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웃으며, 묵묵히 따라가는
바보는 평화를 가져온다.
바보의 세상은 평화롭다.
그렇기에
때로는 바보이고 싶다.
다 안다고 떠드는 저들보다,
모르기에 빙긋이 웃는.
이렇게 저렇게 소리치는 저들보다,
아무 말 없이 빙긋이 웃는.
평화로운 세상엔 바보가 필요하다.
평화를 위해서는 바보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내가 먼저 바보가 되곤 한다.
어디서 봤는지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지만, 아주 인상적이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장군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전장에서는 엄격하고 무서운 그가 집에서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너무 잘 웃어서 키우는 개도 그를 무시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그 가족은 항상 화목하고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자존심은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만나본 군인들은 특별히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터프했습니다. 아마 그 장군도 그랬을 거 같습니다. 고작해야 40명의 소대장도 부담을 느끼고, 그들의 생명의 무게를 느끼는데, 수만의 군을 이끄는 장군은 얼마나 더 무거웠을까요. 그럼에도 그런 부담감도, 장군이라는 그 자부심도 다 내려놓고 가족들에게는 그저 ‘허허’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저마다 생각이 다 다릅니다. 처음에는 건설적으로 좋은 방안을 내려고 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점점 주도권 싸움처럼 흘러가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뭔가 나서서 지시하는 데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던 세대이기도 하고, 어느 곳에 가든 ‘리더’가 되라는, 어쩌면 ‘리더 병’에 걸려있었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인테리어를 돕다가 의견 내기도, 이끌기도 멈췄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최선을 다해 일을 돕는 사람이니까요. 그냥 아무 말 없이 척척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이제는 그 역할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의견이 100% 좋다고 할 때, 보통 상대방 의견도 90% 이상은 좋은 의견입니다. 그러면, 굳이 그 10% 때문에 각을 세우며 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습니다.
어쩌면 바보가 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저 ‘허허’ 웃고, 그저 의견을 따라주는 것은. 전 자부심도 굉장히 강하고, 리더 병도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절대 ‘바보’가 되지 않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내가 똑똑한 척할수록, 나도 주변 사람들도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번 웃어주고, 한 번 맞춰주는 그 작은 노력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나를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화도 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들이 한 행동은 그들이 그 값을 치를 것을 압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 한 노력과 선한 마음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꼭 그 사람에게 받지 않더라도, 결국은 나에게 좋은 일로 돌아올 거라 그냥 믿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근거도, 이유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바보처럼 믿고 웃으며 털고 나아갑니다.
바보가 평화를 가져온다면 기꺼이 어느 집단에서든 바보가 되려 합니다. 최근에 꽂힌 드라마 중에 ‘테드 래소’라는 축구 드라마가 있습니다. 극 중 테드는 미식 축구팀 감독으로 배신도 당하고, 모욕도 당하지만,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내면의 상처와 슬픔도, 그를 막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가 팀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바보가 필요합니다. 세상에 행복을 전하고, 평화를 채우는 그 바보가. 당신이 속한 집단에서, 그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한 번만 웃어넘기는 바보가 되어주세요. 당신의 그 노력은 분명 당신의 세상을 좋게 만들 것입니다.
‘그저 허허 웃고, 그저 맞춰주는 바보. 그 바보가 가져올 평화로운 세상에 대하여.’
- 그 어떤 것보다 경이로운 당신의 손에 ‘강유랑’ 드림