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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 아니기에

관계는 정성을 먹고 자란다

by 강유랑

함께하는 시간은

마치 영원할 거처럼

우리를 속이곤 한다.


우리는 그것에 속아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

영원히 상처를 안고 살게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곤 한다.


그것에 속으면,

함께하는 시간, 그 짧은 시간에

모든 순간에 정성을 다하게 된다.


관계에 대해 독서하다 보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안 읽을 수 없습니다. 마치 교과서와 같은 이 책은 수많은 관계에 대한 원칙과 그에 맞는 사례들이 적혀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사실 실망감이 컸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나의 매력을 어필하고 호감을 높이는 그런 책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책의 핵심은 '나'보다는 '상대'에게 초점이 맞혀져 있었습니다. 논쟁을 피하고, 상대방의 말에 진심으로 경청하고, 상대를 칭찬하고, 미소를 짓고, 이름을 기억해 주는. 어쩌면 당연하고 기본적인 예의가 20세기부터 지금까지 필독서의 자리를 내주지 않는 전설적인 책의 핵심 내용이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제가 처음 이 책에 실망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 쉬운 것들이 지키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친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더 그런 거 같습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당연히' 이해해 줄 거라는, 이 함께하는 시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함부로 대합니다. 그런 당연함이 사라졌을 때, 얼마나 후회가 커지는지요. 중학교 시절 외할머니께서 집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공부한다는 이유로 할머니와 시간도 잘 보내지 않고, 집에 돌아오면 그 잠깐도 방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3일 정도 되었을까요. 당연히 계실 줄 알고 들어온 집에 할머니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먼 시골로 혼자 버스를 타고 떠나신 것이었지요.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감사하게도 할머니께서는 지금도 건강하십니다. 그래서 더 정성을 다하려 합니다. 할머니께서 바라시는 것이 돈 많은 손주, 여행 보내주는 손주라면 아직도 한참 부족하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고 서로 더 챙기지 못해 애틋한 손주라면 그런 쉬운 것이라면 제 최선을 다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입견은 무섭습니다. 한번 결정된 첫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나쁜 사람을 쉽게 포기합니다. 미워하고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민감해집니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불편하고, 싫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선은 늘 선입견을 지우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잘못한 상황과 스트레스에도 그 사람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려 합니다.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용서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관계는 결국 그런 정성인 거 같습니다. 깨진 관계는 이어 붙일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안타깝습니다. 관계의 회복은 어떤 누군가의 지극한 정성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용서도, 사랑도, 정성도 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깨진 관계에 쿨하게 돌아서지만, 그 상처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볼 때, 먼저 용서하기를 권해봅니다. 당신의 상처 깊이를 모르기에, 그저 권해봅니다. 저는 당신의 편이며, 당신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니까요.


'영원한 것처럼, 그 당연함으로 감사함을 잊더라도, 관계는 정성임을 안다면 회복할 수 있다.'


- 그 어떤 것보다 경이로운 당신의 손에 ‘강유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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