업을 축하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글자들은 금빛과 분홍빛으로 번쩍였고, 천장에는 색색의 가랜드가 주렁주렁 매달려 인공적인 봄을 흉내 내고 있었다.
시작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한 학부모들은 스탠드에 띄엄띄엄 앉아 프로그램 순서를 넘겨보며 속삭였고, 방송실에서는 마이크를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테스트, 테스트” 하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전선이 바닥을 기어가고, 체육관 특유의 고무 냄새와 향수 냄새가 뒤섞여 묘한 공기를 만들었다.
평소라면 벌점을 감수하면서까지 체육복을 고집하던 학생들도 오늘만큼은 교복을 정갈하게 갖춰 입고 있었다.
넥타이는 단단히 매어져 있었고, 구겨진 적 없는 조끼는 반듯했다. 교복은 그 자체로 유년기의 껍질이었는데, 아이들은 마치 그 껍질을 스스로 벗겨내야 하는 순간을 앞두고 있는 듯, 어딘가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 어른이 되고 싶다던 말은 다 어디로 갔는지, 막상 청소년기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는 눈빛마다 머뭇거림이 스쳤다.
교사들은 하나둘 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매년 같은 자리에 앉혀두고, 다른 이름으로 불러왔던 얼굴들. 세월의 물결에 밀려 곧 흩어질 표정들을 마음속에 새기듯, 교사들의 시선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허기가 어렸다.
그 사이, 현은 관중석 한 켠에 앉아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어지럼을 견뎠다.
오늘이 졸업식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유정이 없는 졸업식이라니, 애초에 계산에 없던 장면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용빈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숙취로 눈 흰자위까지 붉어진 현과 달리, 용빈의 얼굴은 반나절 푹 잔 사람처럼 생기가 돌았다. 머리도 단정했고, 넥타이도 정확히 맞춰 매고 있었다.
“야, 현아. 어제 본 현지 진짜 예쁘지 않았냐?”
현은 배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았지.”
어제 이야기가 입에 오르는 순간, 위장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 같았다. 술과 웃음, 네온사인, 그리고 어둠 속에서 스친 손의 감촉이 뒤섞여 올라왔다.
“야, 너는 진짜 여자 볼 줄 모른다. 그게 어디 괜찮은 정도냐? 나 어제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손도 잡았잖냐!”
용빈은 그때의 감촉을 떠올리는 듯 손을 코 근처로 가져가 킁킁거렸다.
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더럽다.”
“그리고 말이야.”
용빈은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너 어제 술 좀 들어가니까 유정이 생각은 싹 사라졌지? 나린이, 걔가 유정이보다 훨씬 귀엽더라. 잘해봐.”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현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조여들었다.
어젯밤 어둠 속에서 노트북 화면을 밝히던 장면이 번개처럼 스쳤다.
보내기 버튼.
제목.
‘유정아. 나 현이야.’
현은 화들짝 놀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손이 미묘하게 떨렸다.
메일함을 열고, 전날 밤 보낸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읽을수록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나치게 솔직했고, 지나치게 매달린 문장이었다.
“하… 망했다.”
현은 고개를 숙여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졸업식의 소란이 멀어지고, 체육관의 바닥 무늬만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차라리 취한 채로 잊어버렸다면 좋았을 것을.
무슨 일인가 싶어 용빈이 그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낚아챘다.
메일을 천천히 읽던 용빈은 이내 피식 웃었다.
“야, 봐. 수신 확인은 떴잖아.”
그는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읽긴 읽었네. 이 정도로 절절하게 썼으면, 설마 오늘 안 오겠냐?”
현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정말이었다.
‘읽음’ 표시가 작게 떠 있었다.
그 작은 두 글자가 체육관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것 같았다.
순간, 가슴 속에서 얼어 있던 무언가가 녹아내렸다.
안도와 기대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현은 본능처럼 용빈을 끌어안았다.
“야, 고맙다.”
“야야야, 이 새끼 왜 이래. 소름 끼치게.”
용빈은 질색하며 그를 밀쳐냈다. 그러면서도 휴대전화를 꺼내 슬쩍 화면을 확인했다. 혹시 현지에게서 답장이 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러나 화면은 조용했다.
아무런 알림도 없었다.
용빈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내려갔다. 그는 괜히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하룻밤 사이에, 어제의 온기가 식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스며들었다.
체육관 한가운데서는 곧 졸업식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환호와 박수가 섞인 소리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이름을 떠올리고 있었다.
졸업식이 시작되고, 현은 졸업생 지정 좌석에 앉았지만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한때는 유정에게 그저 무사하다는 것만이라도 알려달라고 간절히 바라던 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졸업식장 어딘가에 유정이 서 있기를 바라는 욕심까지 조심스레 자라나고 있었다.
강당을 울리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웅웅거리는 배경음처럼 흩어졌고, 친구들의 웅성거림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실감도, 모두 ‘혹시 왔을까’라는 생각 아래 묻혀버렸다.
현의 시선은 무대가 아니라 스탠드를 향해 끊임없이 튀어 올랐다. 담임은 두리번거리는 현을 향해 조용히 손짓하며 앞을 보라고 재촉했지만, 현의 눈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찾는 얼굴은 단 하나였다.
짧은 머리, 어딘가 비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던 눈동자, 무표정 속에 숨겨진 날 선 기색.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그런 얼굴은 스탠드 어디에도 없었다.
의자에 걸터앉은 학부모들, 꽃다발을 든 동생들, 카메라를 든 아버지들 사이를 수십 번 훑었지만, 빈자리는 끝내 빈자리로 남았다.
행사가 끝나자 체육관은 카메라 셔터음과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플래시가 번쩍이고,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친구의 어깨에 매달려 “연락 끊지 마라”를 외쳤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사람들을 유난히 다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틈에서 현은 혼자였다.
사진을 찍자는 손길에도 대충 응하며, 시선은 여전히 출입구와 스탠드를 오갔다. 문이 열릴 때마다 심장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힘없이 가라앉았다.
학생들에게 팔을 잡혀 사진을 찍히던 담임이 그런 현을 눈여겨보다 못해 다가왔다.
“야잇, 김반장. 넌 머리도 좋은 놈이 뭘 그렇게 산만하게 고개를 들었다 놨다 하냐?”
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부모님은?”
“아까 사진 찍고, 먼저 가시라고 했어요.”
담임은 혀를 찼다.
조명에 반사된 면도한 턱이 번들거렸다.
“참, 너 같이 무심한 자식도 드물다. 내가 부모님 좀 뵈려고 했는데, 아쉽네.”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너 말야… 부모님한테 좀 살갑게 해라. 입시철에 네 부모님이 얼마나 전화하셨는지 아냐? ‘우리 애 좀 설득해달라’고, 영화니 뭐니 한다고 걱정된다고. 내가 다 안쓰럽더라.”
현의 귀에 그 말이 온전히 박히지는 않았다.
그는 여전히 군중 속을 훑고 있었다.
“어디 부모님뿐이었겠냐. 우리 학년 쌤들 전부 뒷목 잡았지. 전교 1등 하던 놈이 갑자기 예체능 쓴다니까 말이야. 교직 20년 동안 영화 연출과 한 명도 안 보냈다.”
담임은 헛기침을 했다.
“그래도 결국 경영학과로 돌아서길 잘했다. 내 말 듣길 잘했다고 생각하지?”
그 말이 귀에 꽂히는 순간, 현의 속이 묘하게 뒤틀렸다.
영화.
유정.
자기가 원했던 방향.
모두 스스로 접어 넣은 선택들이었다.
“...네, 뭐 그렇죠.”
입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다시 체육관을 나서려는 현의 팔을 담임이 붙잡았다.
“현아, 잠깐. 줄 게 있다.”
교무실은 체육관의 소란과 달리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낯익은 교사들의 자리를 지나 담임의 책상 앞에 섰을 때, 그 위에는 종이 가방 하나와 백합 꽃다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얀 꽃잎이 유난히 또렷했다. 마치 누군가의 체온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현은 종이 가방과 꽃을 받아 들었다. 손이 묘하게 떨렸다.
“이게… 무슨…”
담임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어떤 여자애가 너한테 전해달라고 하더라. 야, 너 겉으론 공부만 하는 것 같더니, 뒤에서 할 건 다 했네?”
현의 심장이 요동쳤다.
“선생님, 이거… 이거 준 여자애 혹시…”
“어, 그 머리 짧고 얼굴 하얀 애.”
쿵.
가슴 안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언제 다녀갔어요?”
“보채긴. 졸업식 시작하기 전에 교무실로 잠깐 왔어. 너한테 꼭 전해달라더라. 직접 전하지 그러냐고 했더니, 그건 싫다면서 그냥 부탁만 하고 가버렸어. 내가 무슨 배달원도 아니고.”
담임은 투덜거렸지만, 현은 이미 듣고 있지 않았다.
졸업식 시작 전. 그럼 조금 전까지 이 학교 안에 있었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체육관 입구 어딘가에서, 현이 두리번거리던 그 순간, 유정은 이미 돌아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은 꽃다발을 끌어안은 채 교무실을 뛰쳐나왔다.
복도를 가로지르며, 신발 밑창이 미끄러질 듯 울렸다.
계단을 내려가며 숨이 가빠졌다.
운동장.
정문.
교문 밖 버스 정류장.
겨울 끝자락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졸업식 풍선 몇 개가 허공에서 허둥대다 터졌다.
현은 교문 앞에 멈춰 섰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고, 누군가는 꽃을 들고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짧은 머리의 소녀는 없었다.
손에 들린 백합에서 은은한 향이 올라왔다. 너무 깨끗한 냄새였다.
현은 종이 가방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유정은 왔다. 그러나 끝내 마주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축하와 환호로 가득한 이 날을 이상하게도 적막하게 만들고 있었다.
교무실을 나서자, 졸업식은 이미 끝나고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운동장에는 아직 몇몇 학생들이 남아 있었다. 졸업 앨범을 벤치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채, 교복 차림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웃고 떠들었다. 누군가는 꽃다발을 휘두르며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교복 소매에 서로의 이름을 적어주며 낄낄댔다.
그 소란은 묘하게 멀게 들렸다. 마치 얇은 유리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계절을 바라보는 것처럼.
바람은 한풀 꺾였고, 늦겨울의 햇살이 운동장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다. 숙취에 떠밀려 집을 나서느라 하늘 한 번 보지 못했던 현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창공을 다섯 마리의 검은 새가 브이자 대열로 가르고 있었다. 어딘가로 떠나는 중인지, 혹은 이미 떠났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중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일정하고도 단정한 움직임이 이상하게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앞에서 길을 트고, 누군가는 그 뒤를 따른다. 그 질서 속에서 단 한 마리만 이탈해도 모양은 금세 흐트러질 것이다. 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 새들을 끝까지 따라가다,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복도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교실마다 문이 반쯤 열린 채 햇빛을 들이고 있었다. 먼지 냄새와 분필 가루가 엷게 섞인 공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복도 끝, 소화전 아래에 숨겨두었던 작은 열쇠를 꺼내 들자 손바닥이 차갑게 식었다. 몇 번이나 열어본 적 있는 교실 문이었지만, 오늘은 마치 전혀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낯설었다.
문을 밀어 열자, 바닥에 길게 늘어진 햇살이 아무도 없는 교실을 고요히 비추고 있었다. 책상과 의자, 칠판 위에 아직 남은 분필 자국, 뒤쪽 게시판에 붙은 채 떼지 못한 시간표. 모두 제자리에 있었지만, 이미 그 시간을 벗어난 사물처럼 보였다.
현은 빛을 가로질러 자신의 자리로 갔다.
의자를 천천히 끌어 앉으며,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한 번 쓸었다. 미세한 먼지가 묻어났다.
무릎 위에 올려둔 종이 가방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 안에는 마지막으로 유정에게 빌려주었던 영화 DVD가 들어 있었다. 케이스를 여는 소리가 조용한 교실 안에서 또렷하게 울렸다.
찰칵.
그 순간, 케이스 틈에 끼워져 있던 작은 흰 종이 한 장이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바람도 없는데, 종이는 천천히 발밑으로 내려앉았다.
현은 잠시 움직이지 못한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허리를 굽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 반절 크기.
익숙한 필체.
‘덕분에 감사했어요.’
단 하나의 문장.
이름도 없고, 인사도 없고, 다시 만나자는 말도 없었다.
감정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듯 건조한 문장.
현은 종이를 한 번, 두 번 다시 읽었다.
덕분에.
감사했어요.
그 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무엇이 빠져 있는지 가늠해보려 애썼다.
고마웠다는 뜻일까.
이제 끝이라는 뜻일까.
혹은, 이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안전하다는 선언일까.
창가 쪽에서 불어든 미세한 바람에 커튼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 움직임에 맞춰 종이도 손끝에서 미묘하게 떨렸다.
현은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교실 밖 어딘가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졸업이라는 말이 이제 막 현실이 되어, 모든 것을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는 종이를 접지 못했다.
구기지도 못했다.
그저 손에 쥔 채, 빈 교실 한가운데 앉아, 너무 늦게 도착한 마음을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