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이야기
혼자 걸을 때는 불안하다.
빠르게 걷는 그 걸음 속에,
주위를 자꾸만 둘러본다.
같이 걸을 때는 조심한다.
상대방의 걸음 속도에,
그 사람을 자꾸만 살핀다.
혼자 걸을 때도 평안하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고,
주위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길.
같이 걸을 때 더 사랑하길.
멀리 가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즐겁게 걸어가길.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혼자 걷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주변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지치고, 주변을 돌아보며 불안감이 커집니다. 따라잡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 불안은 발걸음은 더욱 빠르게, 마음은 조금 더 불안하게 합니다. 물론, 불안해도 괜찮습니다. 그 불안이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한다면 말이죠. 그리고, 멀리 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혼자 걷는 것이 불안과의 싸움이라면, 같이 걷는 것은 상대방과의 싸움일 수 있겠습니다. 불안을 다스리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함께 가기로 했다고 다 멀리 갈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평생 함께 걷겠다고 서약한 부부도 어느새 혼자만 걷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 뒤처지거나 앞선 상대방에게 끊임없는 불만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혼자 걷는 불안과 함께 걷는 불편이 다 함께하게 됩니다.
혼자 걸을 때, 주위를 둘러보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걷기를 좋아하는 저는 동네 뒷산이나 한강 변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천천히 걸어야지 결심하면서 나가지만,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게 조금 더 빠르게 걸어야 하지 않을까, 더 많이 걸어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 순식간에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주위를 보지 않겠다는 결심이 무너지고, 조금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에 그 시간을 힘들게 채우는 것이죠. 그럴 때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을 보려고 합니다. 내게 주어진 이 아름다운 풍경들, 지금 걸을 수 있는 시간. 즉, 홀로 있을 때의 평안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같이 걸을 때는 최대한 많은 주제를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관심이 있는 부분, 제가 관심이 있는 부분을 고민하고 이야기 주제를 고릅니다. 함께 걷는 것은 분명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때면, 어느새 같이 걷지만, 그 시간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재미가 없어집니다. 그럴 때면 잠시 멈추어 물을 마시거나, 솔직하게 상대방에게 잠시 이야기를 멈추어 달라고 합니다. 그런 배려 속에 조금 걷다 보면 다시 이야기 주제가 나오고 즐거운 걷기가 됩니다.
이전에도 제가 언급했던 제 인생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고슴도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슴도치 두 마리가 미로 속을 헤매면서 서로를 푹푹 찔러대고, 이제 막 피가 철철 나요. 그러다 견디기 힘들어 미로에 불을 지르고 탈출해 버리네. 서로의 공간은 사라지고,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그 대사가 얼마나 많이 공감되었는지 모릅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걸어가지만, 소중하기에 더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 고슴도치만 없으면 좀 더 편할텐데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금까지 같이 걸어주고 지지해 주었던 관계였음에도, 소중함은 잊히고 내 욕심이 우선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미로를 불태우고 고슴도치가 떠나면, 우리는 또 다른 고슴도치를 찾아 헤맵니다. 혼자는 불안하니까요. ‘보통의 고슴도치가 사는 곳이에요. 그곳에서 고슴도치는 어쨌든 고슴도치를 만나야 해요. 고양이를 만날 수는 없잖아요. 찔리지 않고 다치지 않는 법을 찾게 될 거예요.’ 앞 대사에 이어나온 대사입니다. 우리는 결국 또 소중한 고슴도치를 만날 겁니다. 조금은 덜 찔리며 함께 멀리 걸어 나갈 그런 고슴도치를 말입니다.
‘불안과 불편이 아닌 평안과 즐거움으로 멀리 걸어 나가길.’
- 그 어떤 것보다 경이로운 당신의 손에 ‘강유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