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리도 급했을까
느린 것이 좋아진다.
빠르고 화려한 것들만을 좋아했는데
연필을 쥐는 법을 다시 배운다.
뭐가 그리도 급했을까.
음미하며 꼭꼭 씹어 먹는다.
뭐가 그리도 급했을까.
빠르게 내려가던 스크롤이 멈춘다.
뭐가 그리도 급했을까.
조금은 더 천천히,
그렇게 느리지만 단단한 것들이 쌓인다.
요즈음 피곤이 조금 쌓였는지 소화가 잘 안되곤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에 마음만 급해져서 식사도 빠르게 하거나 라면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덜컥 급체해서 하루 종일 머리가 띵하고 너무 아팠습니다. 최근 집 비밀번호를 바꿨는데 한동안 이전 비밀번호를 실수로 눌렀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을 겪으면서 혼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뭐가 그리 급할까.' 그 3초 일찍 들어가려고,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 참…. 이날 이후, 삶을 돌아봤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니 꽤 재미있는 선택들이 많았습니다. '구텐탁' 한 마디 아는 상태로 독일어를 부전공을 하기도 했고, 육군에서 해병대로 다시금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스타트업을 선택한 것도 전공과는 무관한 일이었죠. 그리고 그 선택들은 어쩌면 화려하고 빠른, 강한 이미지 그 단순한 이유로 선택해 왔습니다. 괜찮습니다. 재미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한 번 더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것을 좋아했는가 돌아보았습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빼고 순수하게 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강하고 화려한 것을 쫓았던 제 모습이 후회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쌓아나가는 것이 더 '나' 다웠다는 사실을요.
유튜브에 글씨체 교정이라는 동영상이 추천 영상에 떴습니다. 시를 직접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글씨체 관련 영상이 떠올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자음과 모음이라는 말처럼 자음이 모음을 감싸줘야 안정적이다. 영상에 여러 가지 중에 사실 그거 하나만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냥 천천히 그 배운 하나의 것만을 의식하면서 글씨를 쓰는 게 재미있습니다. 사이좋은 우리 모자처럼 그런 사이좋은 글씨를 만들려 노력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도 조금은 천천히 먹기로 결심했습니다. 대학 시절 '맛있는 녀석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종종 봤습니다. 그들은 정말이지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단순히 많이, 빠르게 먹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더 맛있게 먹을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그때 맛있는 녀석들의 여러 가지 팁을 생각하면서 식사를 즐겼습니다. '미식'의 아름다울 미자는 음식에 한해서는 '맛있는'이라는 의미가 된다고 합니다. 보기에도 아름답고, 맛도 좋은 그러한 미식에 하나의 의미를 더해보려 합니다. 아름답게 먹으며 그것을 즐기는 것. 이런 천천히 즐기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학창 시절 어른들이 아무리 공부하라고 해도 잘나가는 일진 친구들이 쿨해보여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경험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저만 그랬을까요. 모범생 스타일의 학생이어서 그런지 인기 많은 잘나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거 같습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만들어진 '나'는 어쩌면 허망한 인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었을지. 나다움을 사랑해 주는 이들과 느리지만 단단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늦을 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런 삶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기를,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
'세상에 온갖 화려하고 빠른 것보다, 진짜 '나'를 만나는 오늘이 되기를.'
- 그 어떤 것보다 경이로운 당신의 손에 ‘강유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