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영상과 음악, 그 불안
가만히 눈을 감으며,
가만히 귀를 닫으며,
온전히 나를 비운다.
바쁘게 넘기는 영상과,
머리를 울리는 음악과,
그렇게 놓치는 정신에.
멈추어야 한다.
멈추어야 산다.
잠시라도 쉰다.
잠시라도 산다.
진짜 행복을 위해,
진정 평화를 위해.
가만히 눈을 닫으며,
가만히 귀를 닫으며,
온전히 나를 비운다.
혼자 있는 시간, 언제나 영상이 틀어져 있습니다. 백색소음처럼, 배경음악처럼 듣지 않으면서도 틀어놓습니다. 그러다 쉴 때면, 틀어져 있는 영상으로, 쇼츠나 릴스 같은 짧은 자극적인 영상들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냥 하나 정도만 봐야지 하고 타협하는 그 순간, 스크롤은 엄청난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정신없이 듣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샤워하는 순간까지도 소리를 틀어놓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면 ‘불안’일 때가 많습니다. 영상이 멈추는 순간의 그 정적을 즐기기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고민이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 불안을 숨기기 위해 영상 속으로, 자극 속으로 더 숨어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에 유튜브에는 마음에 관한, 차분하게 하는 음악 채널들만을 구독한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또 인스타그램 영상들의 알고리즘을 바꾸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들로,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로 말이죠. 무엇보다 책을 읽거나 자기 전에는 TV를 켜지 않으려 합니다. 아예 멈추는 것이죠. 그렇게 잠시라도 정적의 시간에 익숙해지려 합니다. 무엇보다 그 정적을 즐기려고 합니다. 동물들이 아프면 가장 먼저 식사를 멈춘다고 합니다. 간헐적 단식도 비슷한 맥락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체의 장기들에 잠시 쉬는 시간을 주는 것이죠. 그렇게 쉼을 허락할 때, 회복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합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요. 그렇기에 절대적으로 멈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필요성을 알고 결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잠시 언급한 즐기는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도 소리도 없이 그저 숨소리 하나에 집중하고, 내가 감사하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 그 시간이 즐거워야 합니다. 더 많이 더 자주 제대로 쉬기 위해서 말이죠. 가만히 눈을 감고, 귀도 닫습니다. 온전히 나를 비워내는 호흡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감사와 즐거움으로 나를 채웁니다. 고민과 걱정이 올라올 때면, 내면의 폭풍이 불어올 때면 ‘잠잠하다.’고 되뇌기도 하고, 그 두려움의 근원을 향해 끝까지 경험하며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잠시 멈춰 ‘나’에게 집중할 때 일어납니다. 필요성, 결단, 즐기기. 이 세 가지를 기억하는 것이 폭풍 가운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제목에 원래는 ‘담는다.’도 있었습니다. 온전히 비우고 담는 것. 글쓰기의 완성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라는 유명한 말처럼, 과감하게 빼기로 했습니다. ‘비워내기’라는 주제에 집중하기에도 부족하니까요. 게다가 그냥 비워내기가 아니라 ‘온전히 비워내기’는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온전’,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해지라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온전히 비워낸다는 것’은 ‘온전해지기 위해 비워낸다.’는 의미와 ‘비워내는 그 행위를 온전하게 완료하겠다.’는 두 가지 의미를 다 담았습니다. 우리의 본래 상태인 진짜 행복과 진정 평안을 위해, 잘못된 것 없이 올바르게 나아가는 그 온전함. 그 온전함을 향해 오늘도 ‘비워내기’를 선택합니다. 삶의 작은 틈을 만들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기적 같은 시간. 오늘 당신을 위해 10분만 비워내기를 권합니다. 당신의 모든 것이 푹 쉬도록요.
‘멈추기로 결단하라. 방법은 쉽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호흡에 집중하자.’
- 그 어떤 것보다 경이로운 당신의 손에 ‘강유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